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교사로서 발령을 받은 지 어언 1년이 되었다.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에 발령을 받고 나서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렇게 더디게 갈 것만 같았던 시간이었다.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동안의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렀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초임교사로서 교단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던 순간 순간들이 당시에는 힘겹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안타까움과 더 잘할 수 있을텐데라는 후회를 느끼며 쏜살같은 시간으로 느껴진다.아이들로 인해 울고 웃었던 지난 시간들이 마치 한 기록영화의 필름처럼 한 컷 한 컷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학기 초
주말에 강원도로 여행 갈 예정이었는데 예약숙소에 불이 났다고 했다. 게다가 ‘중부지방 중심으로 천둥, 번개, 돌풍과 대설 예보…’라는 전화문자가 날아왔다. 일행과 상의해 여행을 취소했다.주말에 대설과 강추위가 예상된다는 예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람의 일이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날아간 여행의 아쉬움을 TV시청으로 달래는데, ‘○○○은 빗나간 예보로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의 문자 메시지도 일부 책임이 있다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하다는 뉴스를 보면서 씁쓸했다.뉴스를 보며 몇 년 전 학급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
언니! 너무 이른 언니의 죽음을 하늘도 안타까워하나 봐. 언니 장사를 마치자마자 눈이 이틀째 계속 내리고 있다우. 바깥을 보면서 언니 누워 계시는 유택에도 눈이 쌓였을 텐데 울 언니 춥지 않을까 생각했수. 내 음력 생일이 언니의 기일이 될 줄이야. 그날 아침, 언니의 부음을 듣고도 믿을 수 없었수. 이젠 나이를 먹어 자신은 물론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항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닥치고 보니 받아들이기 쉽지 않구려. 나는 지금도 언니를 잃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는다우. 올해엔 더욱더 멋
태권브이 음악과 더불어 아련한 추억의 목소리와 그림을 스크린으로 접하면서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또래 부모들은 제각각 아이들을 동행하고 관람석을 꽉 채우고 있었다. “태권브이는 아빠가 너희들 만할 때 제일 좋아했던 로봇였지.” 여기 저기 아이들보다 더 신나서 떠드는 아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보다 아빠들이 할 말이 더 많아 보였고 영화관으로 먼저 손을 이끈 것도 아빠였을 것이다. 부모님의 이런 행동에 아이들은 신기함과 함께 한층 더 즐거움에 빠져 드는 것 같았다.신학기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는 나는 매번 아이들과 어
2006년 한해를 보내면서 인생의 선택의 기록에 섰던 사람들 중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며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고3학생들일 것이다.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그들은 아마도 기나긴 터널을 지나온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선 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들은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며 정시모집에 응시한 학생들은 모집 전형을 준비하느라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고 있을 것이다.그들에게 모두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이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죽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셨던
지난해, 대전사이버가정학습지원센터 사이버 학급에 가입한 학생이 8026명에 이른다. 교육연구사 1명과 파견교사 3명으로 조직된 사이버지원팀은 이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매일 야근하며 열심히 뛰었다.사이버가정학습의 특성상 낮과 야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다르다. 낮에는 주로 행사를 기획하여 추진하거나 교사나 학부모로부터 사이버가정학습 이용방법에 대한 상담을 받는다. 야간엔 하루 일과를 마친 교사들과 함께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시스템을 보완한다. 인터넷으로 공부하다 궁금한 점을 물어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도 한다. 학원에 가
출근길에 학교 가는 길목의 해미읍성을 막 돌아섰다. 이끼 낀 읍성 바위틈으로 아침 햇살의 간지럼에 잠이 덜 깬 담쟁이넝쿨의 자지러진 녹색 웃음이 스며들고 있었다.“선생님, 엄마가 이거 선생님께 드리래요.”아침에 교실로 들어서는 내게 수줍게 다가온 수지가 부끄러운 얼굴로 조그마한 봉투 하나를 건넨다. 순간 머릿속으로 하나의 생각이 쏜살같이 스친다.‘이게 뭘까? 혹시 촌지?’‘받아야 돼, 말아야 돼?’그 짧은 순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내 머릿속과는 달리 수지는 맑고 수줍은 얼굴로 선생인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다.“어머니께
“하나, 둘, 셋, 넷…… 야, 우리가 1등이다.” “우리는 91개네, 아깝다.”오늘은 아이들과 칭찬파티 하는 날. 아침부터 아이들은 게시판에 몰려들어 웅성웅성 스티커 수를 세고 있다. 1등이 확실한 창훈이와 아슬아슬 2등이 된 현기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린다. “제 자리로 들어가요. 제일 조용한 모둠에게 칭찬스티커를 줄거예요. 그러면 역전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나의 엄포(?)에 아이들은 쏜살같이 자리로 들어가 조용히 담임에게 집중한다. 해마다 새 학급을 맡을 때마다 아이들과 칭찬파티를 하기 시작한 것이 올해로 벌써 10년째.
