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선생님은 머리 똑똑이보다 마음 똑똑이가 더 좋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하고 싶은 것보다 우선하고, 다른 사람 마음보다 내 마음과 자존심이 더 중요한 아이들의 잘난 척과 시기심, 잔인한 장난으로 하루하루가 짜증나고 속상한 나날이 연속되는 곳. 바로 교실이다. 혼자서는 잘 하지만 함께 하는 것은 어렵다는 아이들, 발표는 똑소리나게 하지만, 교사나 친구가 말할 때는 책을 읽거나 학원 숙제를 하는 아이들, 선생님이 잘못을 지적하면 반항하는 아이들. 상심하지 않고 하루 보내기도 버거운 교실에서 교사는 아이들을 보듬고 품고
지금도 "껍데기라고 얕보지 말라. 함부로 함부로 얕보지 말라. 정월이라 대보름날 오곡밥에 아홉 가지 묵은 나물 중에 시래기가 으뜸 아니던가. 대관령 맑은 바람 햇살이 키워온 고운 속살 다 내어주고 남겨진 푸른 자락에 헛간 걸려서 된장과 된장과 눈맞은 속 깊은 속 깊은 사랑이라…"는 합창곡 '시래기'의 가사가 머릿속에 맴돕니다. 2015년 3월. 김○○ 음악 선생님과 처음 만났습니다. 경기도의 광남고에서 근무하시던 선생님께서는 보령에 있는 부모님과 좀 더 가까이 지내기 위해 도간 전출을 하여 전교생 19명인 금마중학교에 오시게 되었습
지난 학예회 때의 일이다. 학급 공연을 무엇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 연주, 합창, 연극 등… 아이들이 잘 할 수 있고, 잘 지도할 수 있을 것 같은 종목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가 "치어댄스 어때? 음악도 경쾌하고 공간 활용도 넓어 멋지던데"라고 제안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래! 치어댄스에 도전해보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한참 부끄러워하는 우리반 사춘기 아이들이 과연 잘 따라줄지, 하기 싫다고 하지는 않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방학은 솔직히 아이들보다 내가 더 기다렸다. 갈수록 개성이 강해지는 아이들과의 씨름에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고, 엎친데 겹친 격으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도 최고조에 달했었기 때문이었다.'너희들 얼굴을 한 달간 안보고 살 수 있다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니들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것이다.'방학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쥐방울만한 녀석들은 이런 사악한 내 마음을 짐작이나 했을까? 나이가 먹어도 살도 못 찌고 늘어가는 것은 신경질이요 잘하는 것은 훈계질이 되어 버렸다. 방학이라고 해야 가족 휴가 며칠을 빼곤 늘 출근을 하거나
남들보다 조금 늦게 다른 길을 돌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것이 11년 전이다. 첫 출근 전날 잠 못 이루며 오래 기다린 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었다. 첫날 아이들 앞에 선 난 눈앞이 캄캄했다. 개학식에서 간단하게 소개를 마치고 아무 준비도 없이 교실에 들여보내졌다. 30명의 6학년 아이들은 '어디 보자'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3월 우리 교실의 규칙은 자리는 오는 대로, 급식실에서 마음대로 앉기, 과학실은 쉬는 시간 중에 알아서 가기 등 한마디로 '마음대로'였다. 선생님이 그저 간절히 되고 싶었지 어떻게 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태양의 열기가 가득한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교무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 저 김00인데요. 잘 지내셨어요. 저 아시겠어요.""아,극동방송극 합창부 했었던 00이구나."" 예, 맞아요. 바로 알아봐 주시니 좋네요."5분 여간 통화를 하면서 W초등학교 근무시절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가까운 주말에 다른 제자 한 명과 같이 만나기로 하였다. 두 명의 제자와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며칠 후 20대 중반으로 성장한 제자들을 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옛 추억과 살아가는 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쉬는 시간은 엉뚱발랄한 질문과 사건의 연속이다. 10분 그 짧은 시간에도 궁금증을 풀러온 아이, 친구와 싸우는 아이, 속이 울렁거리거나 머리가 아프다는 아이부터 집안의 사사로운 사건들을 전하러 오는 아이 등 교사주변은 온통 아이들의 말과 이야기로 겹겹 에워 쌓인다. "선생님, 저는 꽃일까요? 별일까요?""무엇이 되고 싶은데?"아이는 머뭇거린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손가락으로 턱을 받친 모습이 영락없는 노란 민들레다."별도 되고 싶고 꽃도 되고 싶고….""선생님이 보기에 서연이는 이미 장미보다 예쁜
