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덴마크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휘게 라이프'라는 걸 접하게 됐다. 이는 편안하고 아늑한 상태를 추구하는 덴마크의 라이프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확행'과 비슷한 의미였다. '소확행'은 몇 해 전부터 우리 생활 저변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사회, 경제, 마케팅 전략 등 여러 영역에 적용되기도 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어느 수필집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그리고 새로 산 정
미국 선거를 TV로 보면서 우리의 근현대사까지 얘기가 흘러갔을 때 국밥을 뜨던 선배는 말했다."전체를 끌고 가려면 어쩔 수 없어. 대를 위해선 희생이 필요했을 테지. 먹고 살게 해 줬잖아?"나는 소화하기가 힘들었다. 그 '생각'이 끌고 올 풍경들이 서슬 퍼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물었다."그럼, 형님. 동생이 오늘처럼 국밥 먹고 나가다가 군인들에게 맞아서 뒤통수가 깨져 죽는데도 그리 얘기할 거요?"지금도 우리가 사는 거리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치고 있다. 어떤 생각들이 부딪치고 있는 거리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어 고요한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마스크를 챙긴 후 집을 나선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바깥일이 아예 없는 요즈음,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우리 동네에는 산책 코스가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 비교적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소나무 숲과 유아 체험 숲이 있는 코스가 나는 제일 좋다. 이 곳에서 혼자 오붓하게 하루를 여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요즈음은 전날 써놓았던 원고를 가지고 가서 퇴고하는 시간이 늘었다. 좀 더 일찍 눈이 떠지는 날에는 아예 읽어야 할 책들도 동행한다. 최근에 책을 낸 친지나 후배들의 파릇한
신(神)이 계시어 이제껏 살아온 생을 반납하고, 다시 새 삶을 주신다면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되돌아보면 지난날의 허물이 아직도 후회로 잔뜩 남아있기에 자신이 없다.어쩌다 보니 여든이 가까운 나이가 됐다. 요즘 몸의 여기저기에 고장도 나고, 더러 투정도 부린다. 환절기에 감기만 들어도 잔뜩 움츠러든다. 기침만 해도 겁이 덜컥 난다. 더욱이 요즘 코로나19라는 집단 감염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도 두렵다. 몇 달 전부터 걸을 때마다 무릎에 통증이 느껴져 아프다. 뒤뚱뒤뚱 내가 봐도 천상 오리걸음이다. 우선 가까운 한의원에 들러 여러 차례
우리 사회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과 코로나19 바이러스 등 두 번의 감염병 사태를 겪으면서 슈퍼전파자라는 낯선 명칭이 새롭게 등장했다. 자료에 의하면 다른 확진자에 비해 월등히 많은 사람에게 감염병을 전파 시킨 이를 일컫는 말이다. 내가 검색한 인터넷의 백과사전에는 그 외의 몇 가지 의학적인 관련 항목이 기록돼 있지만, 언론에서 그 용어를 사용할 때는 한결같이 많은 감염자를 양산함으로써 감염병 예방 정책에 혼란을 초래한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전염병 역사에 최초의 슈퍼전파자는 메리 맬런이라는 미국 여성이었다. 그녀는 요리사였는데
몇 번을 생각해도 팬데믹 사안에 대해 쓰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이 끔찍한 상황을 외면할 수도 없으니 똑바로 바라보는 쪽을 선택해 본다. 세상 어떤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드는 현대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질병으로 세상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필자와 같은 소시민은 사태 해결을 위해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예방 수칙을 잘 따르는 것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알고 행동할 뿐이다. 이처럼 참담한 상황에서 문학을 논하자는 것을 혹자는 부질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이 났다고 다 같이 달아날 수는 없지 않
세계 각국들이 C19 바이러스로 인해 전례 없는 어려움에 놓여 있다. 한국은 슈퍼 전파자 색출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첨단의 진단시스템과 의료인들의 용기와 헌신이 뒤따랐다. 연일 투명하고 신속한 통계치를 발표하는 질병관리본부의 기민한 대응은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줌과 동시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숨 가빴던 고비를 넘기면서 확진자 수가 한 자리로 줄어들었다. 불안과 공포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뀌자 너도 나도 안도했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의 안전을 위해 좀 더 조심해야 했다. 위기를
