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주거는 동굴에서 시작해 자연과 동식물로부터 얻은 다양한 영감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흰 개미집과 벌집이 대표적이다. 호주와 아프리카 흰개미집의 높이는 5m 정도에 달하는데, 이곳에서 여왕개미 한 마리와 200만 마리의 개미들이 공동생활을 한다. 개미들은 나뭇조각과 흙, 모래, 개미침샘의 침을 접착제로 사용해 아파트 4층 높이까지 개미집을 쌓아 올리기도 한다. 흰개미집은 별도의 에너지 사용 없이 자연의 온도차를 활용해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친환경건축이기도 하다. 2006년 개장한 런던의 큐가든과 멜버른 시의
건축은 사회 구성원이 약속한 제도의 시스템을 공간으로 구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학교는 교육이라는 제도, 병원은 의료 서비스라는 시스템을 물리적인 모습으로 형태를 만들어 낸 것이 건축의 시작인 셈이다. 이렇게 사회 속 건축이 목적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것을 우리는 건축의 유형학이라 부른다.현대 도시에는 수많은 유형의 건축들이 용도와 기능에 따라 다른 원리를 지니며 복잡한 현대 사회의 구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건축이 하나의 유형으로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폭발한 서구 사회의 변화
집은 사람에 의해 계획되고 지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원 역시 계획되고 만들어져 집의 일부가 된다. 어찌 보면 집은 정원의 완성으로 비로소 마무리된다고 볼 수 있다.집에 어울리는 정원의 모습을 갖추는 데까지 보통 10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 멋진 정원 혹은 잘 만들어진 정원이라 하는 곳은 계절에 맞춰 돌아가며 꽃이 피고 새순이 돋기를 반복해 끊임없이 꽃을 볼 수 있고 꾸준히 변화하고 달라지는 곳을 그리 말한다.그런 정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필자 역시 작은 집을 지으면서 정원을 구성했다. 계획 전 완만한 경사지였던
우리는 현재 '공간의 전쟁'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제와 문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사회 속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들 상생과 진화 속도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혹자들은 디지털 기술의 가속화가 오프라인 공간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단하면서 학교 등의 교육공간과 업무공간인 회사 등이 모두 없어질 것이라는 극단적 세상의 모습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현 상황을 보면 그것은 빗나간 생각임을 알 수 있다.전세계가 국가, 문화, 인종의 장벽을 허물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건축 및 공간을 체험하고 경험하면
나만의 PC 만들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PC 케이스를 선택하고 마더보드, CPU, 램, 하드 용량, 그래픽카드 등의 부품들을 구입해 조립해서 만든 나만의 PC는 속칭 덕후들의 로망이었다.이처럼 언제부터인가 모듈(Module)이라는 용어는 우리의 생활 속에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맞춤형, 주문제작, 비스포크 등은 모듈의 또 다른 변신이다. 디지털시대의 빠른 변화는 소비자의 요구를 역동적이게 한다. 기존의 소품종 대량생산방식은 3D프린팅의 출현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대체되는가 싶더니 지금은 바야흐로 다품종 대량생산시대다.기존
LG아트센터를 설계한 안도 다다오는 이 건물에 세가지 콘셉트를 제시해 디자인 했다. 첫 번째는 건물에 들어서면 입구로 쏟아질 듯한 '게이트 아크'. 웅장한 노출콘크리트인 길이 70m·높이 20m의 벽면체가 13도 기울어진 채 관객을 맞아들인다. 두 번째는 지하철 입구에서 2층 객석까지 이어지는 '스텝 아뜨리움'으로 수직적 공간감은 자연스럽게 공연장으로 우리를 이끈다.마지막은 건물에 꽂혀 있는 듯한 '튜브'로 반복적인 마감재의 포물선과 튜브형태의 강렬한 공간감으로 자연과 인간, 과학과 예술이 상호 융합하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안도는 각
며칠째 중부 지방 해안에는 눈이 내리고 쌓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덕분에 하루종일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들녘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아침이면 눈이 내려앉은 들판에 부지런히 철새들이 나갈 준비를 하고, 저녁이면 또 한차례 군무를 이루며 주변 하늘을 가득 메워 철새들이 춤을 춘다. 가을이 깊어 겨울이 올 즈음이면 6년째(이사 온 지 6년) 어김없이 철새들의 울음소리를 통해 계절을 실감한다.단독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에 생에 있어 딱 10년을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몰랐던 일이다. 그나마 살던 아파트가 산 아래 있어 뻐꾸기 소리는 들을
