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에서는 성탄을 앞두고 대림시기를 보낸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4주간을 대림시기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탄생하신 것을 기억하고, 오늘날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오시는 지를 묵상하는 시기이다. 대림시기에는 4개의 초를 준비하고 4개의 초를 한 주에 하나씩 밝혀 간다. 가장 어두운 색의 초를 시작으로 대림 4주가 되면 제일 밝은 색의 초를 켜는 것으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세상이 더 밝아지
18세기 말에 태어난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젊은 시절 주위에서 명필이라고 추앙받으며 유명세를 탔다. "글 한쪽 써 달라" 혹은 제자들이 "체본을 써 달라" 요청하면 자신의 명필을 자랑하고 싶어 막 써 주었는데, 세월이 가고 어느 날 자신의 글씨를 돌아보니 남들에게 써 주었던 글이 너무 부끄러웠다 한다. 그래서 글씨를 써 주었던 집들을 찾아 다니며 돌려 달라고 했다. 또 제자들이 글씨 한 폭을 부탁하면 "먹을 갈아라"하고는 그 먹이 그릇에서 하루가 지나면 "먹 쉬었다"하고 버리고 다시 갈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말년에는 글을 잘 쓰지
세상이 참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보통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는 원래 예의도 상식도 없는 것인가', '단순히 힘의 흐름으로만 옳고 그름이 결정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진심으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고 국민을 위한, 특별히 가난한 국민을 위한 정치였으면 좋겠다.구약성경에는 다윗왕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다윗왕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밧세바를 취한다. 밧세바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다윗왕은 우리야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보내어 전사하게 만든다
부처님께서 많은 제자들과 함께 수행하고 있는 자리에서 한 제자가 "전생에 어디에서 어떤 인연으로 살다가 이 세상에 왔으며 또한 다음 생애에는 무슨 인연을 만나 어디에 태어날지 궁금합니다. 부처님 같은 성인은 아시겠지요"라고 부처님께 물었다. 사실 이 질문은 이 제자만이 해당 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생(人生) 모두의 질문이며 풀 수 없는 의문인지도 모른다. 부처님께서는 제자의 질문에 "이번 생에 네가 지금 받고 살고 있는 것들이 모두 전생의 결과 이니라(욕지전생사금생수자시·欲知前生事今生受者是)"고 말했다. 또 "내세에 어디에서 무
지난 여름 서울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이었다. 대전역에 내려서 용전동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늦은 밤이라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하루 만보 이상 걷기로 한 결심도 지킬 겸 걷기로 했다. 어느 길로 갈까 잠깐 궁리를 하고, 차들이 다니는 큰길을 피해서 오래된 옛길을 따라 걸어갔다. 대전천에는 풀이 많이 자랐지만 생각보다 냄새가 나거나 벌레들이 괴롭히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야간자습을 끝낸 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보니까 지각을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한번씩 공상을 해 볼 때가 있다. 왕자의 신분에 곧 왕이 되실 분이며, 모든 신하와 온 백성이 우러러 보는 분이 무엇이 부족해서 출가를 하셨을까.당시에도 각국의 왕이며 대신들 그리고 제자들도 의구심이 있었다. 당연할지 모르는 이 질문에 부처님은 "내가 출가한 근본 목적은 生(태어나고) 老(늙어가고) 病(병들어가고) 死(죽는다) 때문이다"(중아함 권56 라마경)라고 답했다. 그 다음 이유로는 무명(無明)과 무지(無知)를 내세우셨다. 이로 인해 중생은 욕망과 욕심이 생기고 괴로움이 겪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떤 할아버지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연락을 해오셨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본당에서 사목을 할 때는 누가 찾아와서 만나는 일이 흔한 일이기도 하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한끼 100원 나눔운동본부에서 일하면서 누군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연락은 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무슨 말씀을 하실지도 궁금하고, 도움을 드릴 만한 일인지도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를 만난 날,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이야기며, 자식들 이야기며, 푸짐한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놓으셨다.
부처님의 인간적인 면을 한번 살펴보자.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가 어려서 부처님과 함께 살았는데 어린 탓인지 장난기가 심했다. 하루는 골목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싸웠다. 아이의 어머니가 자식을 데리고 부처님 계시는 곳에 찾아 와서는 "부처님의 자식이 귀하듯이 천민인 자식의 부모는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자식 관리를 좀 해주시기 바란다"며 하소연을 했다. 인도는 사성제의 계급이 있어 천민은 평생 천민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그래서 천민들은 자식에 대한 애착이 더 심한지 모른다.이후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라훌라의 교육을 맡겼고 바로 그날 저
부처님께서 과거 설산에서 수행하고 계실 때 바위와 굴속에서 범이 새끼를 낳아 기르는데 눈(雪)이 너무 많이 와서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나갈 수가 없자 어미와 새끼가 같이 굶어죽을 상황에 처했다. 부처님께서는 이 상황을 아시고, "다음 생에 다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서 수행을 계속 하는 한이 있어도 저 불쌍하고 굶주린 모습을 볼 수가 없다"며 자신의 몸을 던져 먹게 하여 그 생명들을 살렸다고 한다. 또 늙은 수행자가 떨어진 옷을 꿰매려고 실을 바늘에 끼우려고 했지만, 눈이 어두워 끼지를 못하고 힘들어 하자 마침 옆을 지나가던 부처님께
전에 어떤 할아버지 신부님께 들은 이야기이다. 그 신부님은 시골에서 충분히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셨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도 당신 집은 부자였다고 말씀하시고, "그때 부자는 3끼 밥을 먹을 수 있으면 부자였어. 허허"하고 말씀하셨다. 신부님께서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부엌에서 누룽지를 훔쳐먹던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 누룽지를 먹지 못하게 하셨는데, 간식이 없던 시절이라 누룽지가 너무 먹고 싶어서 누룽지를 몰래 훔쳐 먹었다고 하셨다. 어느 날은 어머니께 들켜서 심하게 야단을 맞으셨다고 하시면서 왜 그랬는지를 이야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과 경계에 부딪친다. 그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마음을 열고 보면 힐링이 아닌 것이 없다. 이왕 태어났는데 멋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고마운 것을…. 저들이 있어 내가 살 수 있으니 말이다.법정 스님의 글은 간결하면서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원래 참선 공부만 하시던 분이라 글을 쓰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그런 스님에게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법정 스님이 합천 해인사에 참배를 하고 팔만대장
