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넓은 길과 만난다. 길 건너엔 학교가 있고, 놀이터도 있고, 성당, 교회도 있고, 재래시장 가는 길이기도 하여 횡단보도에 신호등까지 설치되어 있는 어린이 보호구역이다. 그런데 이 횡단보도 앞에만 서면 시험에 들곤 한다.우리 부부는 새벽미사가 있는 날은 거의 빠지지 않고 성당엘 가는 편인데 사이좋게 가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가끔 의견이 충돌한다. 이쪽저쪽을 살피다 길을 건너려는 아내에게 주모경 한 번만 더 바치면 신호가 바뀐다고 꼬드기지만 그냥 건너기 일 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빨리
사진 한 장이 카톡, 날아든다. 풋풋하고 청순하기까지 하다. 중년인 우리. 친구 사진이라니. 젊었을 때 모습이겠거니 한다. 알고 보니 AI사진을 만들어주는 앱에서 재미삼아 해본 거라고 한다.얼마 전 인공지능 활용 연수가 생각난다. 어떤 기능을 활용해서 그림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상황을 글로 입력하면 그 분위기에 맞게 그림을 그려 주었다. 엄마와 함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려 글을 썼고 모네 풍으로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정말이지 그럴싸한 그림이 탄생되어 놀랍고 신기했다.재미에 불과한 단순한 기능들이다. 나는 아날
천변으로 향하는 산책로는 하나로 뻗어 오른 나무줄기처럼 반듯하다. 갓길을 찾을 수 없기에 그 길을 따라서 걷는다. 도로 가장자리로 심겨진 은행나무는 의장대의 사열인 듯 일렬종대로 서서 차도와 인도의 경계선을 지키고 있다. 볕을 듬뿍 받은 계절의 잎새는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바닥에 그려지는 그늘의 무늬는 발걸음에 밟혀도 끝내 의연하다. 어린 날부터 자신의 온몸에 햇볕을 담아 놓았으니, 지난 가을날은 그토록 찬란했다.'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시는 나 같
이른 아침, 마당이 눈으로 덮여 있다, 마당뿐이 아니다. 담장 너머 세상이 온통 하얀 겨울왕국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냉동고 날씨와 폭설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밖으로 나오니 길고양이 세 마리가 달려온다. 이 추운 날 어디서 잠을 자고 온 것이냐. 냉장고에 준비해 두었던 돼지고기 한 점씩 던져 주었다. 번개처럼 먹이를 물고 빛의 속도로 달아난다. 다 먹고 나서 금방 달려와 더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앞발로 툭툭 치며 따라다닌다.대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쓴다. 밀대와 눈삽으로 쌓인 눈을 치운
입동에서 시작한 겨울은 소한, 대한을 거치며 기승을 부리다가 입춘으로 끝을 맺는다. 겨울은 어둡고 침침하고 추운 계절이지만,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새봄을 준비하는 소중한 계절이다. 겨울은 매년 자연이 선사하는 휴지기이기도 하다. 늦가을 떨어진 낙엽들이 눈비를 만나 땅을 기름지게 하여 봄이 찬란하게 오도록 기름지게 길을 닦아주고 있다.길을 닦아 주어야 하는 것은 자연이든 사람 사는 세상이든 똑같다. 이 세상에 먼저 와서 살고 있으면 뒤에 올 새로운 세대를 위하여 길을 터주고 잘 닦아주어야 함이 마땅한 일이다. 이는 세상
청룡이라는 택배 상자가 막 열렸다. 이태백은 산문인 '춘야연도리원서'에서 천지는 만물을 맞이하는 여관이고 시간은 끝없는 나그네라고 했듯이 삶에서 희망은 잠시 와서 머물렀다가 이내 떠나는 나그네와 같다. 스쳐 가는 삶이더라도 욕망의 유전자를 지닌 인간에게 만족은 없다. 충족하면 또 다른 것을 찾아 나선다. 제힘으로 걷고 먹는 자유를 누리는 기간이라야 80년도 채 되지 않는 인간이 욕심으로 포장된 갖가지 희망을 품는다. 정작 희망은 한 두어 개만 있으면 되지 싶다. 자신을 돌이켜 삶의 양식을 단순화함은 희망의 다이어트라 할 수 있다.현
우리는 살아가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라 할 수 있고, 그와 함께 행복도 동반하게 된다. 그러나 살다 보면 늘 평탄할 수만 없는 게 인생이다.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는 고비고비 넘어야 할 산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산은 우리에게 때로는 절망과 좌절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막막함 속에서도 하나의 빛이 있다면 참 다행한 일일 것이다.안성덕 시인은 시집 '깜깜'을 출간했다. 이 시집에 수록되어있는 작품 '등대'는 삶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벗어나게 하는 지