"선생님, 우리랑 같이 피구해요!"전교생 48명, 조그만 6학급 학교인 장동초등학교의 왁자지껄한 중간놀이 시간이다. 요즘에는 드문, 아이들이 학년 구분 없이 형제처럼 함께 뛰어노는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아이들의 옆에서 관객이 되어 구경도 하고, 심판도 보고 있으니, 한 아이가 무엇인가를 쥐어 준다.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학교 뒤편에서 따온 오디다. 심판 열심히 보시라며 준 오디를 먹으며 아이들이 놀이 장면을 보고 있으니, 20분의 시간이 2분처럼 지나가버렸다. 중간 놀이 시간이 끝났다고 아이들에게 외치니 아이들은 울상을
손에 잡을 수 없기에 더욱 아쉬운 시간! 나에게 만약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처음 '선생님'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온 세상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던 2009년. 그 당시의 나는 도시의 바쁨 속에서도 개인의 느림을 즐기는 교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골의 작은 6학급 학교로 발령이 났고, 처리해야 할 많은 업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 난감하게 한 것은 기대감에 가득 찬 아이들이었다. 교사라는 이름의 무게에 버거워 하는 나를 아이들은 마냥 반겨주고 좋아해 주었다. 실망하게
"선생님, 우리 언제 도착해요? 멀미나요."아이들은 기대에 부풀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연신 재잘거렸다. 나는 아이들의 다채로운 불평을 해결하고 털썩 자리에 앉았다. 이제 출발인데 벌써 지친 것 같았다. 경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다. 아이들은 설레는 여행의 시작을, 나는 안전한 여행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교사 입장에서 수학여행은 반갑지 않다. 일정, 숙소, 식사, 건강, 민원, 안전사고 등 업무 종합선물세트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 안전이 가장 염려스러웠다.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없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때론 세상의 뭇매가 씁쓸하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한 대한민국의 평범한 교사다. 심하게 사춘기를 앓는 아이들과의 입씨름에 종종 지치기도 하고, 가끔은 자식보다 더 어린 아이들로부터 상처 받으면서도 교직을 천직이라 여기며 사는 나는 서러운 대한민국의 평범한 교사다.며칠 전 한 학생을 큰 소리로 혼냈다. 화를 내서는 해결될 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한 것이다. 퇴근길에 생각해 보니 선생으로서 신중하고 사려 깊지 못했던 내 잘못이 큰 것 같아 내일은 아이를 불러 조
얼마 전, 이전 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스승의 날 선생님께 감사편지를 쓴 모양이다. 그 중 유진이라는 아이의 편지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책상에 두고 여러 번 보곤 한다.2010년부터 통기타를 배우면서 한참 기타 치며 노래 부르기에 푹 빠졌다. 그러다보니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점심시간이나 교과시간에 기타를 치며 노래를 자주 부르곤 한다. 참 즐겁고 아이들도 무척 좋아한다. 그때부터 늘 교탁 옆엔 기타가 놓여있고 심심하면 아이들과 노래를 부른다. 그저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작년에는 기타뿐만 아니라 일러스트라는
어렸을 적 초등학교의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기나긴 겨울과 이른 봄을 뒤로하고 5월쯤에 이르면 학교에서 단체로 학생들을 가까운 시냇가로 이동시켜 겨울동안 묵은 때를 씻으라고 한다. 기온이 낮은 탓에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특수부대 잠수훈련과도 같은 것이었다. 소풍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즐거워야 할 소풍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하루 종일 걷는 고된 행군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려웠던 경험들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고, 성장과정 중 어려운 일들을 헤쳐 나가는 밑바탕이 되었다.몇 해 전의 일로 기억된다. 도서실에서 시끄러운 소리
