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8만 4000가지 법문을 함축하고 또 함축하면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착한 행(行)을 실천했다면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행해야 하느니라. 선행(善行)을 이어가면 복덕(福德)이 쌓여서 언제 어디서나 행복(幸福)이 찾아드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부자라도 남을 위해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해도 가난하며,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다 할 수 있다.부처님께서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수달다 장자의 방문을 받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며칠 있으면 일 년 중 달(月)이 가장 밝다는 팔월 한가위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이때가 가장 풍요로울 때였다. '오월농부 팔월신선'이란 말처럼 8월은 오곡백과 풍성하여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농촌에서는 가장 즐거운 때이다.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은 곡식을 추수하며 한해의 모든 힘든 일에서 비껴나 마음의 여유까지도 챙겼고, 나라에서조차 수고한 백성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리하여 한가위 명절이 생겼다.한가윗날은 날씨가 선선하여 추운 설날보다 근친(覲親)하기에 알맞은 명절이다. 옛날엔 시집간 딸의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았으므로
신부(神父)들도 고해성사를 본다. 맡은 직무는 거룩하지만 그도 또한 작고 나약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신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해성사를 보라고 배웠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회개와 쇄신의 삶을 살라는 뜻일 것이다. 신학생 때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해성사를 보았지만 어떤 때는 성사 보는 것을 잊어 한 달 반이나 두 달이 지난 후에 성사를 보기도 했었다. 신부가 된 후에도 고해성사를 보았다. 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 달에 한 번이 아닌 2주에 한 번 꼴로 성사를 본다는 것과 성사 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된 후 타국에서 억울하게 숨을 거둔 희생자 유해가 7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상임위원장 무원 스님·대전 광수사 주지)와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등 108개 민족단체는 지난 15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광복 72주년을 맞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해 봉환식 및 국민추모제'를 봉행했다.재일동포 사찰 국평사에는 재일동포 무연고 유골 약 300구가 보관돼 있다. 유해봉안위원회는 신원이 파악된 101구를 순차적으로 고국으로 모셔오기로 하고, 1차로 일단 33구를 이번
내가 신부(神父)가 된 후 선배 신부님들께서 스님과 친하게 지내시는 것을 몇 번 보았다. 어떤 신부님께서는 군대에서 만난 스님과 친구처럼 지내시기도 하셨고, 어떤 신부님께서는 부처님 오신 날과 부활절 때 서로 왕래를 하시다가 친해져서 형님, 동생하며 지내기시도 하셨다. 나도 몇 번 스님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 계신 스님과의 만남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선배 신부님이나 동료 신부와 대화를 하고 있는 듯 착각을 하고는 하였다.한
법은 인간사회의 평화질서를 지키는 일이다. 사회가 있는 곳엔 어느 곳이든 법이 존재한다. 법은 물의 흐름과 같고, 이는 불법과 모두 상통해 불법에서는 또 다른 차원으로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논한다. 세간법이라 하면 세상과 세상 사이(世間), 우리 세상사는 사람들 사이의 법, 즉 중생들의 법으로 세속법이라고 하고, 출세간(出世間)법이라고 하면 세속을 떠난 세계, 부처님 진리의 법이라 한다.또한 세간법은 유위법(有爲法)이라 하고, 출세간법은 무위법(無爲法)이라 한다. 유위법은 생멸이 있는 것, 차별상, 속제법으로 조건이 있는 것을 의미한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 어머니께서 사제 서품을 받기 전에 말씀하셨다. '창호야, 바다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오물을 품어 안고도 고요한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어렸을 때 친구와의 싸움에서 가해자였기도 했지만 피해자가 되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나에게 당했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엄마를 찾아가 그 친구를 혼내달라고 떼를 썼다. 바다와 같았던 엄마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신 다음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호야, 엄마는 힘이 없는데 어쩌지?' 어린 나는 엄마
'식민사관'이라는 말이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에 대한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일제에 의해 정책적·조직적으로 조작된 역사관으로, 일제의 한국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관을 말한다. 대체로 우리 민족을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배돼 왔고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정체된 민족으로 부각시켜, 그들의 한국 통치를 정당화시키던 의식이다.그런데 이 식민사관은 단지 일제강점기 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이맘 때 우리나라는 교육부 전 고위공직자의 발언으로 술렁인 적이 있다. 그의 발언 내용은 한마디로 민중 99%가 잘 먹여주기만 하면
역사이래 인류는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호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전쟁과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고 있다. 핵무기의 발달은 평화를 보장해 주는 것 같지만 언제 파멸될지 모르는 전대미문의 공포 속에서 살도록 하고 있다. 산업의 발달은 풍요한 사회를 건설한다고 생각되지만 그 대가는 엄청나다. 환경은 오염되고, 자원은 고갈되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경제성장과 산업의 고도화는 복지사회를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수반되는 공해와 자원고갈과 에너지의 부족과 국제간의 정치적, 군사적 마찰과 불균형은 지구를 더
어릴 적에 동네 아이들과 칡뿌리를 캐러 다닌 적이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톱과 삽을 들고 산으로 칡을 찾아 헤맸었다. 조금이라도 더 큰 것을 캐 보려고 돌아다니다 다치거나 옷을 찢어 먹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팔뚝 만한 칡뿌리라도 발견하면 열심히 캐 동네 아이들과 나눠 먹거나 집에 가져오곤 했었다. 그러다 한 번은 지름이 약 30㎝에 가까운 칡을 발견한 적이 있다. 우리들은 신나서 열심히 땅을 팠지만 아이들 힘으론 역부족인게 사실이었다. 결국 몇 시간을 들여 파다 포기하고 말았다. 아쉬운 대로 드러나 있는 부분만 잘라 내고 또 잘
