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노래한 대중가요로는 1959년 '안정애'가 발표한 트로트 곡 '대전 블루스'가 으뜸으로, 1963년 제작된 '대전발 0시 50분'이라는 영화 주제곡으로 알려진 김부해 작곡, 최치수 작사이다. 1999년에는 역 광장에는 노래비가 세워졌다. 1898년 경부선 철도 합동조약을 체결한 이후인 1904년에 일본인들의 거류를 돕기 위하여 지금 대동(大洞)에 목조로 간이역 수준으로 처음 역사가 개설되었다. 1928년 현 자리에 양측에 두개의 돔을 갖춘 중세 서구식 대전역사(목조/200평)가 낙성되었고, 1920년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초창기 건축계의 맏형을 꼽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근대건축에 이삭을 뿌린 춘성 유원준(1909-1993)을 이야기한다. 대덕군 유천읍 210(현 중구 유천동)에서 태어나 삼성초등학교와 대전중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기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조선총독부 영선계에 근무하면서, 조선건축회 정회원으로 많은 건축물을 설계 감리하였다. 해방 이후 대한토건협회 창설이사로서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건축 토목계 단체의 산파 역할과 재정적 후원을 자임하였다. 1946년 '신광토건사'를 설립해 지원병 훈련소, 함흥 명보
대전은 철도교통의 중요지로 경부선에 호남선이 분기되면서 타국인에 의해 인위적으로 시작된 계획도시이다. 이러한 도시가 시작하기 위해서 우선 설정되는 것이 도시의 기준점인 도로원표(道路元標)이다. 이는 주요도시간의 도로상의 거리를 표시하는 표석으로 대전의 도로원표는 당초 1번 국도와 4번 국도가 마주치는 서대전 삼거리에 있었다. 처음 도로원표가 지정되던 해인 1914년에야 비로소 대전은 행정구역상으로 '대전면'으로 설정되었고, 사진자료에 의하면 본정(本町) 입구에 높이 3m 정도의 네모긴 말뚝에 '이정원표(里程元標) 충청남도 대전(忠淸
대전의 남쪽에 펼쳐진 주산은 보문산(寶文山)이다. 해발 457.6m이며 주봉은 시루봉으로 예전에는 '최고봉'이라 했는데, 언제부턴가 이름이 바뀌었다. 대전에서 자라면 어릴 때부터 단골 소풍장소로 알려진 친근한 앞산으로 이곳을 오를 때면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산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나 궁금했다. 시내에서 보문산을 중구 안영동(장수마을 옆) 쪽으로 오월드를 지나 연고개를 넘으면 '무수천하마을'이 있다. 무수동 초입으로 들어서면 우선 안동권씨 종가댁이 단아한 모습으로 반겨준다. 그 길을 따라 돌다보면 무수들을 지키는 초가지붕의 정자인
대전은 철도 교통요지로 경부선에 호남선이 분기되면서 인위적으로 시작된 계획도시이다. 대전이 근대적 도시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구한말부터로, 고려시대에는 회덕군으로, 조선시대에는 회덕현과 진잠현으로 불렸다. 1892년부터 시작한 경부선 노선 선정에서 1900년 실시한 제4차 답사에서 중간기점이 최단거리인 직선으로 이을 경우 속리산을 통과하는 어려움 때문에 계룡산 옆으로 우회시키며 노선의 구배와 공사 난이도를 따지고, 전통 마을을 비켜 대전을 통과하는 노선으로 결정된다. 이로써 대전은 군사적으로 수도 서울과 가깝고 호남의 곡창지대와
얼마 전 송년모임에서 '건축이라는 직업'에 대한 미래의 전망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건축사인 필자에게 대학의 건축과를 진학할 예정이거나 건축을 전공하는 자녀들을 둔 지인들이 가끔 묻곤 하기에 시작된다. 그들의 질문에는 공통적으로 경기침체로 인한 저성장시대에 대한 불안과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건축 직무'에 대한 불확실성과 걱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들의 질문에 주저 없이 대답한다. "건축 직무(JOB)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주 먼 훗날 인류가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정착할 수 밖에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주
우리는 전문가가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바르고 성실한 행위, 봉사 등에 앞장서는 것을 전문가의 사회적책임이라 말한다.전문가 중 건축사는 일정자격조건을 갖추고 자격시험을 통과해 국가로부터 건축설계와 이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일반인이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전문업무를 할 수 있도록 나름 사회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특권을 부여받은 건축사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강조되고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이다.건축관련 행위는 다른 전문
