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쟤 책 아직 안 꺼냈어요." "쉬는 시간에 OO가 저 놀렸어요."중1 수업을 맡게 된 올해, 영어 시간이 되면 저를 보자마자 하고 학생들은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낸다. 다 들어주기엔 끝도 없을 것이기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수업 끝나고 선생님에게 찾아오렴. ",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앞에 나와서 이야기하세요."그러면 학생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조용해진다. 이제 중학생이 된 지 얼마 안 되는 중1 학생들은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참 많다.매 수업마다 이런저
2021년 교육기본법 개정으로 학교에서 생태전환교육(기후환경교육)이 의무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현장 교사들은 새로운 어떠한 교육이 도입되거나 의무화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거부감에 따른 반발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생태전환교육은 이전 환경교육, 생태교육, 기후변화교육 등 다양한 형태로 수십 년전부터 학교에서 이루어져 왔다. 의무화되기 이전에 이미 대부분의 학교에서 일정 수준의 환경교육을 해왔고, 각 교과 교육과정에도 그 내용이 연계되어 있었다. 또한 그 중요성에 대해서 학교 현장도 공감하고 있는
교사는 아이들의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어 주고, 무너진 감정도 회복시켜준다. 그런데 교사도 사람이라, 종종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누가 교사의 마음을 다독여줄까. 문득, 이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학기 말에, 아이들이 각자 담임 교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진아와 대현이가 쉬는 시간에 선생님 욕을 자주 합니다."수업 태도도 바르고 깍듯한 진아와 대현이가 내 욕을 한다고? 모범적인 두 아이가, 담임인 내 욕을 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진아와 대현이가 평소처럼 활짝 웃으며 내게 인사를
어렵다는 임용고시를 통과하고 교단에 선 후에도 교사는 시대 흐름에 따라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대학원 석사만 마치면 공부는 끝날거라 생각한 나에게, 생각지 못한 대학원 박사의 길이 열려 학문을 하고 있다. 그 학업의 끝은 보이지 않고 까마득하지만 먼 길을 걷고 또 걷는 중이다. 수업을 마치고 새벽 1시 집에 도착해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들기 전 작년 유행했던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을 중얼거리며 나도 그런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겠다 추스른다.'나는 왜 교사가 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해 보았다.학생들
선생님, 벌써 40여년이란 시간이 흘렀군요. 몸 건강히 잘 계신지요?선생님, 기억나세요?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께서는 점심식사를 마친 저에게 잠시 학교 밖으로 나가자고 하셨죠. 학교 밖에는 농협연쇄점(오늘 날의 하나로마트)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으로 불쑥 들어가자고 하셨어요.그리고는 신발 진열대에 있는 여러 신발들 중에 예쁜 샌들을 하나 가리키면서 그 샌들을 사주고 싶다고 하셨죠. 그 당시에는 부잣집 여학생이나 신는 샌들을 사주신다고 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싫다고 하니 선생님께서는 꼭 저에게 신발을 하나 사 주고
홍성군 구항면에 위치한 '대정'초등학교는 '한우물'이란 의미다. 큰 대(大), 우물 정(井). 대정 부임 전 도로 옆에 위치한 학교를 스치듯 지나가면서 그냥 우리네 농촌 마을에 위치한 일반적인 초등학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름이네 하면서 별 관심이 없었다.그런데 이 학교에 부임하면서 '대정'초등학교가 '대단히 정'들 것 같은 학교라 스스로 주문을 걸고서는 무조건 무한 애정을 바칠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로 바꿔가기 시작했다.나는 대정초등학교에서 열정을 가지고 학생 교육에 정성을
어느 덧 창밖의 나무들이 싱그러운 5월이 되었다. 5월의 학교는 가정의 달, 어린이날을 축하하는 각종 행사, 체육대회, 수업 공개 등으로 여전히 바쁘고 빠르게 돌아간다. 내 마음은 새싹처럼 파릇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선생님들이 봄 꽃보다 더 사랑스럽게 눈에 들어왔다.문득 7년 전, 만난 Y선생님이 떠올랐다.모 초등학교에서 수석교사로 있던 나에게 수업컨설팅을 요청하신 Y선생님.첫 만남에서 수석교사인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이번 주는 어떻게 보냈나요, 요즘 가장 고민되고 힘든 것 들은 무엇인지 얘 기해
