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교사로서 한 해를 보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54회 전국교육자료전에 참가한 것이다. 전국교육자료전은 교육방법 개선과 교육자료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한 연구대회로, 2023년에는 '새로운 변화 미래교육의 중심, 학생이 희망입니다'라는 연구 대주제를 바탕으로 총 75팀의 우수한 교육자료가 출품됐다.필자의 연구팀은 '오늘은 무슨 날?'이라는 연구주제로 계기교육 자료를 개발했다. AI코스웨어 기반 교과서, 인공지능교육, 생성형AI활용 등 신기술을 활용한 교육현장의 새로운 제안들이 쏟아지는 반면, 상대적으로 계기교육은 그저 오래전부터
"선생님, 저희들이 선생님 퇴임하실 때 카퍼레이드 해드리기로 했어요."이 말은 1995년도 경남 시골 초등학교 6학년 교실 장재훈이가 한 말이었다. 재훈아, 어디 있니? 선생님은 지난 2024년 1월 5일 너희들이 해준다는 카퍼레이드 같은 마지막 수업으로 퇴임식을 대신했단다.재훈아,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 알고 있지? 그날 이야기 속 주인공 프란츠가 아무 것도 모르고 교실에 들어갔는데"여러분, 오늘은 내 마지막 수업이에요. 오늘로써 프랑스어 공부는 끝입니다."이렇게 아멜 선생님은 사십 년을 분신처럼 함께 해 온 교실을 떠났
1984년 교직에 첫발을 들인 이래로 강산이 4번 변할 동안 교직 활동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여러 면에서 감회가 새롭다. 아내와 세 딸과 가족으로서의 인연, 동료 교원, 많은 제자와의 인연들이 새록새록 머릿속에 기억들이 떠오른다.첫 발령학교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병아리 교사를 선배 교사들이 학교생활에 대해 일러주신 많은 도움이 너무 감사하다. 문서작성이며, 업무 추진에 대한 조언에 감사하고, 후배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 주어 필자도 그것이 몸에 배어 지금까지도 후배들에게 꼭 존댓말을 쓰고 있으니 선배 교사들과의 소중한 인연이 시
"하나! 둘! 셋! 넷!" 적막하던 운동장에 아이들의 함성과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변을 지나가던 주민들은 좀처럼 보지 못했던 광경에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숨이 차긴 했지만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줄을 뛰어넘고, 마을 어른들은 아이들이 줄넘기를 잘 할 수 있도록 정성스레 줄을 돌렸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 제한된 인원이긴 했지만 한동안 움츠렸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에 사업 담당자로서 눈시울이 붉어졌다.대전시교육청의 '우리마을스포츠클럽(洞Go同樂)'은 1년간의 시범운영을 거쳐 2020년 본격적으로 시
고학년 학급 담임을 맡을 때 학생들에게 종종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감사합니다"였다. 학생들이 필자에게 여러 가지 상황에서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숙제를 검사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도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교사가 학생의 숙제를 매번 검사하는 행동은 당연한 일일까?초등학교 도덕시간에 학생은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던 사회의 통념들을 교과서로 처음 만나게 된다. 그 중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단원이 있다. 주된 내용은 남이 만들어주는 삶이 아닌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다. 사
2024년은 푸른 용의 해이다. 용은 사람들에게 신령스러운 권위와 리더의 상징이다. 왕의 얼굴은 용안, 왕의 자리는 용상으로 부르며 격을 달리한다. 용이 신령스러우며 변화무쌍한 형태에 따라 사람을 비유하여 잠룡, 현룡, 약룡, 비룡, 항룡으로 설명하였다. 학생의 성장과 바람직한 변화를 대상으로 전념하는 교원은 용의 변화 모습에 비유하여 21세기 인재상인 글로컬 리더 교육지침을 1월의 교단일기에 적어본다.첫째, 등용문을 거쳐야 용이 된다. 전설에 따르면 황하 상류에 용문이라는 협곡이 있었다. 그 물살이 어찌나 센지 보통 물고기는 이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심리학교수인 게리 슈왈츠가 제시한 한 사례이다. 미국의 한 소녀가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후 지속적으로 괴한에 의해 살해되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수차례에 걸친 정신과 치료에도 소용이 없어 부모는 소녀를 경찰에 데리고 가게 되는데, 경찰은 소녀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를 그려 소녀에게 심장을 기증한 랄프라는 소년의 살해범을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사례이다. 게리 교수는 이외에도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기증자의 특성과 관련 있는 여러 반응을 보였다는 사례들을 제시하고, 세포 기억설(cell
