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건축감리 의뢰를 받은 건축물 있었다. 감리를 할 신축 건축물이 들어설 지역은 신도시로 개발된지 약 30여년 다 되가는 신도시로서 대전의 행정, 경제, 생활의 중심으로 여전히 북적이는 번화가이며 중의 하나이다. 대지에는 기존의 건물이 있었고 기존 건물을 철거 후 신축 건물을 짓는 것이다. 그 지역의 역사가 짧기에 철거할 기존 건물의 수령 역시 이제 겨우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를 채 보내기 전에 수명을 다해 철거하는 것이다. 30년도 안된 건물을 왜 철거하고 다시 짓는 것일까? 그 상황이 낯설어 다소
나들이하기 좋은 요즘, 차를 몰고 시골길을 지날 때면 동네 여기저기에 방치된 빈집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럴 때면 저 집에는 누가 살았을까?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며 가슴 한구석에서 아련함이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집이었을 그 집은 많은 수가 비어 있다. 하지만 툇마루에 부엌에 굴뚝에 마당에 처마 밑에 묻어있을 한 가족의 삶의 흔적은 그곳을 떠나 있는 가족의 뇌리 속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기 마련이다.필자의 고향집도 현재는 빈집으로 남아 있다. 마당에는 풀이 가득 차 들어가지
봄이다. '봄이 온다'라는 주제로 평양에서 열렸던 우리나라 방북 예술단의 공연처럼 따스한 봄바람은 남에서 북으로 향하고, 하룻밤 사이에 느닷없이 만개한 벚꽃은 이미 꽃잎을 날린다. 미쳐 겨울옷을 개켜 넣지 못해 입고 다니던 두터운 겉옷은 따사로운 봄 햇살에 한 꺼풀씩 그 무거움을 벗어 던지고, 지난겨울의 한파가 유난했기에 잊지 않고 찾아준 봄의 따스함이 더욱 설레고 감사하다. 입춘이 한참이나 지난 2월 말일의 어느 유명 문방구에는 신학기와 입학을 맞이해 새로운 노트와 필기구를 준비하기 위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하필
요즘 흔히 사용하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는 죽기 전에 반드시 해봐야 할 일들을 적은 목록을 말한다. 이는 'Kick the Bucket'이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중세시대에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차 버리는 행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필자의 버킷리스트에는 오래전부터 세 가지가 적혀 있다. 오토바이 타보기, 락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 보기, 바닷가에서 멋지게 트럼펫 불어보기 이다. 이 중 두 가지는 아직 해보지 못했다.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이 리스트에 주로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는 나만의 집을 짓고 살아
대한민국은 지금 미투(#ME TOO) 열풍으로 뜨겁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 시작된 이 해시태그 운동은 현직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우리 사회에 불씨를 지폈고, 그 불길은 문화예술계에서 교육계, 종교계, 의료계,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마치 거대한 화산이 폭발해 사방으로 퍼지고 있는 듯하다.이는 비단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며 일시적, 일회적인 문제도 아니다. 오랫동안 권력의 속성 안에서 강자는 약자를 그들의 욕구와 이익을 취하기 위해 수단과 도구로 삼아 일방적인 폭력과 착취를 자행했으며, 관행이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평창올림픽이 끝났다. 메달이 쏟아져 나온 스피드스케이트, 국민적 환호인 '영미'의 컬링 경기, 남·북 단일팀의 하키 경기 등 2018년 2월은 동계 올림픽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그런데 필자는 이 열기 속에도 TV 속 경기장이 눈에 들어온다. 누가 설계했을까? 어떤 콘셉트로 설계했을까? 분명히 유명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했을 텐데 지역 건축사는 참여했을까? 몇 프로 비율로 참여했을까? 직업의식 때문일 것이다.최근 대전의 건설업계에서는 평창의 열기처럼 지역건설산업 활성화라는 주제로 뜨겁다. 지역 건설사들의
올해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됐다. 평균적인 나이로는 50대에 접어든 것이다. 사회 통념상 꿈을 이루고 펼치기 시작해야 할 때다. 그러나 누군가 꿈을 이루었냐고 물어보면 아직도 꿈을 좇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어떤 분야든 성공의 기준은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업적 혹은 명예를 이룬 경우, 부를 축적한 경우, 두 가지를 다 이룬 경우다. 누구나 세 번째를 꿈꾸며 살겠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한 분야에서 업적을 이루면 돈도 자연스레 따라와 주면 좋으련만 그게 등식으로 성립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와 함께 하고 계십니까?" 얼마 전 성당 미사 시간에 들은 신부님의 말이다. 신과 함께 하는 신앙인으로서, 동반자와 함께하는 부부로써, 또는 이웃과 함께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삶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인생의 전부이기도 하다. 월남 패망 이후 1970년대 호주 등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타국으로 이민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도 새 희망을 품고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디딜 때, 공항에서 마중 나온 사람에 의해 새로운 직업이 대부분 결정됐다고 한다. 세탁소를 하는 사람이 마중을 나오면