대학시절 미팅에서 자주 나오던 심리테스트 중 하나엔 본인이 좋아하는 집을 고르는 질문이 있었다. 깎아지르는 절벽위의 크고 멋진 고성(古城), 낙엽속의 산장, 눈 속에 파묻힌 작은 오두막이라는 예문 중에, 나는 눈 속의 작은 오두막을 선택했고, 그 답은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타입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느낌이 좋았고, 그 이후로도 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상상속의 나만의 작은 오두막을 상상하며 마음속의 평온함과 여유를 찾곤 했다.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의 첫머리에 '흙방을 만들며'라는 글이 있다. 규격화된 주거공간으
얼마전 필자는 유성의 한 택지개발지구에 다가구주택 한 채를 설계하고 준공을 냈다. 필자는 건축주에게 감사를 느낀다. 새삼스레 왜 고맙다고 말하는가? 설계자와 건축관련자 모두를 선량한 사람으로 만들어 줬다. 이 건물에는 불법분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건축사들의 고민중 하나가 다가구주택의 분방과 다락과의 싸움이다.다가구주택을 지어 임대해 은행이자 이상의 수입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다가구주택의 수요는 지속되고 있다. 다가구주택은 가구수가 많으면 임대수입이 높아지므로 허가된 가구수보다 많은 분방, 이른바 방 쪼개기와 다락의 주택
차창 밖 세상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다. 푸르고 싱그럽던 자연은 이제 다른 풍경과 세상으로 우리를 감동시킨다. 당겨진 시위처럼 스치는 시간 속에서도 계절의 변화와 다름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깨닫고 느끼게 한다. 그 감동은 변화의 '차이'가 두드러질 때 더욱 커지며 풍요로워 진다.계절뿐만 아니라 사람이나 사물이 서로 다른 속성의 차이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다름을 존중하며 어우러져 공존함으로써 성숙한 문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건축 등의 시각화된 문화는 더욱 그 특징이 두드러지며, 우리의 건축의미 찾기 레시피에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쾌적하고 아름다운 대전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 멋진 건축물들을 보며 그 건축물을 설계하고 감리하며 완성시킨 건축사라는 직업의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 건축사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자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자부심을 갖는 그 이면에는 고충도 있기 마련이다. 이 고충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개선돼야 한다. 건축사라는 긍지를 갖고 창조적 건축물을 완성해 쾌적하고 아름다운 대전을 유지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사의 업무 중 설계, 감리와 함께 '현장조사·검사 및 확인업무'라는 것이 있다. 이 업무를 통해 허가 전에, 사용승인
거리는 건축 안에서 밖으로의 시작이며 개인과 공동체가 만나는 매개이다. 닫힌 공간에서 열린공간의 완충공간이며, 건축과 도시가 만나는 경계이다. 길은 기본적으로 통행을 목적으로 하는 물리적 동선의 역할이 있으나, 건축적으로는 개인의 삶과 더불어 공동체의 이야기와 문화를 담아내고 그 맥락을 이어나가는 심리적 사회적공간의 역할을 한다. 그것이 바로 거리문화이다. 유럽의 도시에서는 광장을 중심으로 한 거리문화가 발달해 왔다면, 동양이나 우리의 도시에서는 전통적으로 길을 중심으로 한 거리문화가 발달해 왔다. 거리를 중심으로 발달한 재래시장,
축제의 계절이 다가왔다.매년 9월에서 10월 중에는 지역특색과 테마를 갖고 많은 축제들이 한창이다. 축제로 그 지역과 특정문화를 알리고 관련 종사자들은 한껏 즐거움을 만끽한다. 대전에서도 지금 각종축제들이 진행되고 있고 비비축제, 차없는 거리, 사이언스 페스티벌 등 문화축제들이 준비중이다. 대전의 대표적 문화축제의 하나인 '대전건축문화제'가 오는 10월에 시청로비와 전시장에서 개최된다. 우리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인 '건축'이란 문화를 기반으로 시민모두가 이해하기 쉽고 체험할 수 있는 각종프로그램들이 준비된 축제다. 매년
일상에서 건축의 본질을 경험하고 읽어내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이며 삶에 있어서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는 지난 '건축 레시피'라는 글을 통해 얘기 한 바 있다. 건축이 기본적으로 갖는 일정한 형태와 외면의 모습은 굳이 미학적기준이나 형태구성이론을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미적 기준과 경험으로 형태를 읽어 내고 자신만의 기호와 느낌으로 읽고 얘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파블로 피카소의 '당신은 보고 있어도 보지 않고 있다. 보지만 말고 생각해라. 생각해서 내면의 것을 보아라'라는 말처럼 건축 내