"선생님께는 벽이 있어요."지원이의 말에 내 눈이 커다래진다. 머리는 빠르게 지난날의 내 행동과 말을 점검한다. '차갑게 대했던가? 상처를 준 적이 있었나?' 하며 되짚고 있을 때, 지원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이어서 말한다."완벽!"그 순간, 긴장했던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이내 웃음이 빵 터진다. 낚였다 싶었지만, 온종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이는 김인육 시인의 이란 시의 첫 구절이다. 교실의 책상에 앉아 열 살짜리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자주 이 구절이 떠오른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에 염색약을 바르고 있을 때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어른이 들어왔다. 그 남자 어른도 머리카락을 자르고 염색약을 발랐다. 나와 그는 머리카락에 염색약을 발라 위로 시커멓게 솟아오른 머리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 머리가 다 마무리되었을 때 들려온 그 남자의 말이 "저~ 선생님 아니세요?"였다. "네? 그렇기는 한데요." "맞네요. 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셨어요." "네? 하하하 그랬어요? 아이고, 그때 내가 잘 못 한 것이 있으면 미안합니다." "아, 아니예요." 이런 대화를 하고는 미용실을 나왔다
30여 년 전 남자중학교로 첫 발령. 학생들과 첫 만남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것도 잠시, 45명의 남학생들로 에워싸여 말투나 행동이 점점 거칠어져만 갔다. 아이들과 씨름하기에 심신이 지쳐갈 때쯤 다가온 여름방학으로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여름방학 후 아이들을 둘러보는데 아이들 틈에 말라서 온 아이가 눈에 띄었다. 순둥이 친구의 별명은 부시맨. 조금씩 말라가더니 결핵 판정을 받았다. 오후 가정방문을 갔더니 어머니는 안 계셨고, 아버지는 일하러 지방에 가시면 며칠에 한 번씩 들러서 집에는 고등학생 누나와 살고 있단다. 방안에
40대 중반 이른 나이에 교감이 되어 올해로 7년 차에 접어들었다. 사립학교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다른 학교의 교육활동과 학교 풍토를 살펴보고 우리 학교에 적용해보고 싶어 다양한 교육활동 분야에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현장의 교육활동을 관찰하고 선생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학교가 고민하는 사항에 대한 발전적 방안을 찾는 작업을 지속해서 수행해 왔다. 학교마다 고유한 학교 풍토가 있었고, 지역색도 분명하게 관찰되었다. 물론 대학 입시라는 목표를 위해 입시 제도의 변화에 대응하는 교육활동을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에 둥지를 틀었다. 아이들이 입학하고 졸업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듯 교사들도 한 학교에서 5년을 보내고 나면 '고생했다, 잘했다'는 마음과 함께 새로운 학교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찾아온다.16년의 교직 생활 중 4번째 맡는 6학년 담임인데 나머지 3번은 첫 학교에서 신규교사일 때였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때는 철이 없고 아는 것도 없는 교사여서 초등학교를 6년째 다니고 있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고 의지했었다. 한편 그때는 나름 신세대여서 아이들과 호흡하
교장으로 부임한지 3년째 일어나자 마자 늘 나만이 하는 리추얼(ritual)이 있다. 학생들에게 들려줄 음악을 선곡하는 일이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둔 이후에야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보통 7시 10분 안팎으로 학교에 출근한다.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피커를 가지고 나와 현관 앞에 설치하는 일이다. 그리고 새벽에 선곡해 담아둔 플레이리스트의 음악을 틀어 준다. 보통 7시10분부터 7시30분까지 들려주는 음악은 보통 계절이나 날씨와 어울리면서도 발라드나 클래식 등이다. 아침 일찍 등교한 학생들, 학교 교정에서 재잘
코로나 팬데믹은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학생들은 친구의 표정을 온전히 보지 못했으며, 학교에서는 대면수업을 하지 못하고 주로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특히, 예술·체육 교과를 온라인 수업으로만 진행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나는 20여 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음악 교과 수업을 담당했으며 관악부를 지도했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는 각자의 악기 소리가 다른 악기 소리에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서로의 소리를 들어가며 어울릴 때 하나의 완성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음악에서의 소통과 어울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음
