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어반 패브릭'이라 불리는 고유의 패턴을 사람의 지문처럼 지니고 있다. 패턴은 사회가 어떤 경제, 문화, 정치적 체계 아래에서 도시를 만들었는지 읽을 수 있는 일종의 메타데이터 역할을 한다. 절대왕정이나 독재자의 도시는 축을 중요시하고, 권력을 대중에게 과시하려는 기념비적 공간을 축의 결절점에 둔다. 도시 공간에는 위계 관계가 분명하게 새겨져서 도시의 부분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중요성을 다르게 부여받는다. 권력을 체화하는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권위에 종속되는 삶을 영위하게 된다. 반면 민주적인 정신으로 형성된 도시는 미로와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개인전이 강원도 원주에서 열리고 있다. 그가 설계한 캘리포니아 저택을 가수 비욘세가 2700억 원에 구매했다는 뉴스가 그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이미 28년 전 건축계의 노벨상에 해당하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거장에겐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그는 독학으로 건축을 배우고 노출 콘크리트, 철과 유리만을 고집하는 건축가이며 설득력 있는 화술은 모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오사카의 변두리에서 쌍둥이로 태어나 목공, 금형, 유리공장에서 놀며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공고에 진학한 그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이세돌 프로기사를 이겼을 때 전 세계인들은 바둑만큼은 컴퓨터가 따라오기 불가능할 것이라는 정설이 깨진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세돌 기사는 "알파고와의 경기에 전혀 질 생각을 하지 못했고,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결국 한계가 있으리라 생각했으며 당연히 이길 거라는 확신을 갖고 대국에 임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일반인에게 바둑이란 매개체로 깊게 각인이 됐던 사건이었고 이후 약 7년이 흘렀다.며칠 전 기말고사를 리포트 형식의 발표로 대신한다는 필자의 말에 대학에서의 챗GPT 대응법을 궁금해하던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이집트의 유물을 봤다면 한 번쯤 왕가의 계곡에 가서 왕들과 왕비들의 무덤에 가봐야 한다. 왕가의 계곡은 이집트 남부 룩소르 지역 델라 엘 바리에 있는데, 계곡 전체가 무덤이다. 이집트 박물관에서 보았던 왕들의 유물이 출토된 곳이며, 소년 왕 투탕카멘의 미이라와 훼손되지 않은 무덤에도 들어가 볼 수 있다. 안내센터에선 투명아크릴로 만들어 지하의 무덤구조를 볼 수 있는 모형이 있어 계곡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왕가의 계곡에서 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은 화려한 색채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 무덤으로
융합의 시대에 건축학은 참으로 할 일이 많은 학문 분야라고 자부한다. 과거엔 단지 건축물을 기능적이고 효율적으로 빠르게 설계하고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업무이자 과제였다면, 현재 또는 근미래엔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도시와 지역문제에 대한 학제적인 해법을 찾는 데 건축전문가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도시재생'이든 '지역재생'이든 그 용어가 중요하기보다는 목표와 비전에 공감하고 중장기적으로 일관성 있는 방향성을 갖고 실행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정권 교체와 지자체장의 소속 정당에 따라 바뀌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이 필자
우리나라 건축법 제46조는 건축선에 관한 법이다. 건축선은 대지가 도로와 접해 있을 때 건축물을 건축할 수 있는 경계선을 말한다. 도로와 건축물 사이 일정한 여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건축선 규제가 없다면 도로와 인접하게 지은 건축물 출입구는 도로를 침범해 통행에 큰 지장을 준다. 대문과 담장은 건축선을 넘을 수 없다는 법이다. 이와 함께 건축선은 도로와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가로 경관의 정리정돈과 보행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정리정돈이 잘된 가로와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부분이 직각이 아니라 꼭지가 잘려 나간 모퉁이가 돼
바야흐로 생성 AI의 시대가 도래했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세탁기나 청소기의 기능을 수식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으로 사용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ChatGPT가 발표되면서 인공지능이 우리 삶과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처음으로 체감하게 됐다. 이제 인공지능은 시대의 최첨단을 걷는 단어로 위상을 되찾았고, 다소 당황스러울 만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이제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이를 겪으면서 맞이한 변화는 역사의 주요한 전환점을 차지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파도였다.