'계약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돼야 하며, 당사자는 계약의 내용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이행해야 한다' 국가법과 지방계약법의 계약원칙이다. 또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쌍방간의 계약원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체감한다. 특히 대전에 있는 몇몇 공공기관이 입찰을 통한 용역에서 계약원칙을 저버리고 불공정한 관행으로 계약이행을 요구할 때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건축물이 안전하고 용도에 맞는 기능을 갖도록 설계하는 것은 설계를 하는 사람의 기본업무다. 요즘은 이 같은 기
요즘 방송 매체의 대세는 단연코 셰프(chef) 다. 지상파에서 케이블에 이르기까지 스타 셰프들의 활동은 종횡무진하다. 이러한 영향은 유명 셰프가 아니더라도 연예인이나 일반인에 이르기 까지 개인이 찾고 개발한 고유의 레시피(Recipe)를 공유함으로써, 라면에서부터 고급 스테이크까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하고 품격 있는 음식의 문화가 형성되어가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다.의식주(衣食住)중의 한 요소인 건축의 입장에서의 이러한 '밥 문화'는 부럽기만 하다. 거대한 경제성장과정에서 부동산 열풍에 휩쓸려 재테크의 대상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평가하는 옛 선조의 기준으로 신(身)은 풍체와 용모,언(言)은 말솜씨, 서(書)는 글쓰기 그리고 판(判)은 판단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중 왜 신을 처음으로 꼽았을까. 아마도 신체의 건강함, 외형의 수려함을 중요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람이나 사물등에서 느껴지는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을 우리는 품격이라고 한다.건물에 신언서판을 적용하면 어떨까. 건물의 외형은 그 건물의 이미지를 결정지며 아름답고 수려한 건물을 보노라면 기분까지 좋아진다. 이렇게 멋진 건물들이 들어선 거리를 거닐면 기분까지
본격적인 피서철이 다가온다. 힘든 일상을 떠나 자연으로 향하는 우리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기도 때로는 유난스럽기도 하다. 인간의 태생이 자연인이니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자연과 생동하며 도로를 달리다 보면 문득, 시선을 붙잡는 커다란 '심쿵', 그 하나로 우리는 멈춰 선다. 더러는 도로변에, 또는 들판 저 멀리 서있는 모습은 실로 태고의 거인의 모습이다. 느티나무다. 마을 어귀의 커다란 둥구나무나 정자나무로서 국가대표격이다. 그 뒤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연스러운 지형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마침맞게 터를 잡고 있는 크고 작은
건축으로 밥벌이를 하는 입장에서 유럽의 도시들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고, 콜롯세움이 있어서 가 아니라 그 아득한 시기에도 위대한 건축물을 축조할 만큼 빛났던 실용주의가 부럽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문화유산이다. 방향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개별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건축물들 하나하나에 혼이 담겨 있음을 느낀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에 건축가들은 작품 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여건이 조성됐다. 이러한 역사가 켜켜이 쌓여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세계적인 관광대국이 되는 데 주요 자산이 됐다. 역사는 언
모든 걸 헐어버리고 번듯하게 세워진 디지털 신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행복한가 하는 물음을 자주 갖는다. 무엇을 헐고 무엇을 짓는가. 소중한 것들을 헐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집에서는 이맘때면 개구리 우는 소리가 대단했다. 그야말로 합창이었다. 지금은 창밖에 자동차 소리가 개구리 울음을 대신한다. 친구 집과 내 집이 인테리어 마감재만 빼고 똑같은 현실에 사는 아이들에게 각기 다른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시골마을의 정취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오래전 국민주택이 돼버린 아파트 숲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