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뒤편에는 학년별 텃밭이 있다. 1학년 텃밭에는 상추,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땅콩, 비트와 함께 지난해 심은 양파를 수확하고 난 자리에 개똥쑥이 자라고 있다. 4월에 아이들과 땀을 뻘뻘 흘려가며 호미로 텃밭을 일구었다. 유박을 뿌리고,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씨뿌리기를 마쳤을 때는 곧 맛있는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5월 중순이 되었는데도 푸르러야 할 텃밭은 가뭄으로 인해 황폐해졌다. 대신 잡초만 무성했다. 아이들은 잡초를 뽑는데 새싹과 구별하지 못해 함께 뽑곤 했다. 6
'Tantara' 흔히들 알고 있는 '딴따라'의 어원이다. 'Tantara'의 뜻은 '나팔소리, 트럼펫의 취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낮잡아 '딴따라'라고 한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딴따라라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보령시 천북면에 위치한 전교생 53명의 농어촌 소규모 학교이다. 아이들 몸과 마음이 하나 되기 위한 프로젝트로 전교생 합창을 추진했다. 음악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시간 등을 활용해 조용하던 시골에 아이들의 고운 선율이 퍼지기
지난 4월의 안타까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지금도 국민의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희생자의 가족이 만든 추모 영상에는 눈물이 앞을 가려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애절한 그들의 마지막 인사가 담겨 있다. 요즘 아이들은 정규수업을 마친 후에도 방과 후 학습이나 돌봄 교실 참여로 학교에서 친구나 교사와 함께하는 시간이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걱정이 많다.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길 바란다. 아침마다 자녀를 등교시키며 "잘 다녀와~!!"라며 안전한 등·하교를 갈망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선생님은 어릴 때도 선생님 되고 싶었어요?"멍하니 딴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잡아끄는 또랑또랑한 목소리. 궁금한 게 생기면 참지 않고 던져대는 우리 1학년이다."그럼! 선생님은 전부터 선생님 하고 싶었어.""언제부터요?"언제부터였더라. 왜 선생님이 좋았던 걸까.재잘재잘거리는 오리 같은 우리 1학년과는 다르게 나는 학교를 좀 무서워했던 아이였던 것 같다. 부끄럽고 쑥스럽고 온갖 두려움은 다 끌어안고 있었나 보다. 그랬던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을 보낸 후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위태하게 휘청거리던 내 꿈은 오히려 초등학교 선생
20여 년의 교직생활 중에서 가장 추억이 많이 남아 있는 시절은 대전의 변두리인 농촌 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 어느 해에는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학생 수는 고작 3명이었다. 해마다 30여 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3명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어떻게 학급을 운영해야 할지 다소 걱정이 되었다.한 명이라도 결석을 하게 되거나 가정체험학습을 가게 되는 날이면 단 2명하고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싶어기존에 가지고 있던 수업 방법과 학급운영 방식을 버리고 소수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새로운 교수
"선생님은 여러분과 학교를 행복한 곳, 배움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환상적인 곳으로 만들거야. 우리 즐겁게 공부하자!" 학기초 내가 천안서초 5학년 1반 아이들을 만나 약속한 말이다. 교육 경력 15년, 나는 매년 새로 만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약속을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호기심 반, 의심 반의 눈빛을 보내지만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진심을 느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교수·학습 방법과 공부의 재미를 느끼게 하도록 공책 정리방법을 구안하여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선생님! 제가 갖고
