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공동연구 때문에 방학 동안 미국에 있는 대학에 한 달 머물렀던 적이 있다. 연구실과 숙소를 오가는 단순한 일상 중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셔틀버스 시간에 맞춰서 정류장에 나가는 것이었다. 한 번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막차를 놓치면 정말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하지만, 운 좋게도, 미국 친구가 자기가 새 차를 뽑아서 예전에 타던 자동차가 놀고 있으니, 한 달 동안 그 차를 쓰라고 했다. 너무 오래된 차라서 문도 반
"땅이 더러우면 초목이 무성하지만,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 평범하지만 늘 인용되는 삶의 지혜가 함축된 말이다. 사실 살아가면서 때론 때 묻고 더러워짐도 수용하여야 하며 지나치게 깨끗함만 추구하는 것도 지양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처한 환경이나 입장, 조건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훈련이나 습성은 늘 필요하다.그런데 하루의 평안한 일상이나 아이티가 아닌 이 땅에서 숨 쉬고 살아갈 수 있음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있다. 아이티 공화국은 서인도 제도에 있는 국가이다. 이 나라는 21세기 첨단의 세상인데도 조폭이
"당신은 위암에 걸렸습니다."환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아직 병의 진행 정도를 다 확인한 것이 아니고 지금은 치료방법이 좋아져서 예전 같지 않다"고 말을 해줘도 주눅 들고 실망한 얼굴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암이라는 이야기가 불치병처럼 그리고 절망이라는 단어와 동일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물론 현재는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완치가 가능한 암이 많아졌고, 장기 생존한 암환자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러시아
변화난측(變化難測)이다. 세상이 하도 변화무쌍하게 변하다보니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다. 1960~80년대에는 산아제한 정책을 그렇게 펼치더니 지금은 애를 안 낳아서 문제인 상황이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캠페인 표어는 당시 정부와 사회가 얼마나 산아제한에 목을 맸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미 소멸위험지수에 빨간불이 들어온 내 고향 부여는 머지않은 미래에 지도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가까운 청양군과 통합하여 부청군이란 괴상한 행정구역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진즉에
만약 17억 원의 현금을 준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냄새가 살짝 나는 이 질문은 사실 한 사회심리학 연구에서 참여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대가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포기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중에는 초콜릿, 해변, 봄, 그리고 햇빛이 있었다. 만약 당신이라면 17억을 받는 대가로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짧은 시간동안이 아니라 영원히 포기하는 것이다.만약 나였다면, 초콜릿은 포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스크
"위에 비교하면 족하지 못하나, 아래에 비교하면 남음이 있다". 명심보감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웃과 비교하며 나의 처지나 자신의 가진 것에 만족보다는 적음을 탓하곤 한다. 이런 심성은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기에 금언이나 명귀를 되새기며 담금질을 반복한다. 나를 훈련하고 연마하며 마음의 그릇을 채우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중에 산행은 오랜 동안 다수가 선호한 수단이며 인간의 삶과 여러 면에서 비교 된다. 우선, 산행은 오로지 내가 두발로 걸어야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힘들어도 누가 대신해 줄 수
지난 2년간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 사건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의심의 여지없이 코로나19 감염증을 뽑을 것이다. 매일 들리는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 상황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고 있고 희망과 예측은 일찌감치 이번 상황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종식이라는 말보다는 공존 혹은 타협이라는 방식으로 코로나에 대한 대응이 바뀌고 있다.코로나로 많은 것이 변했다. 코로나와 관련한 변화는 이제 새로운 일상이 돼 버렸다. 잠깐 볼 일이 있어 문 앞에 나섰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스크가 없는 맨 얼굴을 확인하고 허둥지둥
평균수명의 연장, 퇴직, 자녀의 독립 등으로 인해 노년기에는 중요한 사회적 역할이나 책임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여가시간이 증가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강제퇴직제도로 인하여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고 강제로 은퇴할 수밖에 없는 노인들이 많다. 따라서 노년기의 여가시간은 이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강제적으로 부여된 여가시간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많은 노인들은 가족 안에서 전통적인 웃어른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가족성원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호랑이는 한 번 사냥 성공을 위하여 열아홉 번의 고배를 마신다"고 한다. 언제든지 배고프면 손쉽게 먹이를 움켜 챌 것 같은 백수의 왕도 어렵게 먹이를 구한다. 오직 힘의 논리만 작용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실패는 다반사다. 하물며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작동되는 인간사회에서 실패는 당연지사인데도 모두가 성공만을 꿈꾼다. 그렇기에 실패를 바탕 삼아 반전에 성공한 각각의 스토리는 새로운 성장 동력과 동기부여가 된다.에이브라함 링컨은 실패를 밥 먹듯이 했지만 끝내 좌절하지 않고 인류 역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궁벽한 시골에서 태어나 정규 교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몸과 마음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많이 본다. 발달 장애가 심한 아이와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외래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여러 가지 보장구를 차고 있는 왜소한 아이에게 많은 사람의 시선이 간다. 여기까지는 넘어갈 만하다. 연세가 있어 뵈는 할머니 한 분이 엄마와 아이를 뻔히 바라보다 한마디 던진다. "아이가 힘들겠네. 말은 잘 해요? 엄마가 고생하겠네." 분명히 걱정하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아이 엄마의 얼굴이 영 불편해 보이더니 "예"라고 말끝을 흐리고는 자리를 피해 버린다. 그 짧은 시간 옆에 있
