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송악산 밑 산비탈에 흔히 '만월대'라고 불리는 고려 궁궐터가 있다. 고려 태조 2년(919) 창건된 후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침입으로 불타 폐허가 될 때까지 고려 궁궐이 있던 자리다. 2007년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고려 궁궐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 만월대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을 해오고 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2015년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남북공동발굴이 중단되었다가 작년 '한반도의 봄' 기운을 타고 다시 재개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작년 11월 초부터 12월 중순까지 고고학, 고건축, 미술사 전문가를 파견해
요즘 한복에 대해 말이 많다. 궁 입장료 무료로 촉발된 젊은이들의 한복 입기가 이제 외국관광객까지 확산되었다. 경복궁 주변을 걷다 보면 한복 입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한복대여점도 여러 곳 성업 중이다. 입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입은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저런 한복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디자인도 있다. 급기야 기준을 정해 여기에서 벗어난 한복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온다. 한복을 좀 아는 기성 세대의 시각에서는 우스꽝스러울 수도 염려스러울 수도 있다. 의식주라는 말이 있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할머니 따라 절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대웅전에서 절을 하고 나오시면서 "얘야, 이 기둥은 싸리나무로 만들었단다"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 말씀에는 무언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묻어났다. 나는 당시 싸리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몰랐지만 단지 할머니 말씀 분위기로 미루어 '대단한 나무인 모양'이라고 속으로 여겼다. 그 후로도 옛 절집 기둥이 싸리나무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몇 번 더 들었다. 몇 해 전 어떤 나무 전문가가 전국 유명 사찰의 옛 건물 기둥을 조사해 내 어릴 적 환상을 깨고 말았다. 그도 '싸리나무 기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적지 않다. 우리는 자주 보아 눈에 익은 것을 원래 그런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 조각상 하면 인체를 절묘한 비례로 묘사하고 있는 흰 대리석 조각상을 머리 속에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보아 온 대리석 조각상은 로마시대 복제품이다. 그리스 조각상은 원래 청동으로 주조되었는데 중세에 금속이 귀하자 로마인들이 녹여 버렸다. 대신 정원 등에 장식품으로 쓰기 위해 대리석으로 복제하는 것이 유행했다. 그리스 청동 조각상의 눈은 색깔 있는 돌을 끼웠고 머리카락과 입술은 도금
국립현충원에 가면 웅장한 현충문이 유난히 눈에 띈다. 기와를 얹은 전통건축물인데 기둥 머리 위에는 복잡한 얼개 구조물이 화려한 장식인 양 거대한 지붕을 받치고 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고 만져보면 여느 전통건축물과는 달리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에 미색 페인트를 칠했다. 살짝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은 물론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모신 지방의 여러 국립호국원도 마찬가지다. 이뿐 아니다. 대한민국 공공건축물의 상징인 청와대 본관을 비롯한 주요 건축물도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웅장한 콘크리트 한옥'을
'갑사로 가는 길'이라는 이상보의 수필이 있다. 오래전 국어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글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이 글을 따라 갑사로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 글에서 작가는 눈이 오는 어느 겨울날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도중에 만난 남매탑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와 그 감상을 적고 있다. 동학사에서 삼불봉을 향해 등산로를 따라 1시간 남짓을 걸으면 상원암이라는 암자가 나오고 옆으로 두 개의 탑이 보인다. 바로 오뉘탑이라고도 불리는 남매탑이다. 하나는 7층이고 다른 하나는 5층이다. 크기도 모
가끔 공상을 한다. 현대 과학기술이 주는 혜택은 그대로 누리면서 옛날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우리 주변에는 편리한 현대 과학문명의 이기가 많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가 있으니 멀리 여행할 수 있고,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각종 가전제품이 있으니 살림살이가 편하다. 여기에 산과 강이 예전처럼 개발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참 좋겠다. 동궐도에 묘사된 것처럼 궁궐에는 붉고 푸르게 단장한 전각과 정자가 가득 펼쳐져 있고 궁장 밖 언덕에는 소나무가 가득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공상은 한낱 바
때로는 간결한 몇 마디 말이 긴 문장보다 가슴에 와닿는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흔히 '근대'라 불리는 이 시대는 과학과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이 전통의 가치관을 뒤흔들고 있던 때였다. 전기, 자동차, 기차 등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각종 발명품이 등장해 인간의 생활양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보금자리인 건축도 그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규범화된 양식에 따랐던 전통건축은 이제 철과 유리로 대표되는 새로운 재료로 구조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현대건축으로 진화한다. 전통건축에서 당
문화재라고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자고 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뜨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왜 지나간 것에 집착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짧은 인생에 유행 따라가기도 벅찬데 철 지난 구닥다리에 눈길 줄 시간은 없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문화재는 옛것이고 요즘 기준으로 따지면 실용성이 없다. 그런데 조금 관점을 다르게 가지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문화재란 개념이 가장 현대적인 문화현상이라면 손사래만 칠 수는 없을 것이다.인류 역사상 옛것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요즘처럼 치열했던
'문화재는 원형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말에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듯하다. '그래, 그럼 원형대로 보존하자' 라고 마음 먹고 일을 시작할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나타난다. 그런데 원형이 뭐지? 하는 의문이다. 얼른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이다. 원형(原形), 말 그대로 '원래의 모습'이니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고 일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처음 만들어진 이후 변화된 것은 전부 잘못된 것인가? 잘
문화재에 대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대체 우리에게 과거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세상에 앞만 보고 따라가기도 벅찬데 과거, 더구나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먼 옛날까지 신경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문화재라니!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것은 나를 구속하는 환경이 시간과 공간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단초를 제공한 과거를 이해하고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