유럽의 정 중앙인 체코의 프라하에는 두 개의 '성 니콜라스 성당'이 있다. 하나는 구도심에, 또 하나의 '성 니콜라스 성당'은 말로스트란스케 동네에 있다. 이 성당은 필자가 경험해 본 것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이다.체코를 포함한 중동부 유럽의 유목민족들은 5세기경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이후 9세기 무렵 프라하를 중심으로 옛 로마제국의 크리스트교를 계승해 신성로마제국을 설립했다. 신성로마제국은 19세기 초까지 이어지면서 오늘날 유럽의 지형을 가져왔다. 체코는 유목민족이라는 정치적 종교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크리스트교 중심
일본 오사카는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안도 타다오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비록 그가 일본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독창적 건축 언어를 구현하고 있지만, 그 스스로가 '오사카가 키운 건축가'이며 '오사카의 기질이 아니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이는 단순히 안도 타다오가 오사카에서 태어나 자신의 아틀리에를 설립한 이래 40년이 넘도록 오사카에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엘리트 출신의 건축가들과 달리 학연도 전무하고, 경험도 일천한 젊은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서 가능성을
필자는 꾸준하게 새로운 시대인 기후변화 시대를 준비하는 건축과 도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번에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넷 제로 레디 건축물(Net Zero Ready Building)'을 소개하며 기후변화 시대의 우리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넷 제로 레디 건축물'은 커녕 넷 제로(Net Zero)라는 개념도 생소한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넷 제로 건축물은 탄소의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건축물을 말한다. 오늘날 복잡하고 다양한 생활을 담는 건축물에서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적어도 현재
우리나라 사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가을이다. 북동의 설악부터 시작한 단풍은 남서의 내장산까지 가을을 두고 가기 마냥 아쉬운 듯 우리의 산천을 오색으로 물들이며 가로지른다.설악은 물론이요 속리산 길목의 말티재와 계룡산 갑사의 오리숲길의 단풍은 또 어떠한가. 코로나의 갑갑함이 단풍의 화려함으로 힐링이 된다. 옛적부터 단풍은 우리에게 화려함도 주지만 왠지 모를 서글픔도 함께 준다. 바로 이어지는 겨울나기의 힘듦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그런데 단풍 다음에 무언가 있다. 늦가을 바람에 은빛과 흰빛으로 곱게 단장하고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부여 관광을 위해서는 부여읍내로 직접 들어가는 것도 괜찮지만 부여 외산면에 있는 무량사를 들러서 가는 것도 부여를 더욱 잘 알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지금까지 필자가 무량사를 세 번 가량 방문했는데, 가장 좋은 때는 점심시간에 맞춰 무량사 입구 사하촌에 있는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고 무량사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사하촌에는 식당 세 곳 정도가 영업을 하는데 모두 다 내 입맛에 맞아 어느 식당이 더 낫다는 말을 못할 정도다. 시골스러운 입맛인 필자로서는 여느 관광지에서 먹던 맛과 틀리다는 생각을 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서울의 골목길을 걷는다. 이태원서 시작해 해방촌을 경유해서 용산고로 내려온다. 늘 시작은 이태원역 1번 출구다. 1번 출구를 나와 해밀턴호텔에서 우회전해 골목을 지나면 세계음식거리가 나온다. 정통 인도식 카레의 매콤한 향, 발칸반도의 꼬치구이 연기, 따봉의 나라 브라질식 마늘 스테이크의 압도적인 양으로 이국적 감성이 제대로 살아난다.문화와 사람의 이방 공동체인 이태원은 아픈 역사를 많이 안고 있다. 임오군란 진압을 위해 청나라군대 주둔과, 일본군 조선사령부 주둔, 광복 후에는 미군이 주둔했다. 그 후 이태원은 미