얼마 전 모든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안타까움과 비탄에 젖지 않았던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아픈 마음의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얻어진 교훈과 소득도 있다. 그것은 바로 '항상 초심의 마음으로 살아가자'라는 다짐의 기회와 함께 필자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반성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첫 번째 다짐은, '처음 교직을 시작했던 열정과 책임감의 자세를 갖자'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던 당일 본교에서는 5학년 수련회를 떠났다. 수련회장 도착과 함께 들려온 사고 소식은
2012년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교사'라는 직책에서 '수석교사'라는 새로운 변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수석교사'로 발령받고 학교에 오니 그동안 친근하게 대했던 동료들조차도 단지 '수석교사'라는 직책이 수업은 적게 하고 돈은 더 많이 받는 사람으로 오해해서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기도 했고, 또 수석교사 본연의 업무 이외에 또 다른 과중한 업무가 배정되어 있어 마찰이 있기도 했다. '교사로서 23년의 세월을 교육 발전을 위해 헌신했는데 나한테 왜 이럴까?' 하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무척이나 섭섭한 마음이 들었으나 점차 생각이 바뀌게 됐다
교사 생활을 시골인 충북 봉양에서 시작하였다. 첫 학교의 생활은 누구나 그렇듯이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다. 담임을 맡아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떠올린 것이 학급 생일 파티였다. 매월 하루를 정해 같은 달에 생일을 맞는 아이들을 모아 축하 이벤트를 해주었다. 주말에 서울이나 대전을 다녀오는 길에 산 비교적 커다란 생일 축하 케이크 하나가 이벤트 준비의 전부였다. 하지만 시골에서 단맛을 볼 기회가 많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개중에는 반 행사에서 케이크를 처음 맛보는 아이도 있어서, 모두 이날을 무
태안에 근무한 후로 바다와 어우러진 해변의 다양한 그림은 마치 앞마당의 경치를 바라보는 듯 자연스럽다. 바다에 친숙해진 내 두 눈이 오늘은 진녹색 물결로 흘러내리는 공주 금강에 한참 머물렀다. 오랜만에 출장 와서 한참을 바라보자니 떠오르는 생각들이 강물만큼이나 많고도 깊었다. 서울의 한강이 강남과 강북을 나누듯이 공주의 금강도 그렇다. 고향은 아니지만 공주 금강은 옛 친구 같은 존재다.최근에 눈에 띈 누군가의 잠언시집 제목이 '강물은 바람 따라 길을 바꾸지 않는다'이다. 순간 정몽주의 단심가 이미지가 떠오르면서도 금강이 생각났다.
올해 3월 대전법동초등학교로 전근하여 1학년 병아리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1학년은 아직 유아적인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 지도에 어려움이 있지만, 1학년만의 순진무구한 매력이 있어 언제나 즐겁다.1학년은 입학을 하고 3주 동안 '우리들은 1학년'을 공부한 후 국어, 수학, 통합교과를 공부하게 된다. 아이들은 통합교과 '봄'의 2단원 새싹을 공부하면서 작은 화분에 꽃씨를 심었다. 아이들은 매일 물을 주고 들여다봐도 변화가 없자 실망하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면서 하나둘 작은 싹이 올라오자 한껏 들뜨고 신기해했다. 그때
"아이고, 제가 지금 예순셋이어유. 챙피혀도 기양 따라왔어유. 마지막이니께유."고3 딸의 늙은 아버지는 내내 부끄럽고 쑥쓰러워 손으로 자꾸 뒷머리만 쓰다듬으셨다. 마흔넷에 얻은 딸과 함께하는 산행이니 얼마나 행복할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시골 지역 여고 교장으로 여학생들의 정서에 알맞은 학교 경영을 고민하다 꾸린 '아빠와 함께하는 산행'에는 의외로 많은 학부모들이 함께했고,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하는 산행을 무척 반가워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는 아버지와 딸, 엄마와 딸은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학교에서 열 시까지 붙잡혀
오늘은 아이들에게 꿈을 갖게 된 이유를 덧붙여 자신의 꿈을 적어 보도록 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자연의 생체를 연구해 일상에서 이용하게 하는 생체모방 공학자가 되고 싶어요" 등 다양하게 답변했다. 언제부턴가 꿈과 진로가 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화두가 되었다.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된 지도 4년째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하고 꿈을 위한 준비를 행동으로 옮기도록 격려한다. 이러한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교육과정과 대입제도의 변화 때문이다. 주당 4시간의 창의
학생: "나의 습관이 나의 운명을 좌우한다!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십니까!"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자, 출석을 부르겠습니다. 김민석 CEO, 이승열 디자이너, 한민호 검사님…."나는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의 구호와 인사가 끝나고 출석을 확인할 때, 학생의 이름과 함께 그 학생의 꿈을 덧붙여서 부른다. 학생들의 이름에 꿈을 붙여 부르기 시작한 지가 올해로 13년째 되고 있는데, 학생들은 매우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수업 중 눈빛이 만나는 학생에게 묻는다. "김민석 CEO, 우리나라의 에너지문제에 대해 어
