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공상을 한다. 현대 과학기술이 주는 혜택은 그대로 누리면서 옛날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우리 주변에는 편리한 현대 과학문명의 이기가 많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가 있으니 멀리 여행할 수 있고,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각종 가전제품이 있으니 살림살이가 편하다. 여기에 산과 강이 예전처럼 개발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참 좋겠다. 동궐도에 묘사된 것처럼 궁궐에는 붉고 푸르게 단장한 전각과 정자가 가득 펼쳐져 있고 궁장 밖 언덕에는 소나무가 가득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공상은 한낱 바람일 뿐이다. 그러나 공상을 현실화 하고픈 욕망과 노력은 항상 있어 왔다. 그 중 일부는 실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없어진 옛 건축물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경주 불국사의 불전, 경복궁과 창덕궁의 전각 등 그 동안 꽤 많은 옛 건축물이 다시 세워졌다. 이미 사라진 옛 건축물을 다시 세우는 것은 쉬워 보일 수 있다. 집터를 조사하면 대개는 집의 배치와 규모를 알 수 있고 그 집을 묘사한 글이나 그림이 있으면 모양을 어림할 수도 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다양한 사진 자료도 있으니 좀 더 정확하게 옛 건축물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정보가 있어도 옛 건축물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추정이 불가피하다. 없어진 지 수십 년에서부터 백 년 이상 된 건축물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1969년부터 73년 사이에 복원된 불국사의 경우, 무설전, 비로전, 관음전 등 없어진 불전을 다시 짓기 위해 현존하는 여러 건축물의 특징을 참고하거나 아예 모방했다. 발굴을 통해 옛 건축물의 위치와 규모는 알 수 있어도 실제 건축물의 모양은 전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 2011년까지 복원된 경복궁은 비교적 풍부한 고증자료가 있다. 19세기 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다양한 사진이 있고 무엇보다 경복궁의 배치를 그린 북궐도형이 있다. 그러나 복원 후 새로운 사진 자료가 나오면 항상 그 전에 복원된 부분은 틀려 다시 고쳐 지어야 했다.

고증과 추정 사이를 오르내리는 복원의 속성으로 인해 사라진 옛 건축물을 다시 짓는 것은 항상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찬성론자는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예전에는 대략 이런 분위기였을 거라고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텅 빈 집터만 보고 어떻게 옛 모습을 상상하며 감흥을 받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는 새로 지은 건축물은 정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정확하다 하더라고 가짜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럴듯한 가짜보다는 비록 한 조각에 불과할지라도 진짜라야 진정한 역사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복원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현실적인 이해관계다. 유명한 옛 건축물을 다시 세우면 이것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생기고 이로 인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지역민들은 기대한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동향에 민감하고 여기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복원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지역경제를 위해서는 새로운 조형물도 만드는데 옛날에 있었던 건축물을 다시 세우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생각한다. 역사적 진정성이니 진짜니 가짜니 하는 것은 소수의 전문가들이나 관심이 있을 뿐 일반대중에게는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증할 수 없는 부분은 상상력을 동원해 보충하면 되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 또한 고졸해져 사람들은 그 분위기에 익숙해진다고 주장한다.

복원의 치명적인 약점은 많은 돈이 지속적으로 든다는 점이다. 처음 복원할 때는 물론이고 세월이 지나면 일단 복원한 `가짜`도 진짜 문화재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유지하고 관리해야 한다. 반대론자들은 `가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노력과 비용이 진짜에 들어갈 여력을 갉아먹는다고 걱정한다.

선택의 문제일 뿐 정답은 없다. 그 선택은 과거를 상상하고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가치관에 달려있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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