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미 시인.
현경미 시인.

있어야 할 자리에 차가 없다. 열쇠는 가방에 있는데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보이지 않는다. 먼저 출근한 남편도 어쩐 일인지 전화를 안 받는다. 출근 시간은 점점 세차게 나를 압박해 온다. 하는 수없이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그제야 번뜩 떠오른다. 어제 출장이 있어 급히 동료 차로 가는 바람에 까맣게 내 차는 잊고 말았다.

아침에 있었던 이 일은 아주 미미할 뿐이다. 나의 허술함에서 비롯된 당황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지나온 걸 보면 운이 좋은 편이라 해야 할까. 허둥거리며 살다 보니 주변을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한 건 당연지사일 테다.

최근, 그런 나에게 지나온 시간을 더듬어 보게 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아동문학으로 등단한 지 16년 만에 첫 동시집을 발간하게 됐다. 첫 책이다 보니 설렘도 컸지만 힘겨움도 적지 않았다. 그 와중에 문인들과 지인들에게 책을 보내는 일은 만만찮았다. 처음엔 부담스러운 일로만 다가오던 것이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게는 높기만 한 문단이던 시절이었다. 그 문을 열어준 곳이 바로 이곳 대전일보였다. 오랫동안 활동을 멈추고 이름도 없이 외로움 속에 있을 때, 곁에 있어 주고 힘을 북돋아 준 존재가 대일문학회와 문우들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내가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별일 없었던 게 결코 아니었다. 내 곁의 모든 이들이 베풀어 준 배려 덕분이었다는 걸 깨달아졌다고 할까. 한 분 한 분 고마웠던 이름들, 고마웠던 순간들, 그간 잊고 지낸 기억들이 가슴 속 한가득 피어올랐다.

오늘은 동시집을 들고 옛 은사님을 뵈러 가려 한다. 졸업 무렵 교무실로 나를 불러 글쓰기에 재능이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하셨던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신춘문예 당선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라도 고마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 이 겨울, 소환된 한 분 한 분 이름들이 새삼 고맙다. 현경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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