선정(禪定)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또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날마다 관련을 맺는 일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먼저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이나 날마다 관련을 맺는 일이나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버리고 참구하지도 말아야 한다. 만일 갑자기 눈이 열리면 비로소 그것이 집안일임을 알 것이다."실로 진리는 평범한 일 속에 감춰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주변에 언제든지 상존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눈이 열려 발견하고 들어내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미국의 무성영화가 한창이던 시절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로 인기를 끌었던 '찰리 채플린'이라는 배우가 있었다. 작은 더비 모자를 쓰고 콧수염, 헐렁한 바지와 커다란 구두 그리고 쪼이는 재킷에 지팡이를 들고 우스꽝스럽게 걸으며 특유의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던 배우였다.한창 특유의 표정 연기와 우스운 행동으로 유명세를 얻던 찰리 채플린은 어느 날 여행을 하다가 시골 마을에서 재미있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찰리 채플린 흉내 내기 대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흥미가 생긴 찰리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그 대회에 참가 한다. 대회에 참가한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종의 직관적 통찰력을 통해 생명현상을 인식한다. 즉, 우리가 바위에 있는 토끼를 볼 때 토끼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바위는 무생명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무엇 때문에 토끼가 생명체인지를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공유하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기준으로 생명체를 정의한다. 그러나 아기가 첫 호흡을 시작하기 바로 전이나 사람이 죽은 직후의 순간에 대해 19세기 철학자들처럼 우리는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요소가 특정한 구조의 집합이나 생명체의 과정을 부여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유학 시절 친했던 인도 신부님과 담소를 나누던 중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갑자기 지구상에 몇 개의 인종이 살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황인, 흑인, 백인 3 인종이 살고 있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틀렸다면서 황인(남성, 여성), 흑인(남성, 여성), 백인(남성, 여성) 요렇게 6 인종이 살고 있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인기(호감도) 많은 인종이 누구인지 아느냐 하고 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왠지 난센스 퀴즈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잠시 생각을 하던 찰나 인도 신부님이 대답을 이어갔습니다."세상에서
근대인간은 비판적이고 객관타당한 것이 아니면 용인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이 객관 타당적임을 밝혀서, 선이야말로 현대 또는 영원히 존재가치가 있는 참다운 수행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근대적 인간은 인간의 이성을 자각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 이성적 입장은 반이성적인 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에 항상 있게 되는 것이지, 반이성적인 것을 온전히 제거해서 이성적인 것만 있게 하는 것은 이성의 구조상에 불가능한 것이다. 이성적인 것과 반이성적인 것과의 대립은 이성의 근본 구조인 것이다. 이성과 반이성이 대립해서 이율배반되는 것을 상대적 이율배
나는 TV는 보지 않고 다른 인터넷이나 폰 매체를 통해 정보를 자주 얻는다. 어용 언론들의 진실을 왜곡하는 선전과 거짓, 그리고 광고에 넌더리가 나기도 했고 다양한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는 장점도 있는 이유에서이다. 얼마 전 여러 글들을 읽다가 페이스북 친구가 쓴 짧은 글을 보게 되었다. 글의 요지는 세상의 기득권자와 비 기득권자 간 갈등이 점점 심해질 거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기득권과 비 기득권의 개념을 나누기는 쉽지는 않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라고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요즘 TV 광고만 보더라도 그
나더러 선을 말하라면 나는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모른다. 절름발이 언어가 완전의 대변자 되기에는 불완전한 것임에야 내가 어찌 새삼스레 구설을 늘어놓으랴. 그러나 한 포기 꽃이 없는 시공에 자리를 갖출 때에 이 꽃은 곧 우주라, 나타낸 것을 두고 다시 우주가 있겠는가. 불완전과 완전이 다른 것이 아니니 불완전 속에 완전을 파악하는 것, 상대적인 것에서 절대를 보는 것이 이것이 선이리라. 우주를 파악하는 것은 이를 방하하는 것이며 이에 침투하는 것은 곧 이를 초탈함이다. 선은 알고 모름이 아니니 이는 지척이 천리다. 가로되 선은 종교라
어느 날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찮게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이라는 그림을 보게 됐다. 이탈리아에 잠시 살았던지라 이름이 낯설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보게 됐고 나는 점점 이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림은 아주 단순했다. 세 명의 인물이 애도하는 듯 흰 꽃을 들고 그림 중앙에 서 있었고 그들 앞에는 관 두 개가 있었으며 그 속에 죽은 듯 보이는 두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장례식장이 아닌 어느 관공서(배경에 높은 계단과 큰 기둥이 보임) 앞 잔디 마당 같아 보이는 배경과 중앙 세 명의 인물들의 표정과
"스승님, 오늘 제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저를 좀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그대, 그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져 오너라. 내 그대를 편안케 해 주리라." 보리 달마와 혜가 사이에 주고 받았다는 유명한 '안심법문'의 한토막이다. 시대가 다변화 될수록 번뇌의 풍랑 또한 사나워져 가기만 한다. 까닭 모를 불안과 번민에 시달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어두운 상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행한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 '자아상실의 세기'로 규정한다.눈부신 과학의 발달이 엄청난 변혁을 가져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원초적
2015년 중반 산업 통상 자원부에서 이런 발표를 했다.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제품들, 세계 시장 1위'. 워낙 많아서 일일이 열거 할 수는 없지만 자랑스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반도체·자동차 부품·유조선 등 44개, 의류부속품·화학제품·섬유제품 등 21개가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부품이라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랑스러운 한국이 놓치지 않고 그동안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다른 모습은 없을까. OECD 국가 중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 노인 자살률, 남녀불평등(임금), 출산률,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