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동네에 주민을 즐겁게 하는 가게가 하나 생겼다. 상호도 재미있는 '퍼주고 또 퍼주는 가게'. 처음에는 과일과 채소를 주로 팔더니 차츰 젓갈과 생선도 들여와 거의 파격적이라 할 만큼 싼 가격으로 팔고 있다.이른 아침, 산책길에 혹여 뭐라도 살 것이 있나 해서 들르면 그땐 물건을 진열한다며 상대도 하지 않는다. 준비가 끝난 오전 9시가 되어야 손님을 받고, 오후 4시 반이 되면 그 가격에서 또 한 번 떨이로 판다. 어쩌다 시간이 맞는 날에 장을 볼라치면 횡재라도 한 것처럼 나는 마냥 기분이 좋다. 대신 깜빡 시간을 놓
몇 해 전 대전 서구와 유성구를 연결하는 도솔터널이 개통되면서 집 앞 사거리는 늘 주차장 같다. 부천 언니네 가기로 한 날, 집 앞은 잠시 주차도 어려워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동생과 만나기로 했다. 칼바람이 부는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대형교회 입구에 있는 주유소까지 갔다. 어라, 감쪽같이 사라진 주유소.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런 흔적이 없다. 말끔하게 정리된 공간에 승용차 몇 대 세워져 있다. 얼마 전에도 본 것 같은데 좀 당황스럽다.하긴 20년째 사는 동네에서 사라진 것이 주유소만은 아니다. 주거래하던 은행이 사거리에서 없어지더
요즘 식상한 정치 이야기를 제외하고 자주 등장하는 기사 중 가수 출신에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모 연예인의 '열정페이' 논란이 눈길을 끈다. 이 원고를 쓰는 아침에도 기존의 구인광고는 잘못됐다고 경력이 없는 초임 연봉을 30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하는 기사가 포털에 실려 있었다.사람들은 대졸 수준에 경력 2-3년을 가진 사람을 구하면서 연봉 2500만원을 제시했다고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하면서 열정페이 논란이 시작됐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런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어디 비단 그 회사뿐이랴? 또한 그런 대표적인 기관들이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필자에게는 '금강'과의 인연이 아주 각별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인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보다 가까이에서 금강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필자는 틈만 나면 혼자 금강을 즐겨 찾았으며, 금강 변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문학에 막 눈이 뜬 시기이기 때문에 필자에게 금강은 사색을 즐기기에 아주 적절한 장소였다. 금강은 일종의 퀘렌시아 같은 곳이었다.삶이 지치고 힘이 들 때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이 들 때에도 곧장 금강을 찾았다. 공주에 있는 곰나루와 공산성, 그
아직 바뀐 숫자에 익숙하지 않다. 출근해서 다이어리에 날짜를 적을 때 2022년이라 쓰다 지우곤 한다. 손에도 눈에도 익지 않은 탓이다.눈이 많이 내린 다음 날, 영하 12도였는데 새벽에 나갈 일이 있었다. 버스정류장까지 길이 미끄러워 발 밑만 보고 걷는데 번쩍 스치는 빛에 고개를 들었다. 전깃줄로 어지러운 까만 골목 끝이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사진 두어 장을 찍었다.한 해의 마지막 날이면 밤을 새워 산으로, 바다로 일출 명소를 찾아 다녔다. 쫓아가 맞이하지 않으면 나를 외면하기라도 하듯 열정적이었다. 어느 해엔 신바람이 나서
2022년도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매년 새해가 되면 결심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올해는 정말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보자'라는 것이다.그 해가 다 지날 때쯤 돌이켜보면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녔으면서도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작품이 없다는 사실에 올 한 해도 별 볼일 없었구나 라는 소회와 함께 또 한 번 씁쓸해진다.얼마 전에도 누군가에게 '2022년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인지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정작 나의 답은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없네요'라고 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무대예술상을