"라떼는 말이야. 한 반에 학생이 60명이었어", "수업도 오전반, 오후반 나눠서 했었잖아", "겨울에 난로 하나 놓고 수업한 거 기억나?", "푹푹 찌는 여름에 선풍기 하나 틀어 놓고 살았잖아", "온종일 선생님 혼자 수업 다 하고…." "요즘 선생님들 정말 편하지 뭐."친구들과 커피 마시는 중 옆에서 중년 어른들의 대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다. 내 친구들도 모두 현직 선생님들이라 조금 전에 '하하, 호호' 즐겁던 수다가 갑자기 멈췄다. 다들 나처럼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엿듣는 중이다.한참 지나 옆자리의 중년 어른들
인생에서 첫 시작은 누구에게나 큰 의미로 기억된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첫 학교에서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수업을 잘하고 싶었다. 교사가 되고 많은 물음으로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그 중 '어떤 선생님이 될 것인가?',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일까?'라는 근본적이지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의 답을 찾는 여정 중이다.'어떤 선생님이 될 것인가?' 교사가 되고 줄곧 혼자 고민했다. 첫 발령을 받았을 때는 아이들의 마음에 계속 기억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나와 함께한 1년이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추억으로 남길 바라는 욕심이
'학교는 즐거운 소풍이다'. 소통과 공감이 있는 수업, 학생들과 함께하는 수업! 수석교사가 된 이후, 내가 가장 추구하는 교실 풍경이다. 단 한 명의 학생도 배움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배울 권리를 보장받으며, 더불어 질 높은 배움을 추구하는 수업, 수업을 통해 학교문화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느 교사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간절하다.교사는 잘 가르쳐야 한다. 가르침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따라서 잘 가르치는 것은 학생이 잘 참여하는 수업을 의미하고, 이것이 훨씬 더 행복한 수업이다. 수업을 할 때도,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도
2021년 대전대화초에 부임하게 됐다. 발령이 발표되고 인사하기 전에 대화동을 찾아가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색다른 동네와 학교가 있었다. 제가 성장한 3년과 다른 학교와 조금 다른 저희 대전대화초를 소개하려고 한다.저학년에 대한 새로운 경험. 저는 항상 고학년만 맡아 오다 보니 아이들을 대하는 언어는 항상 성인과 유사한 언어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3학년, 2학년을 담임했다. 교수·학습 언어도 한 번 되돌아 생각하게 됐다. '저학년 아이들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교사로서 성장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아무개야, 일어났니? 열은 어때? 기침은? 어서 준비하고 학교에서 보자."이것은 출근 준비 시간의 루틴 같은 전화 통화다. 2년째 담임을 맡은 아이에게 작년부터 모닝콜을 하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자가진단까지 겸하고 있다. 아침잠이 너무 많은 아이, 집에서 살갑게 깨워줄 어른이 없는 아이, 19살이나 된 학생에게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주변의 핀잔 섞인 충고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 3월까지만 해도 무뚝뚝하게 "몰라요"라고만 말했던 아이가 지금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잘 웃기도 한다. 서서히 아이의 마음이 녹는 게
4월 중순, 코로나19로 인해 등교가 아닌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교직경력이 짧은 나로서는, 등교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미술 수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 많은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집에서 몸이 근질거리는 아이들이 미술 시간을 통해 서로 소통을 하고, 표현활동으로 소소한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수업만큼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ZOOM을 통해서 질의응답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서 화면으로 보여주는 방법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수업해보고자 했다. 첫 수업을 어떤 것으로 시작해야 할지 고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