인류 역사상 정치와 경제, 문화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많다. 이중 영성과 인성에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 있다. 이 사람은 누가복음 10장에 소개된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누가복음 10장에 등장하는 율법사는 예수님에게 영생에 관한 질문을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을 하며 한 비유를 들어 이야기했다.이 비유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먼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난 자이다. 이 사람은 여리고로 가던 중 강도를 만나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을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갔다. 그 다음 등장하는 인물은
10년 전, 주일학교 여름 수련회를 위해 답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장소는 시골에 있는 한 폐교였는데 시설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열악했다. 화려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학생들의 눈높이에는 결코 맞지 않았다.하지만 장소에 맞춰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이미 준비한 상태였고 다른 장소를 물색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장소를 먼저 찾아 본 주일학교 교사들이 지도자인 필자의 눈치를 살피는 등 행사가 어그러질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상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학생들의 구미에 맞는 환경은 제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고,
2016년도 2월에 세기의 관심사가 될 만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바둑의 최고수였던 이세돌과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바둑 대결을 한 것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었다. 일본에서는 바둑을 기술(棋術)이라고 하지 않고 기도(棋道)라고 한다. 말 그대로 술(術)은 솜씨나 재주를 말하고, 도(道)는 정신세계를 말한다. 바둑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바둑을 정신세계의 한 부분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바둑의 기술을 어느 정도 습득하면 바둑책을 보따리 해서 산속 깊이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나 거반 죽음에 이른 자를 발견하고 불쌍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급한 대로 응급조치를 하고 가까운 주막으로 데리고 갔다. 자신은 여행 중인 상황이라 여관 주인에게 강도 만난 자가 머물 동안의 경비와 치료에 필요한 돈을 건네며 뒷일을 부탁했다. 그리고 경비가 부족하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동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넘어 사랑의 배려로 돌봄을 실천했다.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부류는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또 한 부류는 이
우리는 누구나 이 세상이 미덕이 넘쳐나는 곳이길 바란다. 하지만 이는 이상(理想)일 뿐이고, 우리의 세계는 그렇지 못하다.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기에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 좋을텐데, 현실은 적당한 타협에 안주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뉴스를 보면 양보는 온데간데 없고, 자기 입장만 고집하다가 적정선에서 이익을 찾을 만하면 서둘러 타협해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양보해서 이뤄낸 거라며 자신들이 인격이 엄청나게 고매한 줄 착각한다.양보와 타협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양보는 어느 정도 희생이 뒤따르는 것인 반면 타협은
'불가지심(不欺自心)·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마라'성철 스님의 말씀이다. 자신의 양심은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자신이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외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은 그 겉모습을 자신의 모습으로 착각 하고야 만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도 자기 자신에게 체면을 차리느라 솔직해 지질 못하고 더블어함께 불행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자기 자신과 대면했을 때는 가장 솔직해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을 속이면 자신을 구제해 줄 진실을 만나지
착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은 예수님이 들려준 여러 비유 중 하나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꼭 실천하기를 바라던 기준으로 잘 정의돼 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어떤 사람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이때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여리고로 길을 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큰 상처를 입었다. 신앙심이 깊은 제사장과 레위인은 모른 체하며 지나쳐갔다. 그때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다친 사람의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쓰는, 혹은 자주 듣게 되는 표현 중의 하나가 "감사합니다"다. 감사(感謝)는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고, 같은 표현으로 "고맙습니다"가 있다.'고맙다'란 단어의 어원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데, '곰답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본다면 '곰' 혹은 '검'은 '하느님', '신(神)'을 뜻하는 말이고, 이는 상대방이 신과 같이 소중하고, 상대방을 신처럼 존경한다는 뜻이 된다. 우리 선조들은 감사의 뜻을 아주 대단히 여겼던 것은 아닐까. 더 깊이 있는 순우리말이라, 고맙다는 말이 더 정겹고 의미 있게 들린다.필자도 하루에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의 내용을 보면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거반 다 죽게 됐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하고 지나쳐 갔다. 그때 그 길을 지나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자를 여관에 데려가서 간호하고 주인에게 치료비를 미리 지불하고 떠났다. 여관 주인에게 떠나면서 강도 만난 자의 치료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그 당시 종교적 특권 계층의 사람이다. 누가복음을 통해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에
얼마 전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깻잎 논쟁'이 꽤나 시끌했다. '부먹 찍먹' 논쟁만큼 참 따끈한 이슈였던 것 같다. 애인과 그의 동성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할 때, 붙어 있는 깻잎을 떼지 못하는 친구를 도와줘도 되는지가 쟁점이었고 특히 성별에 따라 그 주장이 상반됐다. 나름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으나, 결론은 '애인이 기분 나쁘니까 하면 안된다'는 것 같았다. 독신인 사제인지라 그런 경험이 있을 수 없어 그저 재미있게 보기도 하고, 참 별걸 가지고 유난 떤다고도 느껴졌지만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는 사람들에겐 제법 진지한 물음일지 모
독일의 소설가 레마르크의 작품 중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서부전선 이상 없다'란 책이 있다. 이 소설은 1929년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전선을 무대로 지원병 파울 보이머(Paul Boimer)와 20명의 동료의 삶과 죽음을 그리며 전쟁의 가혹하고 비정한 실상을 고발한 반전(反戰) 소설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 중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 있다. 독일 군병이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들어간 구덩이에 적군 한 명도 총탄을 피해 들어온다. 깜짝 놀란 독일 군병은 치열하게 싸우다 적군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적군은 치명적인 상처
인간의 신체나 기술 능력 등은 쓰면 쓸수록 더 잘 쓸 수 있도록, 외적인 자극이나 변화 등은 견뎌낼 수록 더 큰 자극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앞의 것을 발달이라 한다면, 뒤의 것은 내성이라 표현할 수 있다. 운동이나 악기를 시작할 때, 처음에 영 서툴고 어렵기만 하지만 나중에는 특별한 집중력이 없어도 손발이 알아서 잘 움직일 수 있다.신체 활용이나 외부 자극뿐 아니라 인간의 감정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다. 마치 알고리즘처럼 지향하는 방향에 따라 긍정적인 발달이 일어날 수도, 부정적인 것에 대한 내성이 커질 수도 있다.