일 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했다. 1200가구 중 대략 800명 정도가 단체 메신저 대화방(단톡방)에 들어와 있었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해관계가 다른 조합원과 일반 분양자가 함께 있는 단톡방 분위기는 냉랭했다.입주가 시작되고 누군가 인테리어 때문에 철거한 자재를 나누겠다고 단톡방에 올렸다. 그러자 너도 나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가지고 온 물건을 올리며 필요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했다. 작동이 잘 되는 소형 가전제품, 산지 얼마 안 된 소파나 식탁, 둘 곳이 애매한 책장이나 서랍, 테이
유등천 너머로 기우는 저녁노을이 한 뼘 남짓 아쉬움으로 머뭇거리고 있다. 마치 잘 익은 너의 속살 같은 시간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언제 어디서든 널 반색하며 즐겨 맞이했지. 지난 가을 친구네 농장에서 네 줄기를 솎아가라는 전갈이 왔었어. 나는 두말 없이 곧바로 농장으로 직행을 했지. 너른 농장엔 소담한 야채들도 많았지만 내 눈길은 오로지 검푸른 네 줄기에 꽂혀 버린 거야.너는 마치 날 유혹이라도 할 듯 온갖 아양을 떨며 정겨운 손사래로 날 맞아주었어. 나도 진심을 다해 너를 품에 안았지. 그리고 너의 이파리 하나하나에 뽀뽀 세례도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스치는 기억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일에도 기승전결로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한다. 그것은 어떤 일이든 결론을 지어야만 또 다른 일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다.임인년(壬寅年)이 기우는 해이고 계묘년(癸卯年)이 시작이니 한 해를 마무리하는 그 무엇인가를 해야 되지 않을까 괜스레 마음이 바쁘다. 늘 시작하는 달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 오면 불안정적이다. '눈이 많이 올 때 이사를 하면 근심을 덮어주고 비가 올 때 이사를 하면 근심이 다 떠내려간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
2002년 당시 세종에 있던 일반계 고등학교인 성남고등학교(현 세종대성고)에 예술계인 연극과가 생겨 공연을 만든 작품이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뮤지컬이었다. 이 작품은 제1회 김천 가족연극제에서 우수상과 남자연기상을 수상했으며 그 이후 매년 새로운 뮤지컬과 연극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나중에는 뮤지컬과가 만들어지며 공연예술계의 젊은 인재 양성에 기여하게 된다.필자도 '아가씨와 건달들'부터 시작해 약 20여년의 시간 동안 학생들의 작품과 함께 했다. 특히 '캣츠'의 경우 전국 순회공연을 다닐 정도로 열심히 만들었던 작품으로 지금도 기
작가들의 미술 경매행사인 제8회 대전 국제아트쇼에 갔다. 한빛탑 부근 컨벤션센터 전시장에 입장하니 맨 먼저 달항아리가 미소 지으며 안긴다. 보름 달빛 아래 그림자밟기 하던 동심이 느껴진다. '달은 천 번 이지러져도 본질을 잃지 않는다' 했다. 광물의 자원 보고라는 달을 향해 미국은 이미 새로운 인류인을 위한 8400여 우주군을 설치하는 등 선진국답게 정복의 로망에 가득 차 있다고 한다.선인들은 달 속에 옥토끼라는 생명을 불어넣어 그 영험함이 순수한 도공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조선의 백자는 겨레의 숨결, 밀월이 흐르고 순백·청백·난백
겨울이 오면 우리 몸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 동면하는 야생 짐승의 경우에는 동면하기 직전까지 최대한 많은 먹이를 섭취하여 몸을 불리는 행동을 한다. 동면을 하지 않는 짐승들 역시 추위를 느끼기 시작하면 겨우내 먹을 먹이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준비하게 된다.사람 역시 날씨가 추워지면 더 추워지기 전에 겨울을 날 음식 재료를 준비하게 된다. 대표적인 활동이 김장하는 것이며, 갖은 채소와 과일, 생선 등을 말리거나 찌거나 장을 담궈 밑반찬 용도로 준비하게 된다. 물론 지금은 생활상이 예전에 비해 변화가 많이 돼
사람이 살다 보면 자연스레 위아래가 생겨난다. 꼭 생겨야 하는 문화가 아닌데도 이상하게 생겨나는 이 문화는 어떻게 보면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옛말에 '윗목 아랫목도 순서가 있다' 라든가,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라는 등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요즘 같아서는 평등이란 단어 때문일까 위아래가 불분명할 때가 많다. 그것이 평등인지는 몰라도 자유엔 질서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위아래 문화는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오래 전 일이지만 추운 겨울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골집에 방문하면 할머니는 "따뜻한 아파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남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녀들의 교육 문제였다. 모두 공통적으로 자녀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것인지 답이 없다는 내용이었다.그런데 문제를 일으키는 실질적인 것들이 몇 가지 이야기 됐는데, 그중에서도 휴대폰과 게임이 부모와 자녀가 겪는 문제의 도화선이 되는 듯 보였다.한 부모님은 중학교 2학년인 자녀가 새벽 3시까지 여학생과 통화하는 것을 보고 못하게 했더니 화가 나서 부모에게 뭐라고 한다고 도대체 이