새벽 어스름에 길을 나선다. 아부심벨 신전으로 가는 일정에 따라 아침은 버스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숙소로부터 아부심벨 신전까지는 4시간 정도 이동해야 한다. 얼마를 달렸을까 주변이 밝아 올 즈음 주변에 끝도 없는 사막이 펼쳐진다. 사막의 끝자락에서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일출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빛의 아름다움과 사막의 광활함에 압도된다. 얼마를 달렸을까 목적지 아부심벨에 도착했다. 두 신전이 위치한 곳은 아스완하이댐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댐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바다라고 해도 믿을 법하다. 댐의 건설로
아름다운 건축이 자칫 건축물의 형태적 심미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마치 건축을 조형예술작품처럼 이해하게 된다면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건축은 인간의 행복과 편리함을 위해 삶의 질을 더욱 향상시키는 것에 목표를 두면서 시간, 공간, 자본이 결합된 융합적 산물이기 때문이다.첫째, 시간은 건축물 디자인과 건축 프로세스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건축물도 생애주기를 가지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게 되며, 건축가는 건축물이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도록 고민한다. 또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에서도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본도
오랜만에 중견 건설회사 안전관리책임자로 근무하는 대학 동기와 막걸리를 한잔했다. 노후 문제와 자식 결혼, 부모님 모시는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직장 이야기로 이어졌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법)이 시행된 뒤 건설현장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건설공사 이윤이 공사 기간에 따라 좌우되다 보니 건설사는 공기단축에 혈안이다. 그러다 보니 안전관리책임자 지시 사항은 항상 뒷전이었고 공기단축의 최대의 걸림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지금은 임원 회의부터 안전관리책임자의 의견이 가장 우선시되고 작업 현장에서도 모두가 안전을 입에 달고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명장면 중 하나는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장면이다. 줄리엣이 창문을 열고 로미오의 사랑 고백을 듣던 장소는 발코니인데, 건물 외벽에 툭 튀어나와 있다고 해서 '돌출형 발코니'라 불린다. 이는 유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형태다.건축법상 발코니의 정의는 '건축물 외벽에 접해 부가적으로 설치되는 공간, 건축물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완충공간으로 전망이나 휴식 등을 목적으로 설치한다'고 돼 있다. 또 필요시 거실, 침실, 창고 등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발
우리가 피라미드에 열광하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축조술과 규모 그리고 고대에 이 거대한 건축물을 만든 이집트인들에 대한 경외가 아닐까. 기자의 피라미드 3개 중 가장 규모가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약간의 인내를 갖고 기다릴 수 있다면 4500년 전 왕의 무덤 내부를 돌아볼 수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는 약 230만 개의 돌 한 개의 무게는 평균 2500kg, 높이는 137m에 이른다. 14세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무덤 안으로 통하는 통로는 9세기경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이
필자는 20년 넘게 대전 지역에서 건축학교육 및 건축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로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서울로 올라가 경험을 쌓았던 제자들도 하나둘씩 내려와 그들의 고향에서 건축사로 활동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로컬은 더 이상 서울이나 수도권과 비교의 대상이 되는 우열 관계로서 지방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서울 안에서도 권역별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로컬이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생활권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그렇다면 골목길 건축가란 누구인