해마다 새해가 밝으면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올해는 반드시 담배를 끊겠다고. 피우던 담배를 모두 버리고 금연침을 맞고 금연 패치도 붙이고 밤낮없이 금연 껌을 씹으며 버텼다. 그러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보통 보름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견디다가 담배를 다시 물었다. 새해가 되기 전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금연할 결심을 알리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지만 번번이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웠다. 대충 따져 봐도 잠자는 시간 빼고 삼십 분도 채 안 돼서 한 개비 씩 피운 것이다. 아내는 물론이고 주변 지인들의 걱정이 매우 컸
세월여류(歲月如流)라더니 어느새 새해를 맞은 지도 열흘이 지났다. 지난해 살아온 삶의 결과에 따라 새해를 맞은 감회 또한 달랐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삶이 가시덤불 속에서도 고고하게 핀 하얀 찔레꽃 같은 삶이었든, 시멘트길 틈새에서 어렵게 꽃대를 뽑아 올린 민들레꽃 같은 삶이었든, 화려하고 열정적인 장미꽃 같은 삶이었든, 지나고 나면 보람보다는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다. 새해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 묵은 것은 다 보내고 사정은 다르지만 저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어찌 보면 인생이 아름다운 건 이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가 아
새해가 되면 늘 다이어리 첫 장에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적는다. 작가로서 원하는 목표도 있고, 회사에서의 실적과 성과에 대한 것도 있다. 또 자산과 건강에 대한 목표도 늘 빠지지 않지만 대부분 목표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한해가 끝나버린다. 그래도 새해가 되면 또다시 무슨 의식처럼 비슷한 목표를 적는다.돌이켜 보면 참 치열하게 살았다. 이십 대에는 시골에서 상경해서 공부하느라 바빴고, 삼십 대는 해외에서 일을 배우며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사십 대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이 전쟁이었다. 그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정초가 되면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서로서로 덕담을 건넨다. 현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직원회의에서 필자가 '새해가 되면 가장 많이 불리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질문을 하자 어떤 선생님이 단번에 '복 많이'라고 대답하였다.'그럼 복많이랑 친구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묻자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필자가 '복을 많이 받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라고 묻자 '봉사', '친절', '선행', '배려', '양보'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다음 필자가 '복 많이 받으려면 덕 많이 쌓으
내가 보낸 '26집 대일 문학'을 받고 가슴이 뛰었다며, 후배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황혼육아를 하느라고 그간 미뤄두었던 문학에의 꿈이 다시 고개를 든 모양이다. 아무렴,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동인지인데. 내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한때 이웃에 살며 소설 공부를 함께 하던 후배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에 만났기에 서로가 자녀들의 성장 과정까지 세심하게 알고 있지만, 요즘엔 거의 SNS를 통해서만 소식을 나누던 참이었다.그 사이 딸애가 자매를 두었고, 더 좋은 직장을 찾아 천안으로 옮겨가자 아예 후배가 딸네 집으로 가서 손녀
세모에 들어서니 모든 사물이 일제히 정리 모두에 들어간 듯 숙연하다. 우리 집 베란다 반려 식물들도 누런 잎들을 다 떨궈내며 일제히 겨울 전투에 임하려는 엄혹한 모양새다.그간 홀대를 당해가며 유리창 문 앞에서 무거운 하늘을 이고 위용을 자랑해 오던 고무나무의 고민이 가장 클 것 같다. 그간 따뜻한 거실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며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셋씩이나 낳아 오순도순 호사도 누렸었다. 그러다가 자연 몸의 균형을 잃어 베란다 귀퉁이로 밀려난 신세가 됐다.이젠 살든 죽든 그를 내방 쳐 버린 것이다. 그는 가족의 냉대 속에 차츰 원형을
필자는 대전문화재단이 지원한 사업에 사회 돌봄이 필요한 청소년들과 뮤지컬 공연을 올린 적이 있었다. 아이 중 일부는 경계선 지능 청소년들이었다. 경계선 지능인 경우 단기기억 능력도 약하고 장기기억 속에 정보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인출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산만하고 집중력이 약하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자존감은 약하다. 처음에 그들도 그랬다. 그러나 공연 준비를 하면서 그들은 달라졌다. 음악과 연극을 통해 자기표현을 하면서 아이들의 눈빛과 표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경계선 지능인은 전체 인구의 13