사마리아 사람은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보통 사람으로 유대인에게 개와 같은 취급을 받는 가장 비종교적인 사람이다. 이러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구원했다. 강도를 만나 다 죽어가는 나그네를 포도주로 소독하고 기름을 바른 후에 자기 당나귀에 싣고 여관까지 데리고 가서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돈이 부족하면 돌아올 때 갚겠다고 약속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세상의 한복판에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서민 중의 서민인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구체적으로 도왔다는 사실이다.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인간은 역사 안에서 수많은 가치를 추구해 왔다. 정치, 경제, 산업 등 제도적이거나 물질적인 가치도 있고, 사랑, 기쁨, 쾌락, 평화 등 정신적 가치도 있다. 누구나 공감하고 필요로 하는 가치지만, 그 중 평화는 다 함께 노력해야만 하는 상위 가치라 할 수 있다.인류는 다양한 방법으로 평화를 이룩,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어떤 면에서 위에 언급한 모든 요소들이 잘 이뤄지고 조화를 이룰 때 실현 가능할지 모른다. 그리고 평화는 개인, 가정에서부터 집단, 지역, 국가, 나아가 세계 평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간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 강도를 만나 옷이며 금품이며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때마침 지나치던 제사장은 반대편으로 피해 가고 레위 사람도 강도 만난 자를 보고도 모른 척 지나쳐 갔다. 그런데 오직 사마리아 사람만이 그를 가련히 여겨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자신의 가축에 태워 여관에 데려가 정성을 들여 치료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사마리아 사람은 여관 주인에게 치료와 간호를 부탁하였다. 그리고 돈이 부족하면 돌아오는 길에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관 주인에게 은화 2
우리의 행동이나 습관을 이끄는 동인(動因)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것을 크게 일반화시킨다면 `보상`과 `위협`으로 묶을 수 있겠다. 그런데 `위협` 역시 이를 피하기 위해, 즉 안전을 보상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 한다면, 결국 인간은 어떠한 보상이 있어야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을 생존케 하는 기본적인 욕구 역시 그것이 충족됐을 때 얻는 일종의 신체·정신적 보상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단적으로 말해 우리가 하는 모든 생활의 양식들도 어떠한 보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정·사회생활, 인간관계,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
다윗 왕 시절 통일 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은 르호보암 왕 때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됐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다. 그리고 오늘날 북이스라엘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사마리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교통 요지로 주변 평지보다 100m 정도 솟아오른 해발 430m에 있는 천혜의 요새 도시였다. 또 왕궁을 상아로 꾸미고 값비싼 향유를 맘껏 쓸 정도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읍이나 사마리아 지역에 사는 사람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말한다.그리고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호세아 왕 때
모두가 예민하고, 모든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시기. 자칫하면 오해와 갈등이 일어나고 다툼까지 이어지기 더욱 쉬운 때다. 새해를 맞이하며 했던 다짐 중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자`는 것도 있었는데, 하루에도 수차례 크고 작은 화를 삭히는 모습을 보면서 군자의 길은 참으로 험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싸움을 싫어해 언쟁도 피하는 성향이지만, 누군가와 어려운 관계에 놓이고 틀어진 관계를 풀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이성과 논리로 해결하면 좀 더 수월할 테지만, 대체로 감정과 감성의 영역에 놓인 일이라 더욱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이
새해가 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선한 계획을 세우고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실천 방안 중 하나로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을 꼭 한번 닮아보자는 계획을 세운다. 누가복음 10장은 예수가 율법 교사에게 교훈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이야기다.어느 날 율법 교사가 예수에게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그 때 예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됐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했다. 그러자 "네 마음을, 목숨을, 그리고 힘과 뜻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하는 표현이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많은 노래들이나 문학,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도 주로 이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사랑에 매달려 살아가고, 사랑 때문에 많은 일을 하게 된다. 또 사랑 속에 태어나 사랑받으며 살다가 사랑 속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룻동안 사랑하는 부부나 연인,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혹은 이와 비슷한 표현을 수없이 하곤 한다.하지만 사랑이라는 말만큼 가장 어려운 것도 없지 않을까. 사랑을 정의내리기 위한 많은 시도들도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