1919년 3월 13일, 서울에서 내려온 유관순으로부터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을 접한 김구응은 유관순에게 태극기 제작과 인근 고을 유지와의 연락 업무를 맡겼다. 이후 유관순의 매봉산 봉화를 시작으로 4월 1일 오후 1시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군중의 수가 3000명 혹은 5000명에 달했다고도 한다. 맨 앞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던 김구응은 일본군의 총칼에 가장 먼저 죽임을 당했으며, 자식의 시체를 안고 항거하던 그의 어머니마저도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유관순의 부모를 포함해 19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한 사건이 아
공공건축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축 행위는 땅과 건물을 소유하게 되는 사적 주체의 자본으로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범위에 구획된 대지 안에 법적 요건만 충족시킨다면 사유 재산으로 자유롭게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건축은 재산 소유관계에 의해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한 이해관계 위에 놓인다. 이는 곧 국가에서 건축행위를 수행하는 건축가에게 자격증을 부여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배경이 된다.모든 것은 건축이 지니는 스케일 문제와 연관된다. 도시에 지어지는 건축물은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땅 위에 서
얼마 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한 곳인 이집트에 다녀왔다. 세계의 4대 인류 문명 발상지는 기원전 3500년경에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다. 나일강 하구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이 두 지역 사이에 펼쳐져 있는 동부 지중해 연안의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 지역이다. 두 문명 발생 이후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과 중국의 황하 유역이 뒤를 이어 등장했다.이집트 여행은 필자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건축을 전공하면 서양 건축사를 공부하게 되는데,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이집트 피라미드에
필자가 최근에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것 중 하나는 '골목길'이다. 오죽하면 '골목길 건축학'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 앞으로 이 분야의 개척자가 될 것이라고 SNS를 통해 공언도 한 상태다.유년 시절 필자는 서울의 소위 달동네라고 하는 금호동과 왕십리가 만나는 경계 부분에서 살았다. 현재는 재개발로 인해 어디가 어딘지 가서 봐도 구분을 못 할 정도로 변했지만, 다행히도 모교인 금북초등학교는 남아 있어 그것을 기점으로 대충이나마 예전에 살았던 집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는 있다. 그다음엔 행당동이라는 동네로, 무학여고 뒤쪽의 완만한 경사로
콜럼버스 항해 400주년을 기념한 시카고 엑스포는 지난 1893년 파리 엑스포의 에펠탑을 능가하는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해 자전거 바퀴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았다. 거대한 철제 바퀴를 회전시켜 기구에 탑승한 관람객들이 도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대관람차를 선보인 것이다.시카고 엑스포는 지난 1871년 대화재로 파괴된 도심을 재건한 자부심을 기념하고자 추진돼 잉글우드 잭슨 공원을 개최장소로 선정했고, 박람회장을 고딕 양식의 회벽과 대리석 건물로 조성했다. 흰색이 주류를 이뤄 '화이트 시티'라 불린 시카고 엑스포는 고종황제가 13
2023년은 2월이 윤달이라 올 봄은 추위가 있을 것이라 한다. 그래도 계절은 바뀌는가 보다. 햇살의 색이 바뀌었다. 겨울보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필자가 있는 지역은 바다와 가까워 계절이 바뀔 때면 바람 때문에 오히려 봄이 더 춥다고 느껴진다. 마음은 봄인데 날씨는 그렇지 아니하니 마음 따로 현실 따로다. 머지않아 마당과 들판에는 파릇한 새싹이 돋고 꽃도 피울 것이다.하지만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봄의 불청객 황사와 미세먼지가 있기 때문이다. 요 며칠 바람이 잠잠하더니 하늘은 온통 회색빛이었고 세차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차
우리의 삶은 건축 공간을 배경으로 존재한다. 태어나면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노애락 모두 다양한 건축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 및 기억과 연관돼 있다. 그래서인지 행복을 최대 덕목으로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명예, 건강뿐 아니라 아름답고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건축 공간에 대한 소유나 체험에 대한 욕구도 높다. 이런 맥락에서 좋은 집과 물리적으로 쾌적한 근무환경을 비롯해 다양한 '제3의 공간'들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필자는 그런 인간의 공간적 속성을 '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