지난 토요일, 막내 여동생 외손자 돌잔치에 다녀왔다. 돌잔치 모바일 청첩을 받고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도 됐다. 결혼한 지 2년 지났는데 돌잔치라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자녀가 결혼하지 않거나 했더라도 2세 계획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들과 며느리 때문에 속이 터진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 출산률은 지난달 기준 0.7 명인데 1년 전보다 0.1명 줄어든 수치라는 보도가 있었다. 출산율 1명 미만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다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국가 경제 위기뿐만 아니라
있어야 할 자리에 차가 없다. 열쇠는 가방에 있는데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보이지 않는다. 먼저 출근한 남편도 어쩐 일인지 전화를 안 받는다. 출근 시간은 점점 세차게 나를 압박해 온다. 하는 수없이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그제야 번뜩 떠오른다. 어제 출장이 있어 급히 동료 차로 가는 바람에 까맣게 내 차는 잊고 말았다.아침에 있었던 이 일은 아주 미미할 뿐이다. 나의 허술함에서 비롯된 당황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지나온 걸 보면 운이 좋은 편이라 해야 할까. 허둥
김장을 끝낸 저녁답이다. 다시 만난 백석(白石)의 시(詩),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는 모습이 해 어름 갈피로 어룽거린다. 밥 뜸 들기를 기다리며 된장국을 끓이는데, 따뜻한 소식을 받았다. 잦은 이사로 한 곳에 터를 내리고 살지 못하던 쌍봉낙타 같은 이웃이다. 내외에게 일상은 사막이어서 종종 모래 섞인 바람이 지나면, 나는 까슬한 두 눈을 슴뻑거리며 그냥 먼 데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는 누옥일지언정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거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볕 바른 거실에 박수근의 복제
최근 시민들과 함께 만든 연극 '택배 왔어요' 무대를 마쳤다. 모두 처음 서보는 무대에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듯 싶었다. 필자도 무대 위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커튼콜을 하는 참여자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해냈다는 벅찬 감정을 느꼈다.연극을 마치고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연극을 하고 나니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한결같이 생애 처음으로 해보는 연극이 무척이나 설레고 낯설었지만, 행복하다는 답이 돌아왔다.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서 '어떤 삶에 비중을 두는가'의 질문에 대다수 국가의 사람들이 행복한 삶(69%)이라고
입동 다음 날, 사랑하는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100세 시대라는데 70도 살지 못하고 가족의 곁을 떠났다.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비바람 불고 나뭇잎이 어지럽게 떨어지고 있었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 한 가지에 나고 / 가는 곳 모르는구나.' 신라 고승 월명사의 '제망매가' 한 구절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칠 남매 중 유일하게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동생은 부모에게 효도하면서도 형제들과 우애가 깊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어서 엄마 예쁜 옷 사다 주고, 아버지 좋
어느 방송사에서 대중가요 경연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TV에선 신인가수가 선배 가수의 노래를 흥겹게 부른다. 세간에 유행하던 노래도 한때는 시련이 많았다. 한참 유행하던 노래도 금지곡으로 지정되면 방송에서 들을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 김', 양희은의 '아침 이슬',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등이다. 여기서 '동백 아가씨'는 일본풍이라서, '키다리 미스터 김'은 키 작은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할 것 같아서, '아침 이슬'은 가사가 불순해서, '독도는 우리 땅'은 일본과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