유난히 차멀미가 심해서 고등학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선택했다. 남들은 왜 그런 시골 학교를 가느냐고 의아해 했지만 당당히 살리라 다짐했다. 그 결정은 옳았다. 그곳에서 내 삶에 영향을 준 선생님을 두 분이나 만났다. 먼저 국어선생님. 선생님의 판서는 환상 그 자체였다. 그 눈부신 한자 필체에는 맹신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필기할 때마다 선생님 필체를 흉내 내느라 정신 없었다. 그리고 수학선생님. 가운데 가르마가 인상적인 총각 선생님이셨다. 수업 한 시간 동안 분필 한 통을 모두 써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열정적인 수업 내내
MZ 청렴 서포터즈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필자가 요즘 사회에서 말하는 MZ세대라는 점과 교직 생활을 하면서 늘 혁신과 변화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필자는 현재 우리 유치원의 문화를 그대로 이어 나가기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 방향성에 대해 유치원이 아닌, 다른 학교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청렴 서포터즈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청렴'이라는 단어는 평소 공문에서만 보던 단어로, 정확한 의미를 찾고자 검색해 봤지만 '청렴'이라는 단어는 너
"선생님! 수학익힘책이 사라졌어요. 책상 속에도 없고 사물함에도 없어요."수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이렇게 교과서를 못 찾는 아이가 있으면 정말 난감하다. 책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어제까지 있던 책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이의 책상 속을 살펴보니 뒤집힌 교과서와 구겨진 학습지로 손가락 하나도 들어갈 틈이 안 보인다. 수학익힘책은 책상 속 모든 물건을 꺼내고 나서야 종합장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이런 풍경은 학기 초 우리 반에서 자주 보았던 모습이다. 그랬던 아이들이 언제부터인지 더 이상 책이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는다.나는 학기 초
11월 말이 되면 중학교 3학년 교실은 조용하면서 소란스럽다. 일반계고,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등을 지원하는 아이들과 자기 적성과 특기를 살려 직업계를 선택하는 아이들이 원서 접수를 앞두고 어떤 학교가 좋을지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밖에서도 들릴 지경이다.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 중 진학을 못 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학생 수가 줄면서 학생 수만큼 정원이 확보되지 못하는 곳이 없기에 원하는 학교인지 아닌지가 문제일지언정 고등학교 자체를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은 없기 때문이다.그런데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한 남학생이 교무실에 찾아와 수업 시간에 읽던 소설책을 반납하며 '선생님, 드디어 다 읽었어요. 그런데 소설책을 끝까지 다 읽는 건 처음 해봐요.'라고 한다. 이럴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칭찬이 필요하다.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처럼 학생을 바라보며 선생님은 네가 해낼 줄 알고 있었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을 읽은 네가 정말 자랑스럽고 기특하다고 칭찬해준다.소설책 읽기를 힘들어했던 아이가 방과후까지 남아 혼자 힘으로 끝까지 책을 읽어냈을 때, 아이뿐만 아니라 교사도 감동을 받는다. 수업은 이처럼 아이들에게 숨겨진 보석을 발견하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디에 앉아요?"첫 제자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가슴이 뛰고 주체할 수 없이 기뻤다.평소라면 지나쳤을 인연이지만 2022년 3월, 4학년 3반의 학생과 담임교사라는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우린 이어졌다. 간절함으로 울며 지새우던 수많은 날들을 웃어 보내주며 드디어 교사가 된 것이다.3월의 난 열정으로 가득했다. 학생들을 다방면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시키리라 하는 다짐으로… 그리고 그 서툰 열정이 나를 무너지게 했다.평화로웠던 3,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자, 학생들 간의 갈등이 잦아졌다. 갈등을 해소시키며
올해는 그동안 맡아왔던 학년 담임에서 벗어나 체육 전담 교사를 맡았다. 학생들을 안전하게 돌봐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있던 담임교사를 내려놓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홀가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기대감이 걱정으로 다가왔다.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고 즐기는 과목 중 하나인 체육수업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이끌어가야 할지 조금 막막했기 때문이다.필자는 좋은 체육수업을 위해 학기 초부터 다양한 연구를 시작했고, 수업시간에 필자의 체육 철학을 담으려 노력했다. 그러던 중 최근 교육청에서 실시한 초등학교 체육 전담교사 역량 강화 연수를 듣