언젠가 이른 아침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문을 열었더니 현관 앞에 박스 하나가 놓여 있다. 박스를 여니 텃밭에서 키웠을 호박 5개, 매운 고추와 일반 고추를 구별해서 넣은 지퍼백 2개, 싱싱함이 묻어나는 오이 4개 그리고 “선생님 참깨는 볶은 거니까 냉장고에 넣어두고 조금씩 꺼내 드시면 고소한 향이 오래 갈 거예요. ○○엄마”잊지 않고 작년 담임까지 챙겨주는 엄마의 정성이 너무 감사하고 또 많이 미안해진다. 분명 게으른 내가 아직 세수도 안했을 시간이라 문만 두드려놓고 간 것이리라. 하나를 주었는데 열을 받았
출근하자마자 온풍기로 서늘한 교실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자 아이들은 춥다며 손가락 하나 드나들 틈을 만들고는 닫아 버린다. 그나마 학교 뒷산으로부터 내려오는 틈새바람에 교실 안은 온풍기의 답답한 열기로부터 쾌적해진다. 컴퓨터를 켜고 업무메시지를 확인하느라 마우스를 움직이다 보면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 고개를 들어 교실을 둘러보면 제법 의젓하게 앉아 아침 한자를 쓰고 나서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 사이로 여지없이 한 아이가 빈 책상 너머로 삐딱하게 뒤로 돌아 앉아 참견하는 모습이 보인다.“00야, 바르게 앉아
그 녀석은 잘 살고 있을까? 그 녀석을 처음 만난 날 두툼한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우리 선생님 할 거예요? 그럼 같이 밥 먹어도 돼요?” 만나자 마자 밥 타령이다. 그랬다. 함께 생활한 내내 밥 타령이었다. 그 녀석은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전기가 끊긴 집에서 살고 있었다.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대문이 열린 집이면 무작정 들어가 밥통을 끼고 앉아 반찬도 없이 밥을 그렇게 먹어댔단다. 항상 허기졌던 아이. 눈치 보며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을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 그 녀석은 정신지체 3급 장애 판정을 받고
며칠 전부터 시작된 목감기와 어깨의 통증으로 인하여 힘든 하루였다. 참새마냥 조잘대는 녀석들은 나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제 집에서 일어났던 일이며 자기들의 관심사를 나에게 마구 쏟아낸다. 눈치 빠른 민경이가 등 뒤로 와서 “선생님 오늘은 어깨가 너무 뭉쳐 있어요. 열도 나요” 하더니 안마를 시작한다. 그러자 혜영이, 은애, 재연이, 하나 둘 등 뒤로 옆으로 두 팔을 당기면서 서로 나의 몸을 차지하려 토닥거린다. “선생님 시원하죠?”, “제가 안마하는 법 배워왔어요”, “얘들아 내가 1번 하면 이렇게, 2번 하면 알지?” 웃음
천의초등학교는 전교생 58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지만 7명의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가 재학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 가정의 자녀에 비해 학습이해도가 떨어지고 대인관계에서도 소극적이며 자신감 부족, 자아 정체감의 결여 등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그 원인을 찾아보니 외국인 어머니들이 한국어 사용이 미숙함으로써 유아기 때 적절한 언어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자녀와의 의사소통과 관계 면에서 적지 않은 갈등과 애로사항을 겪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따라서 다문화 가정의 2세 교육의 성공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외국인 어머니의
교사의 본분은 수업이다. 심지어 ‘생명’이라고까지 한다. 그러기에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기 가장 꺼려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수업은 교사로서 자신의 모든 면을 그대로 내보이는 것으로, 사생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교직 경력 4년차인 나에게도 그 기회가 왔다. 한편 겁이 나기도 하여 나서지 않다가,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서지만 말고 한번 부딪쳐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사를 표했다. 공개 수업일을 앞둔 2-3개월 전부터 수업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걱정이 앞섰다. 밥을 먹을 때도, 출퇴근 길에도, 잠자리에