자연은 정말 예의가 바르다. 우리 인간이 미처 정신 차리지 못하고 제 할 일을 못해 버벅거리고 있을 때도 그는 호통도 치지 않고 우리 사이를 매력있게 잘도 빠져나간다. 상대가 혹여 길을 잘 못 드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나무라는 법도 없이 유유히 제 갈 길만을 간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제 할 도리는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매듭짓고 지나가는 지 절로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제가 할 일을 당당히 해놓았으니 큰 소리 한 번이라도 칠 법도 하건만 도무지 꾸짖지도 나무라지도 않는다. 이처럼 자연은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하고서도
때로 사람의 손은 입술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손의 생김새 자체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농사꾼의 손은 생명을 키우느라 부드러움을 다 땅에다 심은 것 같습니다. 씨앗을 만지는 손은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신 박경리 선생님은 노동의 땀을 모르고 어찌 창작의 땀을 알겠느냐고 평소 호미를 들고 손수 농사일을 하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손은 글 쓰는 손이 아니라 노동하는 손으로 조각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아내의 손들은 대개 젖어 있고 어쩌다 바
재래시장에 대한 선호도는 다분히 개인의 취향이 깃든 동선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나의 지인들은 집앞에 큰 시장이 있어서 얼마나 좋겠느냐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 부러움을 맘껏 누리지 못한다. 언젠가 청과물상회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복숭아였다. 아들이 좋아하는 말깡한 걸 고르려고 무심코(?) 손가락으로 눌러보았는데, 날선 목소리와 그 비슷한 눈빛의 화살이 나를 명중했다. 당연히 손끝 자국에 멍이 들어, 과육이 무르게 되면 상품가치가 떨어질 터이다. 생업의 질서에 따른 고충을 헤아리지만, 상황이 어찌나 부끄러웠
연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추가되면서 감염 공포에 떠는 사람들이 많다. 아침 10시만 되면 TV 앞에 앉아 정부의 발표를 듣는 게 요즘 일과처럼 되어 버렸다. 3월 2일 기준으로 4200명이 넘었으니 무서운 것은 사실이다. 외국에서는 코리아포비아라 하여 80여 개국에서 한국인의 입국을 싫어하고 있다. 한국인 공포증이란 말이다. 모리셔스에서는 신혼부부들이 허술한 시설에 격리되었고 베트남에서는 착륙하려던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일파만파로 한국의 위상이 한없이 추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당국에서는 확산을 막기 위해
'마당과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과, '마당과 텃밭이 없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과연 어떻게 다를까?아는 문인 중에 익숙한 서울생활을 접고 충청도로 이사를 간 사람이 있는데,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래 시골생활이 어때요?"라고 묻자, 마당과 텃밭 덕분에 자신의 삶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자기는 처음으로 마당과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마당'만 바라보아도 없던 여유가 생긴다고 했다. 빨래도 널고 곡식도 말리고 낙엽도 쓸고 흰 눈도 치우고, 작은 꽃들이
문학을 하는 사람에게 1월은 특별한 달이다. 신춘문예의 결과물들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이 길을 선택하고 난 후 나는 매년 모든 부문의 모든 작품과 심사평, 수상소감을 다 읽어봤다. 기성작가들의 작품보다 질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꼭 찾아 읽는 이유는 이들이 신인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없던 참신성이나 아직 정제되지 않은 패기를 나는 사랑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면모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한 줄을 읽으면 그 다음 줄이 예상되는 어디서 본 듯한 글들이, 기술이 아닌 예술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게 나는 불편하다.
