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생활을 하면서 유독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말 '쌍디귿 자'가 조금씩 엇갈려 섞여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다. '똑똑'한 아이들은 많아졌는데 자신의 미래라든지 교우관계에서는 무'뚝뚝'한 아이들, '똘똘'하게 문제는 파악하지만 잘못을 지적하면 '떨떠'름해하는 아이들. 학교 시험에는 완전무장을 하면서도 친구 관계나 인성적인 측면, 그리고 자신의 진로에 있어서는 아직 허점을 많이 드러내는 데에서 이 '딱'한 교육 현실을 어떻게 '떡'하니 해결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미술시간에 학생들과 생활용품 디자인 수업을 하면서 '마음
"태완아, 오늘따라 멋있게 보이네.", "예,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도 멋져 보여요.", "정민아, 감기는 다 나았니.", "예, 다 나았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오늘도 나는 학생들과의 대화로 일과를 시작한다. 교장이 되어 한동안은 학교교육발전의 주체인 선생님들이 교육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며, 선생님들과의 관계만을 중요시하고 지냈다. 그러던 중에 학생들과도 가까워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생겼다.하나는 이따금 옛 제자들의 반창회 또는 동창회 모임에 초대를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반가움에 참석을 하지
"교장선생님, 한 숟가락 드실래요?" 야간공부방을 시작하기 전, 저녁을 먹으며 우리 반 한 학생이 교장선생님께 한 말이다.근흥중학교는 희망자에 한해 야간공부방을 실시하고 있다. 야간공부방 시작 전에 학생들은 저마다 싸온 도시락을 펼쳐 밥을 먹는다. 아이들이 밥을 잘 먹는지 1학년 담임인 나와 교장선생님께서는 가끔 남아서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그날도 교장선생님께서 교장실 옆에 있는 1학년 교실에 들러 우리 반 아이들을 흐뭇하게 보고 계실 때였다. 우리 반 한 학생이 다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다가 교장선생님께서
미생(未生)은 바둑에서 나온 용어다.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있지 않은 상태, 완생(完生)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돌을 뜻한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2년차 교사인 나를 돌아본다. 어느 날, 조금 늦게 학교에 도착했다. 우리 반 교실 문은 꽉 닫혀 있었고 불도 켜 있지 않았다. 교실로 들어선 순간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보드게임에 몰입 중이었던 것이다. 불을 켜자, 한 아이는 "와, 밝다. 잘 보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동안 일찍 와서 불 켜놓고 창문 열어놓았던 것을 후회했다. 할 일
겨울의 그림자가 눈앞에 성큼 다가온 바로 그날!운동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설렘보다 흥분을 드러낸 5학년 아이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줄넘기며 피구며 몸풀기를 하고 있었다. 이날은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교과인 체육 시간을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체육의 날인 것이다."하하하.""야! 빨리 와!""나한테 던져!"여기저기 아이들의 높아진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우리 아이들이 저런 아이들이었구나!', '이렇게 활기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니…!' 이런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본격적인 체육활동이 시작되었다. 체육활동에서의 으뜸
지난 주말에 여고 시절 가깝게 지냈던 몇 명의 친구들을 대둔산 주변에서 만났다. 좀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는데, 한 친구가 뜬금없이 내게 "야! 너, 너무 바쁘게 지내는 거 아니니? 나이도 들어가는데 그러다 건강 해칠라. 건강이 최고야!"라며 질문인지 힐책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하여, "해야 할 만큼은 해야지 뭐!"라고 얼버무리는데,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다른 친구가 "아무리 봐도 네겐 교직이 천직이야!"라고 말했다. 교직이 천직인지 확언할 수는 없으나, 그것은 내게 '행복'임에는 틀
'교사도 감정노동자다.'지난 봄, 책상 위에 놓인 신문의 제목이 내 시선을 끌었다. 감정노동이란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며 대표적인 감정노동 종사자로는 114 전화안내원, 고객 상담원, 항공사 승무원 등이 있다. 나는 기사를 읽고, 관련 자료를 검색해보며 교사가 감정노동자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교사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수업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수업을 해야 하며, 학부모와의 소통에서 항상 친절히 응대하도록 요구받고, 동료 교사와 친분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여러분, 말의 소중