대선 예비주자들이 출마를 선언한 뒤 공통적으로 하는 일 중 하나가 대한노인회를 찾아가는 것이다. 가장 큰 표밭인 노인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다. 지난 대선에서 60대의 투표율은 84.1%로 어떤 연령층보다도 높다. 이들에게 선거일은 모처럼 쉬는 빨간 날이 아니다. 휠체어를 타고 링거를 맞더라도 노인들은 투표를 한다. 따라서 이들의 의사에 반하거나 밉보이는 정책을 펼치는 정부나 정당은 감히 없다. 그랬다간 정권을 쟁취하거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노인에게 있어 복지는 표심을 얻는데 중요한 무기다. 이러한 복지는 비가역적(非可逆
내 몸에는 나만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최근의 과학적 진보는 우리의 신체는 '나'라는 존재만이 독점적으로 그리고 단독으로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가 함께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수는 약 10조 개다. 하지만 우리 몸에 거주하는 미생물의 수는 이보다 열 배나 많은 약 100조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대부분은 장내에 거주하는 박테리아, 즉 장내미생물이다.수많은 장내미생물이 만들어낸 생태계를 장내미생물총 또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
"일단 위험이 이해되면 공포의 절반은 사라진다."14세기 중반 유럽을 초토화한 페스트(흑사병)에 대한 두려움과 악몽을 기록한 어느 신부의 고백이다. 전염병 팬더믹은 과거나 현재도 인류의 삶과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1347년 이탈리아에서 퍼지기 시작한 흑사병은 아주 빠르게 전 유럽 인구의 1/3을 희생시키며 지옥의 세계를 만들었다. 당시 뾰족한 예방책도 치료도 없어 그저 종교적 주술에만 매달렸다. 급기야는 신의 노여움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가시채찍으로 자신의 온몸을 학대하는가 하면 곳곳에서 수많은 유태인을 집단학살하는 만행이
좋은 것은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진료실에서 간혹 이 말이 다 맞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암에 좋은 음식 등이 언론에 소개되면, 그 음식만을 고집하다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웃지 못 할 일이 생긴다. 채식이 좋다면서 육류 섭취를 지나치게 줄여 균형 잡힌 영양 공급을 방해해 환자의 회복을 더디게 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좋은 것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득이 된다는 말은 한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까지는 득이 되지만 그 이상은 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연산군 7년 5월 13일 조선실록에 나와 있는 상참 중의 일화다. 승지 신용개(申用漑)가 전라도 남월의 양민 김금산이 그 아비의 머리카락(상투)을 휘어잡았으니 이는 참부대시이기로 초복하기를 건의한다. 이에 연산군이 율대로 하도록 명한다. 참부대시(斬不待時)는 오늘날로 치면 사형이다. 조선시대에서 사람 목숨을 끊는 사형이란 자연 질서에 반하는 것이기에 그 형의 집행은 자연 질서가 쇠퇴하는 추분부터 춘분사이에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처럼 사형의 집행은 그 시기를 기다려서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를 깨는 것이 참부대시다. 죄질이 중하니
"어땠을까?" 가수 싸이의 노래다. 박정현이 참여한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랑했던 사람과의 헤어짐과 후회를 담고 있다.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마지막에 널 안아줬더라면, 어땠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원치 않는 이별 후에 하게 되는 생각들이다. "만약 내가 그때 냉정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만약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사실-상반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라고 한다. 실제로 일어난 사실과는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인간의 본질적 욕망 중 하나를 함축한 말이지만 오늘날과 달리 예전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엄격한 신분 사회를 구축하고 있던 과거 시대에 하층민의 이름이 정사에 기록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양반 중심의 조선 시대는 더욱 심하였다. 조선은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신분체제를 사회 유지의 근간으로 삼고 있었고 신분의 벽을 넘는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최하층민이 왕명에 의하여 역사에 기록된 특별한 인물이 있다. 바로 정조 시대 제주도 여인 김만덕이다
나는 종양치료를 전문 과목으로 하는 외과 의사다. 20여 년 정도 암 진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제는 환자들도 의사들 못지않게 자기 병에 대해 전문적인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특히 최신의 진료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임상시험 중이어서 실제 효과가 확실하지 않은 표적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환자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또 암의 진행을 멈출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있었다며 언제쯤이면 이런 약물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보호자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더 이상 이런 의학
조선 중기의 수필 「효빈잡기(效嚬雜記)」에 보면 늙은 쥐의 지혜에 대한 일화가 있다. 어느 고을에 음식을 훔쳐 먹는데 도(道)가 튼 쥐 한 마리가 있었으니 쥐들 사이에서도 명망이 대단했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옛날처럼 음식을 훔쳐 먹을 수 없게 됐다. 늙은 쥐는 젊은 쥐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줬고 젊은 쥐들은 이렇게 배운 기술로 음식을 훔쳐 늙은 쥐를 봉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쥐들은 더 이상 늙은 쥐에게 배울 것이 없다며 음식을 내주지 않았다. 늙은 쥐는 그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쥐들이 찾아와서
1993년 대전은 뜨거운 도시였다. 굵직한 기업들이 최첨단 기술을 선보이고 세계 여러 나라가 자신의 문화를 소개하는 국제 엑스포(EXPO)가 개최된 것이다. 조용했던 도시 대전은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매일 북적거렸다. 대전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좋아했던 전시장은 '럭키금성(현 LG) 테크노피아관(官)'이었다. 정문 근처에 자리 잡고 마치 '이것이 미래다'라고 뽐내듯 번쩍거렸던 은색 지붕을 이고 있던 테크노피아관의 위용은 아주 인상 깊었다. 더불어 전시 내용이 알찼을 뿐만 아니라 놀이공원 탈것처럼 화면 움직임에 맞춰 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