지난 글에서는 기후위기와 리질리언스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번에는 최근 다양한 문헌들에서 강조하고 있는 기후정의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기후와 정의, 뭔가 어색한 듯한 두 단어가 결합되어 있는데, 이 개념들이 강조하는 바는 이전 호에서 소개한 것과 유사하다. 즉, 기후변화에 의해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경제적 약자들이고, 이들은 기후변화에 의한 피해를 견뎌낼 수 있는 능력, 그 피해로부터 회복하는 능력 모두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들을 기후취약계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렇다면 분명 기후위기로부터
견우와 직녀, 고려 충신 정몽주, 세속과 피안의 경계, 퐁네프(Pont neuf)의 연인들, 밀비우스전투(Milvian battle)의 공통점은 '다리'다. 견우와 직녀를 위해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 준 오작교에서 둘은 만나고, 선죽교 정몽주의 죽음은 고려멸망이라는 역사의 전환점이 됐고, 불국사와 선운사의 홍예 다리는 속세와 해탈을 구분했고, 그리스-로마시대를 마감하고 중세를 연 콘스탄티누스황제의 밀비우스전투가 있었던 곳도 다리다.다리는 이음과 구분 그리고 매개의 역할로 사람과 사람을, 세상과 세상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통하게 한
따갑던 햇살이 따스하다고 느껴지는 가을 초입 완도여행을 갔다. 완도는 아이들 어릴 적에 와 보고는 아주 오랜만의 방문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고산 윤선도의 원림 '세연정' 방문이다. 소쇄원과는 또 다른 우리나라의 정원건축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길을 떠난다.세연정이 있는 보길도는 완도 남서쪽에 있는 노화도에서 약 3.8㎞ 떨어져 있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노화도에 가면 보길대교를 건너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섬의 명칭은 섬 내에 명당자리가 있다는 뜻(十用十一口[甫吉])으로 보길도(甫吉島)라 불렀다고 한다.세연정(洗然亭
오래전 일이다. 충청남도에서 전국 여성건축사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전국의 여성건축사들이 모여 충남의 건축물과 지역문화를 둘러보며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한 것인데, 건축에 대한 다양한 전문가적 접근과 새로운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1년에 한번씩 답사와 세미나로 이뤄지는 시간이다. 당시 부여와 공주 일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백제문화에 대한 강연과 건축사 대회를 열었다. 다음날에는 내포신도시 도청사 견학, 도지사와의 면담 등으로 이어졌던 기억이 있다.그 당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집결지를 정하는 문제였다. 전국 각지에서 100여
이제 더위도 물러가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올해처럼 다양한 기후적 변화를 경험한 때도 드물다고 생각된다. 기록적인 폭염, 중부의 기록적인 국지 폭우, 남부의 가뭄, 유래 없는 강도의 태풍 등이 그러했다. 그 결과 상당한 인명, 재산 피해도 속출했다. 특히 8월 8일 중부지방에 내린 엄청난 폭우로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의 참변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여름은 그 전의 기록들을 갈아치우는 사건이 많았고, 그만큼 인적, 물적 피해가 컸다. 그럼에도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의 피해를 언급한 이유는 오늘 다루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는 부동산에 울고 웃었다. 사회, 정치, 경제의 모든 이슈가 블랙홀마냥 부동산에 수렴됐고, 세대와 계층 간의 불화가 커지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건축은 본래 인간이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쉘터(shelter)를 짓고 그 안에 거주하며 일상을 보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렇기에, 주거는 건축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거대한 파급력을 지니며 온 국민의 관심사를 점령하고 있는 부동산이라는 단어는 우리로부터 건축의 본질에 대한 논의와 사색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
태풍 힌남노에 이어 난마돌이 동해안쪽으로 빠져나갔다. 유달리 올해는 폭우와 태풍으로 인한 재해가 잦다.지난 8월 서울을 강타한 물폭탄으로 신림동 반지하의 일가족 세 명과 상도동 반지하 주민 한명이 참변을 당했다. 숨진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먹먹함은 어찌할 수 없어도 칠순의 노모를 모시는 40대의 딸이 장애를 가진 언니, 그리고 열 세살의 딸과 함께 당한 반지하의 참사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용한 비닐봉지까지 씻어 다시 써가며 모은 돈으로 장만했다는 반지하의 집은 말 그대로 뼈빠진 노력의 끝이었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