출장으로 며칠 학교를 비워 마음이 편치 않아 이런저런 생각으로 아침 일찍 학교로 향했다. 학교는 잘 있을까. 안개 속인데 학교버스는 잘 오고 있을까. 교정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 쿵자작 쿵작" 아침부터 웬 트로트. 이곳이 성스러운 초등교육의 전당임을 모두가 알 텐데 누굴까 이런 음악을 아침부터. 귀를 기울여 소리 나는 곳으로 가 보니 사랑반 교실이었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소리치며 인사하는 학생이 있었다.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며 어깨를 들썩이면서 카세
"이것 좀 볼래요? 하하하!""뭔데 그렇게 웃어요? 같이 봐요!"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신혼집에 가져갈 옷가지며, 책들을 싸고 있는 터에 발견된 웃음보따리들. 혼자 보기 아까워 예비신랑을 부른다.쉽게 무언가를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지금의 나이까지 쌓아 놓고 떨쳐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예비신랑 앞에서 웃으며 구겨 숨길 수밖에 없는 학창시절의 사진들, 나름 한껏 꾸몄지만 촌스러운 초임교사 때의 모습들, 언젠가 다시 읽고 싶어 남겨둔 제자와 학부모들의 편지, 글쓰기를 좋아하던 고등학교 시절 원고지에 끄적거리던 수필
K가 내게 온 것은 작년 11월이다.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온 것이다. 1, 2학년도 아닌 6학년이 전학을 온다 해서 의아해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설득하고 심지어 직전 학교 교장선생님께도 말씀을 드렸다. "6년을 거의 마친 아이가 낯선 학교로 오는 것도 큰 스트레스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녹록지 않다. 또 2-3개월 다닌 학교를 모교라고 인정할 수 있겠냐. 즉, 정체성의 문제가 있다"면서 전학 오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조금 문제가 있어서 오는 아이기에 내심 마뜩잖아 한 것이 나의 진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
"선생님, 쉬는 시간에 화장실 다녀와도 되나요?""알림장 안 가져왔는데 어떻게 해요?"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빛에선 간절함마저 느껴진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걸까? 질문마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답을 해 주는 것이 좋은 선생님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생각으로부터 자유를 갈망하며, 칠판에 크게 '학생 자치'라는 단어를 적었다.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 반은 학생 자치로 운영하겠어요. 자치란,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에요. 이를 위해선 후회 없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죠, 선생님
유난히 햇살이 아름다운 어느 가을날! 도고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도고 어울림 한마당' 체육대회가 열렸다. 체육대회의 축제가 무르익을 무렵, 도고초등학교의 자랑인 '사물놀이 동아리'의 흥겨운 장단이 아름다운 햇살을 타고 울려 퍼지자 어울림 한마당에 참가한 도고교육가족 모두는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운 놀이마당이 펼쳐졌다. 도고교육가족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을의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장관을 이뤘다.전교생이 50명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학교이지만 1학년 때부터 익힌 사물놀이 솜씨는 지난해까지 충청남도교육청 주관 학생음악경연
"선생님, 우리 이거 해요.""제발요. 플리즈(Please)!"아침에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에게 평소 안 쓰는 영어까지 써가며 우리 반 녀석들 요란을 떨었다. 3월 4일, 28명의 13살 아이들과의 첫 만남. 지난해 학급과 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로 불렸던 몇 명의 아이들이 우리 반에 있었기에 담임으로 처음 만난 아이들을 예의 주시하며 바라보았다. 근엄한 선생님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내 손 안에 올려놓겠다는 굳은 결의로 다가간 나의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봄 햇살에 눈 녹듯 사르르 녹아버려 아이들과 동화돼 버렸다.하지만 처음부터 아이
