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바야흐로 생성 AI의 시대가 도래했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세탁기나 청소기의 기능을 수식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으로 사용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ChatGPT가 발표되면서 인공지능이 우리 삶과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처음으로 체감하게 됐다. 이제 인공지능은 시대의 최첨단을 걷는 단어로 위상을 되찾았고, 다소 당황스러울 만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이제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이를 겪으면서 맞이한 변화는 역사의 주요한 전환점을 차지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파도였다. 비대면을 강요받게 되면서 사람들은 디지털대전환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동참하게 됐다.

우리 삶의 디지털화는 스마트기기를 우리 신체의 연장(延長)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등을 늘 소지하고 다니며 이를 통해 세상의 정보와 접속한다. 이에 따라 스마트기기를 통한 정보의 처리는 촉각과 청각, 시각, 후각을 동시에 사용하는 전통적 소통 방식을 극단적으로 평면화 시켰다. 정보는 그 생성과 유통의 속도가 대면 소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방대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점차 미디어에 과잉 노출되고, 일상에서 생각의 시간을 갖기 어려울 만큼 즉각적으로 외부 자극에 반응하게 된다. 장차 생성 AI로 촉발될 또 다른 정보 폭격이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을 대체하는 수준에 다다르면 어떤 삶의 변화가 뒤따를지 두려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 때문인지 자연, 생태, 농업, 노동과 같이 느린 속도를 지닌 단어들에 점차 흥미를 느끼게 되고 있다.

세토 내해는 일본 열도의 규슈, 시코쿠, 혼슈로 둘러싸인 바다를 지칭한다. 이곳 섬들은 1960년대 이후 급격한 공업화로 쇠락하고 주민들이 떠나면서 쇠퇴했다. 일본 미디어 출판 교육기업 베네세 그룹의 회장인 후쿠다케 소이치로는 예술의 힘을 빌려 파괴된 자연에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신념으로 오랜 기간 건축과 예술 거장들을 초청해 아트 인프라를 구축했다. 2010년부터는 이 기반 위에 국제예술제인 세토우치 트리엔날레가 3년 주기로 개최되고 있다. 덕분에 세토 내해에 자리한 나오시마, 이누지마, 테시마와 같은 섬들은 전 세계 예술애호가들이 손에 꼽는 관광지로 변모했다.

세토내해의 섬 중 테시마는 인구 800명에 불과한 자그마한 섬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풍요의 섬이라 불리는 곳이다. 예로부터 쌀농사로 유명한 지역으로 동측 해안에선 계단식 논이 이루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엔 물방울 모양의 납작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테시마 아트 뮤지엄이 이목을 끈다. SANAA의 니시자와 류에가 2010년에 설계한 건물로 40mX60m 크기의 콘크리트 쉘로 이뤄져 있다. 콘크리트의 두께는 일반적인 슬라브보다 다소 두꺼운 25㎝로 무엇보다 파격적인 것은 이 거대한 공간을 기둥 없이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테시마 아트 뮤지엄에선 사진촬영이 금지되며, 제한된 인원만 입장하며 공간을 점유하는 밀도를 항상 의도된 수준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미술관 내부에 들어가면 또 다른 파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데, 아트 뮤지엄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전시물들이 없고 거대하게 비워진 콘크리트 공간과 바닥 곳곳에서 스며 나오는 물방울의 움직임이 전부다. 이윽고 이 미술관의 전시작품은 이 공간 자체와 지붕에 뚫린 2개의 커다란 구멍을 따라 흐르는 바람의 소리인 것을 깨닫게 된다.

자기 몸의 일부처럼 사용하던 스마트폰을 빼앗기게 되면서, 방문자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요즈음 전시회를 가게 되면 누구나 현장을 담아두기 위해 사진 찍는 행위에 열중하게 되고 때로는 전시 감상과 인증샷 사이에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마저 들게 되곤 한다. 하지만 테시마 아트 뮤지엄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풍경 앞에서 우리는 늘상 해오듯이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고, 그동안 우리의 감각과 경험이 얼마나 크게 스마트기기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느끼게 된다. 비워진 공간, 바닥에 흐르는 물방울, 하늘과 숲을 향해 커다랗게 뚫린 천장 앞에서 그동안 잊고 지내던 '멍때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과다하게 우리를 자극하는 디지털 정보의 바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연과 우리 몸 본연의 감각으로 돌아가 정지된 시간을 맛보게 되는 것이 니시자와 류에라는 기민한 건축가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지금 현대인에게는 이렇게 '멍때리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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