학교 민원은 정말 다양하다. 어려움 호소가 대부분이지만 얼마 전 아침 전화는 조금 특별했다. 민원인께서 대전도안고 현장체험학습 상황을 보시고 시교육청 홈페이지 '칭찬합시다'에 글을 올렸으니 교감도 꼭 칭찬해주면 좋겠다는 최초의 긍정 민원이었다.확인해보니 '세상에 이런 선생님과 학생들이 있네'로 시작되는 글이 있었다. '꽃을 배경으로 다정한 사진 찰칵', '우리 모둠이 생각하는 가장 소중한 것 클로즈업' 등의 활동을 하며 서로의 생각을 즐겁게 나누는 모습을 보시고, 감동하셔서 직접 전화까지 주신 것이다.연일 보도되는 학폭 관련 뉴스에
2023년 9월 21일 교권보호 4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및 「교육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습니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몇몇 사안들이 이제라도 반영되었음에 안도감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그동안 교권침해로 말 못 할 피해를 겪으며 극단적 선택까지 하셨던 동료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이번 교권보호 4법 통과를 시작으로 많은 부분에서 법과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학교 현장 역시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존중과 배려를 바
나는 한국어 학급 담임이다. 우리 반에는 12명의 학생이 있는데,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해 학년을 낮추어 입급한 3학년까지 국적도 성별도 연령도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살아간다.얼마 전 하나(가명)의 부모님이 학교에 상담을 오셨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하나의 부모님께서는 한국어 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으셨다. 학부모와 한국어 소통이 어려운 경우에는 통역을 구하거나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상담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상담 자체가 쉽지 않다.하나는 수업 태도도 좋고, 빠르게 한국어를 익혀나갔던 학생이었는데 갑자기 한국어 수
한 유력한 분과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70세가 넘는 고령임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은 건강과 왕성한 활동력을 지니신 분이다. 그분의 건강 비결은 건강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이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자기관리였다. 선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후천적인 건강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례이다.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우리 주변에서 건강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지식과 상업적 목적을 위한 과장된 정보도 많아서 주의가 요구된다.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정보의 수용과 그릇
새 학년도를 맞이할 때마다 이 학생은 나와 '케미'가 맞을지, 이 학생의 '전투력'은 어떨지 지레짐작하며 두려움 반, 설렘 반의 기분으로 아이들과 만난다. 모든 게 낯선 입학부터 학교에서 떠나보내는 시원섭섭한 졸업까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생활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다른 지역에서 우리 학교로 온 아이가 있었다. 몸이 아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아이라는 말씀을 전해 듣고, "내가 사고라도 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덜컥 겁부터 났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언제나 예의 바르고 단정한 멋
"學不厭而敎不倦"(배움에 싫증 내지 아니하며, 가르침에 게을리하지 않는다.)- ≪孟子(맹자)≫ 中교직에 몸담아 해를 거듭할 때마다 가르침과 배움의 중요성을 매번 깨닫곤 한다.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교사로서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에 관한 끝없는 고민을 내포한다.학생들에게 교과 내용을 충실히 담으면서도, 관심 있는 주제와 삶을 연결해 즐겁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수업 시간마다 빛나는 학생들을 마주하는 교사라면 누구든 그러하듯), 이것이 늘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