"와~! 선생님이다! 선생님! 오늘은 뭐해요?"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에게 달려든다. 분명 그 호기심은 내가 아니라 내가 맡고 있는 체육이라는 교과 때문일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찾는 일은 매일 겪어도 참 행복한 일이다. 올해로 2년째 체육 교과를 맡아 지도하고 있다. 교대를 다닐 때에도 체육 전공이 아니었고 10년의 교직 생활 중에도 체육 교과를 지도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혹시나 내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체육 시간을 망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
어떤 학생과 처음 만날 때, 우리는 맨 처음 그 학생을 무엇을 인식하는가. 말씨, 옷차림, 예절·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가 학생에게 갖는 첫인상은 대체로 외모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키가 큰 아이, 혹은 긴 생머리의 아이, 하는 식으로.그러나 만남이 지속되면 학생에 대한 인식은 외모의 단선을 벗어난다. 두 번째 만났을 땐, 예쁘지만 성격이 까다로운 아이. 세 번째 만났을 땐, 예쁘고 까다롭지만 다른 친구를 잘 도와주는 아이 등등. 물론 학생에 대한 인식이 여기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옛 조상들은 '열 길 물속은
교사라면 한 번쯤 꿈꾸는 전교생 30명 남짓의 아담한 학교에 부임한 첫해, 나는 6학년을 맡게 되었다. 순진한 얼굴로 나를 맞아준 6명의 아이들은 다른 학년에 비해 수줍음이 많았다. 특히 지은(가명)이란 여학생은 며칠이 지나도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언어 기능에는 문제가 없으나 가족과 일부 친한 친구 외에는 말을 하지 않는 선택적 함묵증이었다. "지은아, 선생님은 일부러 말하라고 안 할 거야. 말하고 싶을 때 말을 하렴."지은이는 그전과 다르게 배시시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지은이에게 말을 강요하지 않고 친구들의
지난 월요일에는 5학년 학생들과 '우리나라 국토여행 계획 세우기'라는 수업을 진행했다. 여행 장소를 정한 학생들은 도로, 기찻길, 뱃길을 따라 도미노를 놓기 시작했다. 마지막 도미노가 넘어지면서 눕혀진 깃발을 일으켜 세우면 음악이 나오는 장치를 주었더니 갖가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속출했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국토의 모습을 찾아보는 활동에서 즐거움도 얻었다. 이 학생들에게는 정치적인 장벽도 여행비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여러 학급을 운영하다 보니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중에서 한 학급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한 모
"스마트폰 가지고 게임이나 하지 수업이 되겠어?""스마트폰과 인터넷 중독 때문에 문제가 많은데 무슨 스마트교육이래!"내가 스마트교육을 시작하고 난 이후부터 교사들과 학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이다. 2013년 스마트교육을 처음 접했을 때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2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교육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나의 스마트교육은 학급 SNS 운영으로 시작되었다. 일상생활의 사소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학교에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웃긴 농담을 적기
3년 전 이곳 은진초등학교로 부임해 왔다.아이들과 처음 만난 날 아침! 나를 바라보는 강렬한 열두 눈빛의 다정함에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다. 작은 한 공간 아래, 밀착된 느낌으로 살을 부비며 시작된 이 작은 학교와의 인연도 올해로 삼 년째로 접어든다. 기억에 오래 남아돌 것 같은 한 아이와의 추억이 있다.잘 닦여진 주택과 아파트로 다녔던 그 전의 가정방문과는 달리 대부분 좁은 샛길, 개천 하나 지나야 겨우 나왔다.마지막 차례가 된 혜성이 집 앞! 집에는 할머니와 아빠 단 둘만 계신 걸로 아는데, 할머니는 아까 밭일을 가셨고, 아빠는
"사랑합니다!"덩치만큼 크고 굵은 목소리, 웃음을 머금은 발랄하고 높은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 매일 아침을 연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찍 오면 창문 열어 환기를 시키라고 했지 않느냐',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책 좀 읽고 있지', '교실 바닥 쓰레기는 왜 아무도 안 줍는 거니'라는 나의 폭풍 잔소리에 곰 같은 녀석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는 녀석들. 나와 친구처럼 어깨를 견주며 머리를 맞대고 살아가는 6학년 아이들이다.나에게는 오직 열정과 패기로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맡았던 6학년 아이들은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