슬기로운생활 시간. ‘내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까?’를 배우는 시간이다. 모두들 자기가 되고 싶은 것을 씩씩하게 잘도 말한다. “선생님 저는 음식을 먹을 때가 제일 좋아요. 그래서 요리사가 될 거예요. 요리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어요.” “저는 꽃집을 하고 싶어요. 꽃이 참 좋아서요.”“성우야 네가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니?” 평소 수업 시간에도 말문을 거의 열지 않는 우리 반 친구이다. ‘오늘만은 꼭 말을 하게 시키리라’ 다짐한 나는 끝까지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고 커서 되고 싶은 것을 계속 물어
아침 일찍 학교 현관문을 들어서면 나를 기다리던 작은 꼬맹이들이 우르르 달려오며 인사를 한다. 그렇게 뛰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이야기 하건만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책상에 앉아 밀린 업무라도 처리하려면,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쫑알거리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지저귀는 참새 떼 같은 모습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매일같이 이렇게 시작되는 나의 하루가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에는 작은 사랑의 샘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작은 샘물이 내 마음 속에
“선생님, 효섭이가 제대로 집으로 왔어요! 너무 너무 기뻐요!”놀라움과 기쁨으로 격양된 효섭이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나도 감격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2주간의 하교지도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나는 초등특수교사로 교직 3년차이다. 오늘도 우리 반은 5명의 개성 강한 귀염둥이들의 우당탕탕 시끌벅적한 소리로 가득하다. 비록 속도는 늦지만 조금씩 향상되는 아이들을 보면 장애는 단지 조금 불편할 뿐임을 느끼게 된다. 마음은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거울을 비춰보며 얼굴의 티를 닦듯이, 나는 매일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 마
가을 햇살이 창가에 스며든다. 내가 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어언 20여년 가까이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교직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그랬는지 초등학교 2학년 때 “저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겠습니다”라고 나의 꿈을 발표하던 시간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 꿈은 여러 번 바뀐다고 하지만 단 한 번도 ‘교사의 꿈’을 버린 적이 없었으며 교사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은 생각하지도 않았다.첫 발령지는 작은 면 소재지였다. 부임하던 날,
“집 앞에서 놀다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너무도 예쁜 색깔이다. 돼지우리에서 일하시는 아빠를 불러 보라고 했다. 아빠는 노을이라고 했다. 우리 언니도 저런 아름다운 해를 보고 있을까?”너무도 진솔하고 순수한 마음이 담겨있는 일기였다. 서산 B지구로 인해 만들어진 넓은 농토, 그 가운데에 살고 있는 현진이는 서해 바다와 노을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바쁘시기에 들꽃 한 송이와도 이야기하고,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가 친구가 되기도 했다. 현진이는 자연을 알고 자연과 벗하며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아이였다.“선생님 이게 뭐예
“이번에 우리 학교가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체험환경교육 프로그램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계획서를 제출하신 선생님께서 전근을 가셨으니 내일 오전까지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실 선생님께서는 말씀해 주세요.” 올 3월, 교감 선생님께서 직원회의 시간에 걱정을 하시면서 어렵게 말씀을 꺼냈다. 다음날 아침 교감 선생님 얼굴에 큰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 내가 도전해서 어린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볼까?’ 이런 내 생각을 말씀드리자 너무 기뻐하시는 교감 선생님을 보며 열심히 한번 해 보리라 다짐하였다. 3월 중순부터 어린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