신부님들을 위한 어떤 강의에서 강사가 "한국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뭘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후 그 강사는 "여러 조사들을 종합해 봤는데, 첫째는 '건강'이었고, 두 번째는 '가족', 세 번째는 '재산'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종교 혹은 신앙은 몇 위쯤 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종교는 5위였다는 설명을 했다. 그 만큼 현세적 가치가 종교적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조사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아마도 재산이 세 번째인 것은 체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모
"그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먼저 이름을 대고, 다음에 나이나 직업, 직책 등을 나열한다. 하지만 이름은 가리키는 '말'일 뿐이어서 '그대'라는 말이나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나이나 직업, 직책 등은 자주 바뀌는 것이니 장식품이나 다름없다. 누군가 나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어라고 답변할 것인가? 본질(essence)이란 나를 나이게끔 만드는 무엇, 나를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구별하게 만드는 근본적이고 고유한 사물이나 성질을 말한다. 나의 본질을 찾아보기로 한다. 육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명품(名品)을 좋아한다. 명품시계, 명품가방, 명품의류 등을 소유하게 되면 마음의 뿌듯함은 물론이요, 다른 이에게도 은근히 뽐내고 싶어 한다. 이에 반해 명품을 모방하거나 비슷하게 만든 것을 모조품이라 하는데, 언뜻 보기에 명품과 별 차이가 없고, 명품 못지않은 품질로 많은 이들을 속이기도 한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비싼 명품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모조품을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명품이 모조품이 될 수 없고, 모조품 또한 명품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명품과 같은 재질과 형태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 안에 명인
오래된 사찰에 들어갈 때 대개 첫 번째 맞이하는 문은 일주문(一柱門)이다. 이 문의 이름이 갖는 의미를 '기둥이 하나인 문'이라고 풀이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기둥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보통이다. 부산 범어사나 창원 불곡사의 일주문은 기둥이 네 개다. 그래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문'이라는 조금 억지스러운 해석도 있다. 하지만 고성에 위치한 금강산 건봉사의 일주문은 기둥 네 개가 사각형으로 배열되어 있고 공주 마곡사의 문은 두 개를 더하여 기둥 여섯 개가 역시 사각형 모양으로 받치고 있어서 이 설명과 맞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올 한해를 자비의 특별희년으로 선포하였다. 희년(禧年)이란 고대 히브리 전통에서 50년마다 지내던 특별한 해로써, 모든 이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소유지를 돌려주며, 재산을 잃고 인격적 자유마저 상실한 가정들에 회생의 길을 열어주고 평등을 회복하게 되는, 말 그대로 기쁨의 해를 말한다. 이런 희년을 예외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라는 표어로 특별히 선포하였다. 즉 이번 특별희년의 본질은 하느님 자비를 통하여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에 있다. 자비! 세상을 향해 막연히 사랑한다는 공허한 울림처럼 느껴질
두어 달 전 청주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이불을 털다 실수로 현금 다발을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대학생 자녀의 등록금을 위해 마련한 이 돈은 대부분 선량한 주민에 의해 회수되었지만 일부는 없어진 것을 보면 "웬 횡재냐"며 돈을 주워간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내 돈이 아니다"며 그냥 지나친 사람도 있었을 게다.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욕심이 일어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 윤리와 장기적인 이익을 생각하여 욕구를 절제하는 사람, 일시적인 손해로 보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나누어주는 사람이다. 이 세 가지 행동양식
꽃이 만개하는 봄이다. 온 천지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꽃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고(故) 최민순(1912-1975) 신부님의 아주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시(詩) 한편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꽃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꽃의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꽃의 아름다우심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예쁜 꽃을 바라보고 향기를 맡는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꽃을 소유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 꽃이 시들거나 향기가 없어지면 또 다른 꽃을 찾아 꽃병에 두고 그 시들해진 꽃은 버린다. 한편, 어떤 이들은 꽃을 바라보
총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평소 정치판이 마뜩하지 않아도 어쨌든 나라를 끌고 가는 이들을 선출하는 일이니 무관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까를 고민한다면 불교의 십선(十善)이 참고해 볼 만하다.십선의 첫 번째는 '살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이나 미물까지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평소 낚시나 사냥을 즐기거나 해충이라 할지라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생명의 기본 욕구조차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해충이나 짐승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들끼리
우리는 흔히 좋아하는 감정이 곧 사랑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 혼란 속에서 사랑이라는 뜻을 단순히 어떤 사람을, 심지어 동물이나 사물까지도 포함한 특정 대상을 좋아하는 감정이나 혹은 그 열정 안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행동 등을 사랑의 정의(定議)로 앞세운다. 그러다 보니 사랑이라는 말이 어느 땐 너무 가벼운 말처럼 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랑은 결코 어떤 현상이나 감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의 내면 안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아래에 서술되어 있는 글을 보면서 이런 경우에 그 상대방을 향한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