신문사마다 신춘문예의 공고가 나기 시작할 때가 되면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대학 졸업을 전후하여 몇 차례 미역국을 먹은 후 아예 꿈을 접었을 때인데도 그랬다. 마흔 가까이가 된 어느 날, 공들여 쓴 소설 한 편을 들고 어린 아들애와 함께 광화문까지 나가 호기롭게 접수를 했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당연히 낙선했다. 다음 해부터는 나름 치밀하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일일이 원고지에 옮겨 써야 투고가 되던 시기여서 마무리를 하려면 손목 꽤나 아팠다. 미리 써둔 소설도 마감시간에 임박해서 다시 보면 어쩜 그리
불가의 화두 중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은 무(無)라,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다',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마음 집착이 없는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내가 머무는 암자는 산중에 있다. 암자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비탈길이다. 그 길옆은 바로 산이고 숲이다. 벚나무도 있고 뽕나무도 있고 참나무도 있고 매화도 있다. 봄이면 희망의 싹을 돋우고 틔워 초록의 꿈을 꾸게 하곤 한다.나는 그 길을 오가면서 '너희들은 내게 무슨 말을 전하려 하는가'라고 묻곤 한다. 그러면 나무들은 곱디고운 잎으로, 꽃으로, 맑
여름내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이 온 나라를 들썩였다. 평소 시사적인 문제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오던 터여서 문제의 핵심을 집기가 쉽지 않았다. 어지럽게 쏟아지는 말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알고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수시로 SNS를 드나들며 관련된 정보들을 보고 들었다. 덕분에 제법 논리적인 정보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유튜버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인 방송 시스템을 갖추고 그만한 자료를 준비해 방송하려면 적잖은 수고가 필요할 것이고, 전문적인 지식도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미국 시카고 대 심리학과 뉴가튼 교수는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 며 현재 노후 세대를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로 표현했다. 현재의 노인들은 베이비부머로서 젊었을 시절에는 가족의 행복과 국가의 부강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신 분들이다. 이 말은 자신을 위해 살았다는 표현보다 가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그야말로 이 나라가 반듯하게 서기까지 온 몸을 불사르며 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말이다.그렇게 바쁘게 살다보니 어느 듯 은퇴의 시기에 도달하게 되었고 비로소 나를 위해 투자할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미국인 친구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그녀는 보스턴에서의 삶을 접고 인도 방갈로에 명상센터를 열었다며, 내게 시간이 나면 꼭 한 번 오라고 했다. 나는 호기심에 차서 그녀가 알려준 웹사이트를 열어보았다. 웹 사이트를 열자 마자 초록색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셨다. 어디선가 사랑하는 이의 숨결 같은 바람이 불어왔고, 내 앞에 펼쳐진 화면은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처럼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자유로 충만했다. 웹사이트에는 계절별로, 시간별로 또 그룹별로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치유프로그램이 있었다. 숙식을
지난 5월, 직장인을 위한 주말 수업을 하는 학원을 찾아 수강신청을 했다. 컴퓨터활용능력 2급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다.컴퓨터활용능력 2급이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시행하는 사무정보 분야의 국가기술자격 시험이다. 필기와 실기로 나뉘고, 필기 합격 후 실기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실기는 문제지에 나온 지시사항대로 엑셀 파일을 작성하는 방식이다. 즉, 마이크로소프트 엑셀(Microsoft Excel)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내가 매주 토요일 오전에 학원에서 엑셀 실기를 배운다고 하자, 직장 동료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 번은 없다. 매무새가 흐트러질 때면 곱씹는 말이다. 살다보면 술렁거릴 때가 있다. 야릇한 떨림이랄까, 호흡이 쿵쾅거릴 때면 내가 나를 다잡는 말이다. 그래도 어설프다. 왜 사는가. 언제를 위한 오늘이었던가. 이 세상 어딘들 이 해골 하나 눕힐 곳 없으랴. 그러면 꼿꼿해졌다. 내가 나를 데리고 떠나는 길,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는 불덩어리 같은 몸. 젊은 날엔 팔만사천이었는데 얼굴 붉히며 하나 둘 버리고 지금엔 마지막 남은 나조차도 버리려 한다. 돌아보면 너절하고 궁색 맞고 찌질하기까지 하다. 완전주의자를 꿈꿨지만 완전주의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