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사 주지 도신

2016년도 2월에 세기의 관심사가 될 만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바둑의 최고수였던 이세돌과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바둑 대결을 한 것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었다. 일본에서는 바둑을 기술(棋術)이라고 하지 않고 기도(棋道)라고 한다. 말 그대로 술(術)은 솜씨나 재주를 말하고, 도(道)는 정신세계를 말한다. 바둑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바둑을 정신세계의 한 부분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바둑의 기술을 어느 정도 습득하면 바둑책을 보따리 해서 산속 깊이 들어가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호적수를 만나 바둑 한 판을 이겨내려면 많은 인내와 절제가 있어야 한다. 인내와 절제의 숙련은 마음 다스림에서 가능하다. 마음 다스림의 깊은 정신세계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361개의 점으로 구성된 바둑판에서는 검은 돌과 흰 돌의 교차 변화 수가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나온다. 이런 변화 수에서 가장 적합한 수를 찾아내기 위해 지금도 많은 바둑인이 수도승과 같이 마음을 수련한다. 그래서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거의 신적 존재인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 대결했을 때 우리는 알파고가 이세돌을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바둑을 정신세계의 한 영역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계가 진행되는 동안 그 충격은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세돌이 한 판을 이겼지만, 결과는 1승 4패로 대참패였다. 무수한 정보를 기억하고 그 정보 중에서 가장 유익한 것들을 실전에 응용한 인공지능이 이세돌을 꺾은 것이다. 우리가 믿어왔던 인간만이 가진 인내와 절제 그리고 도(道)가 그 앞에서 무기력하게 넘어지는 것 같았다.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세돌이 많은 장고와 인내를 거쳐 한 수를 착수하는 반면에 알파고는 한 수를 두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바둑은 수학이며 과학적 탐구가 필요한 게임이라는 것이었다.

인간 정신세계의 한 표현이고 예술의 극치로써 문학의 심장인 시(詩)의 세계에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김제민·김근형)와 카카오 계열 AI 전문기업 카카오브레인이 공동 개발한 인공지능 작가 '시아'가 뛰어들었다. 인공지능의 특징은 정보수집과 분석이다. 개발자에 따르면 AI 작가 '시아'도 한국 근·현대시 1만 2000여 편을 학습했다고 한다. 키워드만 넣으면 낱말을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고, 시를 쓰는데 30초 정도 걸린다는 것이다. 시인에 따라 또는 시에 따라 몇 년에 거쳐 창작될 수도 있는 것을 30초에 써낸다니 놀라운 일 아닌가.

인간에겐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대단히 크다. 사실 모든 예술은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 욕구의 결과물들이다. 상상력은 분명 보이지 않는 세계이고, 예술은 이것을 근본으로 하고 있지만 이것이 기호화되면 수학적 성질과 과학적 성질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기술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이세돌을 이기고 시의 세계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요즘은 인간을 닮아가는 인공지능과 그것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진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무 기호화된 인간의 정신세계에는 인공지능이 뛰어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기실 필자가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수학과 과학적 능력이 총 집약된 인공지능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흉내 내고 조작하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마음을 대신하고 인간의 마음을 교육시킨다고 생각해보자 소름 돋는 일 아닌가. 개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어쩔 수 없지만 인간의 영역인 정신세계를 AI가 지니는 것은 반대한다.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은 AI가 어떤 의도나 계획에 의해 인간보다 더 깊은 침묵과 인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아마도 이때는 인간이 AI에게 완전 정복된 이후가 아닐까 싶다. 인간 정신의 영역을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대신 하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그런 개발에 대한 도전 또한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공될 필요 없이 하늘은 하늘대로 공기는 공기대로 물은 물대로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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