참 맑아라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놓은유리창 한 장/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섬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가을 바다 한 장/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놓은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정일근의 '바다가 보이는 교실'에 나오는 열이가 바로, 내가 매일 함께 생활하는 화성의 42명 아이들입니다. 청정지역이라고 하는 청양, 그것도 산골인 화성면 화성중학교 42명 아이들은 서로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압니다. 전 학년을 무학년제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의 5개 동아리로 나눠 함께 책도 읽고, 멘토로 고민도
1학년 입학 첫날,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새내기들은 수업을 마칠 즈음 공부는 언제 하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분명 나는 열심히 가르쳤는데 아이들은 공부를 한 게 아니라면, 학교에 처음 들어온 이들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일까? 1학년 학생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국어, 수학 등 교과를 배우는 것이 공부라고 대답한다.예전보다 훨씬 일찍 교육에 노출되고, 많은 학습을 했지만 자유로운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쉬운 일도 일일이 질문하고 확인하는 자신감 없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는 그렇게 어렵고 성적만이 최고인 곳
'나쁜 놈, 연락을 안 하네~.' 마음의 소리가 대한민국의 허공을 가르고 통(通)하였나 보다. 몇 달 전, 첫 제자로부터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선생님, 저 정명이예요~." 27년 전, 처음 발령받아 부임한 내 생애 첫 남자고등학교인 홍성고등학교에서 3년을 가르쳤고, 3학년 때 전체 회장이었던 그 아이였다.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네 덕분에 모자란 내가 좋은 사람 만나서 이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고.1990년 5월 14일 저녁,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LP판과 빠알간 탐스런 장미 한 다발을 가지고 '미리 스승의 날'을 축하하
"우와~ 달 표면이 진짜 울퉁불퉁해요!""저게 토성 맞아요? 엄마, 진짜 띠가 있어!"해무리가 진 도심 속 운동장이 시끌벅적하다. 당시 5학년 담임이었던 나는 '별자리'에 대해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운동장 하늘을 바라보며 별과 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늘 꿈꾸어 왔다. 학기 초부터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별과 달을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천문대, 천문, 천문 동아리, 과학고?'라는 생각의 꼬리를 물게 되었고 결국 과학고 선생님께 무작정 전화를 드렸다. 물론 이러한 뻔뻔함은 내가 학생들을
'교육 시스템이 아무리 엉망이고, 학부모가 엉망이어도 아이를 진심으로 돌봐주는 단 한 명의 어른만 있으면 그 아이는 변한다.'이 글귀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3년 전 처음 하준(가명)이를 만났을 때 뭔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이상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가 처음 가져온 자기 소개서에도 지금 아이를 위탁으로 돌보고 있고 시설로 보낼 계획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래서인지 하준이는 실제 생활에도 문제가 많았다.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절대 갚지 않았고, 잘못한 일이 있어서 혼이 날 경우에는 반항을 할지언정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나흘간 중국의 선양과 장춘 그리고 하얼빈에 다녀왔다. 2012년 북경과 서안, 연길과 백두산, 2014년 청도에 이어 네 번째 중국행이다. 젊었을 때에는 멀리 다니고, 인근의 나라는 노년이 되어 다닐 수 있게 남겨두라지만 기회는 항상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무조건 배낭을 꾸렸다. 중국에 잠깐잠깐 다녀온지라 감히 '중국이 이렇다'라고 자신 있게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중국의 저력과 잠재력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북경과 서안, 청도에 있는 초등학교 4곳을 둘러보았는데, 2m가 넘는 담장은 기본이고 교문은 굳게 닫혀
나는 댕기머리 휘날리며 산골짜기를 달리던 작은 소녀였다. 그런 아슴푸레한 유년의 기억이 성인이 된 오늘을 살아가는 활력소이다.1980년대 초 도회지의 큰 학교는 한 반이 50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는 전교생이 겨우 51명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학교는 나에게 소중한 꿈을 주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세상의 중심이었다.1997년, 초등교육에 입문해 18년이 되고 있다. 2014년, 오늘 나는 작은 섬마을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우리 반 아이는 겨우 두 명. 작고 똘망똘망한 윤아와 책벌레 환성이. 그동안 규모가 큰 학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