외신은 연이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국을 불안한 국가로 여긴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에 겪은 한국전쟁 3년을 기억해본다.전쟁 중에 대전 선화초등학교 목조건물 한 동은 군대 막사였다. 운동장에서는 불같은 훈련대장의 호령소리와 보충병들의 대답 소리로 쩌렁댔다. 약식훈련을 마치고 출병하던 날 구령 소리와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슬픔으로 뒤섞였다. 희뿌연 흙먼지 일구며 전선으로 떠나간 빈자리엔 주인 잃은 고무신짝과 눈물 젖은 헝겊들이 바람에 나뒹굴었다.학교 앞길에 미군을 실은 트럭이 다가오면 꼬마들은 떼 지어 몰려가 "할로, 오케이 기브 미
자존감은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세간에 우스갯 소리로 회자되기도 했던 '근거 없는 자신감'의 줄임말로 '근자감'이라 말하며 엉뚱한 자존감이 표출됨을 풍자하기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도 자존감은 내가 나에 대한 존중, 남이 나에 대한 존중, 집단이 나에게 하는 존중 등을 바탕으로 성립된다.자존감이 높다 낮다는 정도는 개인마다 편차가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치를 잡기 어려운 면이 있다.그러나 자존감이 너무 높을 때는 앞서 언급한 '근자감'의 경우처럼 안하무인이 될 폐해가 있다. 너무 낮을 땐 사회 생
어느 새 한 해가 다 지나가고 달력이 한 장 남았다.아쉬워하며 손 글씨로 몇 자 적어본다. 자랑 같지만 필자는 매월 30여 통의 엽서를 쓴다. 취미생활중 하나다. 특히 시집이나 책을 받으면 읽어보고 엽서를 쓴다. 젊었을 땐 미리 엽서를 구입해 시간 날 때마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주소를 써 놓았다가 여행을 떠나거나 혼자서 조용한 카페를 찾아 멍때리기 할 때 차 한 잔 시켜 놓고 엽서를 썼다.지나는 길에 우체통에 넣고 배달되기까지 기다리며 마음을 다스리고 기다림의 미학을 즐겼다. 우체국에 들어가 우표를 사며 세상 흐름도 엿보며 나름 행복
2015년 5월 미국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떠났던 아들이 한국으로 7년 6개월 만에 돌아온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 4년 6개월을 일했지만 비자 연장이 불가능해 한국에 돌아오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사실 아들과는 2008년부터 떨어져 살았기에 큰 감흥은 없지만 필자가 2000년에 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돌아올 때와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때는 '돌아올 비행기 값도 마련하지 못해 그동안 모았던 마일리지로 무료 항공권을 이용했었는데' 하면서 말이다.그런데 돌아온다고 하니 또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 바로 젊
TV에 자기 분야가 아닌 젊은 남녀 선수들의 축구 경기가 재미있다. '아마추어'이기에 더욱더 기다려진다. 대전 유성구 노은도서관에는 예쁜 갤러리가 하나 있는데,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2014년 당시 유성구청장이 애써주신 덕분이기도 하다. 바로 이 도서관 내 새로 만들어진 노은아트리브로 갤러리다. 작금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갤러리가 2년 넘게 봉쇄되다 해제되니 볼거리가 있어 행복하다.최근 만추(滿秋)에 어우러진 노은아트리브로 갤러리를 찾았다. 화려한 포스터를 보니 주부들의 수채화 동인전이다. 갤러리 자동문은 스르륵 열리는데 반기는
2002년 6월 한일월드컵, 당시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6월 초여름 더위와 더불어 세계는 월드컵으로 인해 열광의 도가니로 들끓었다. 대한민국이 4강 진출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경기 전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집 밖으로 쏟아져 나온 차와 사람들로 거리를 가득 메우기도 했다.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전 경기에 온 국민의 관심이 고조됐고, 우리나라 국가 대표팀의 승리로 인한 흥분은 너 나 할 것 없이 표현하기 힘든 정도의 희열을 선사했다. 서울의 광화문과 더불어 전국의 도시들은 거리 응원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고, 전국의 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