지난해부터 모든 학교에서 '진로교육'이 의무화되면서, 교육계의 비상한 관심거리다.필자는 몇 년 전 선배 교사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요리사를 하겠다고 하여 고민하는 모습을 봤다. 그때 필자는 요즈음 요리사가 뜨는 직업의 하나로 전망이 밝다는 것과 7성급 호텔의 셰프 에드워드 권 등을 예로 들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위로했었다. 그리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할 때에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그런데, 최근 어렵게 얻은 늦둥이 아들이 자라면서 몇 년 전 선배한테 했던 말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
부끄러운 일이지만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같은 학교에서 4-5년 근무를 고수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2년 만에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새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1학년 병아리들이었다.아이들 수가 적어서 좋은 점도 많지만 우리 반처럼 남녀 학생 수가 모두 홀수이고 친구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나 분명한 아이들은 가끔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우리 반 여자아이 지우는 종종 소리를 지르거나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려 하지 않는데 둘씩이든 셋씩이든 네
"안뇽하쎄용", "Good morning" 이렇게 두 개의 언어가 하모니를 이루며 시작하는 곳은 바로 대전법동초등학교 교담실이다. 190㎝가 넘는 큰 키의 영어 원어민 교사 '자끄'가 어색하지만 '안녕하세요?'를 밝게 발음하며 꾸벅 인사를 한다. 그를 배려하여 우리는 또 'Good morning'이라고 인사를 한다.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교과전담실은 서로 인사를 바꿔서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펼쳐진다.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지만, 우리는 '배려'라는 마음으로 여기고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인사부터도
다시 3월. 호들갑스럽게 날아드는 업무문서와 요구사항을 잔뜩 담은 각계의 메시지는 내가 다시 새 학기의 출발점을 지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이번에 나는 부여의 세도초등학교에서 논산내동초등학교로 옮겨왔다. 전교생 45명인 학교에서 전교생이 1200명 가까이 되는 학교로 옮기니 갑자기 모든 환경이 바뀌어 버렸다. 일단 한 반의 학생 수가 10명이었다가 27명으로 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이다. 학생 수가 늘었다는 것은 교사가 수업시간 중에 학생을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초등학교 교사에게 주어진 1시간은 4
교육전문직에서 1년을 보낸 후 다시 학교 현장으로 돌아왔다. 교직생활 36년의 대부분을 고등학교에서 보냈다. 금년 3월에 대전법동중학교에 부임해 보니 교직원 100명 중 아는 사람은 2명뿐이다. 마치 처음 시집온 처녀와 같이 모든 것이 낯설었다."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첫째는 학생들에게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선생님들에게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 학교가 행복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법동중학교에 부임하며 인사말로 이야기했던 것처럼 교육가족이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
"목면 어린이 여러분! 우리들의 소망을 담은 꿈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낼 거예요! 올해 또는 장래에 이룰 꿈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합시다. 다 함께 하나, 둘, 셋."꿈을 실은 풍선이 하늘 높이 올라가는 모습은 과히 장관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와! 하는 함성 소리와 함께 학생들, 학부모님들, 선생님들까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우리 학교는 입학식 날 꿈 풍선 날리기를 합니다. 알록달록 예쁜 풍선에 소망을 적어 하늘로 날려 보내며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행사입니다. 꿈 풍선을 보니 나 역시 어릴 적 꿈이 생각났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