건축사는 전문직으로 건축설계와 감리를 업으로 하는 기술자를 말한다. 건축사인 필자는 일반인으로부터 종종 이와 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도대체 건축사와 건축가는 어떻게 다른가요?"결론부터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책임을 가지고 법적으로 건물을 설계하고 감리할 수 있는 건축 전문가가 건축사입니다"이다. 그리고 "건축사들의 권익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 건축관련 각종 업무을 진행하며, 건축법규등을 중앙부처나 지자체와 협의하는 일을 하는 단체가 건축사협회입니다"라고 말한다.건축을 하는 사람은 많다. 건축공사의 건설인, 설계사무소의 설계자, 대학
1983년부터 '대전양반 얼씨구'를 주제로 개최하던 한밭문화제가 25년간 명분을 유지하다가 2008년쯤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그러자 대전이 예로부터 물이 귀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물(H2O)축제부터 시작해 갑천문화제, 우암문화제, 동춘당문화제 등이 준비됐으나 워낙 뿌리 깊은 상호 이해관계 때문인지 좀처럼 범시민적인 행사로 이어가질 못하고 있다.조선시대에 회덕 인근의 은진 송(宋)씨, 보문산 자락에 안동 권(權)씨, 석교동 고성 남(南)씨의 세 집안이 주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다가 개화기에 경부, 호남선이 교차하는 교통도시
건축이 우리 지역행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실행하는 선진국 제도가 하나 있다. 전문직 건축가가 공공건축물이나 정비사업 기획·설계 등을 자문하는 '공공건축가' 제도로, 서울에서는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 초기단계부터 건축전문가를 투입해 공공성을 높이고 도시경관과 어울리는 건축문화로 이끌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제도로 이미 프랑스, 일본, 네덜란드,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보편화돼 있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 샤를드골 공항과 테제베(TGV) 역사를 건립하면서 공공건축가
평생 보금자리인 집을 새롭게 마련하고 들어갈 때 우리는 '집들이'를 한다. 이때 우리는 성냥이나, 양초를 사가지고 가는데, 집을 새로 짓거나 구입한다는 자체가 워낙 어려운 과정이기에 위로 차 방문해 앞으로 성냥불같이 사업이 번창하고, 꾸준히 타오르라는 의미도 있고, 예전에 가정용 전기 공급이 원만하지 못할 때 정전이 되면 비상시 사용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래에는 휴지나, 세재 등 생필품으로 바뀌어 깨끗하게 청결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1970년대 필자가 해외건설 붐을 타고 인도네시아 현장에 근무 할 때 일이다. 적도
대전은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1912년 호남선의 분기점이 되면서 시작된 계획도시로 전국 어디와도 연계가 편리하다. 노령산맥 서북 편에 위치해 산세 등 자연 환경이 평온하고 내륙지방이라 기후까지 온화하다. 지금까지 유난히 추웠던 겨울도 없고, 해방 이후 1977년에 대전천이 한번 넘친 기억 만 있을 뿐, 여름에 큰 태풍이나 하천의 범람 같은 자연재해가 피해를 준적이 없다. 이에 여기 거주하는 사람들도 순박해 전국에서 가장 배타성이 없는 도시로 알려졌으며 이러한 강점이 단기간 내에 획기적인 도시발전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
국민소득의 향상과 함께 주 5일 근무제가 자리를 잡았고, 유연근무제의 일환으로 금요일에는 오후 4시에 퇴근해 이제는 소비를 더욱 촉진시킨다고 한다. 우리의 소비성향이 일부 상류층의 고소비만을 노리던 백화점시대에서 다양한 층의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대형 복합쇼핑몰 시대로 바뀌었다. 대전에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유명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 쇼핑몰은 단순히 물건의 사고파는 장소의 개념을 넘어서, 여가를 즐기는 공간으로 진화돼 가고 있다. 길어진 여가 시간에 여행도 하지만, 가까운 도심에서 쇼핑과 다른 재미를 같이 즐
1990년대 초, 꿈에 그리던 첫 유럽여행으로 프랑스의 파리 몽마르뜨 언덕에서 지하철을 타려 내려가 언뜻 발을 멈추었다. 10평 남짓 조그만 바로 지하철 입구에 매료돼 안내판을 보는 척 하면서 한참 살폈다. 20세기 초를 풍미한 프랑스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가 설계한 작품이다. 특히 'METROPOLITAIN'이라고 쓰인 현판의 독특한 글씨와 아르누보 양식의 특징인 나무줄기처럼 뻗어 서로 엉킨 데로 주철제로 만든 지하철 입구의 우아한 모습에 매료됐다. 서양건축사를 배우던 시절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보던 건축물을 실제로 보니까 더욱
간판을 정의하면 기관이나 영업소가 이름이나 판매 상품, 업종을 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게 붙이는 표지물로, 요즘 건물을 다 짓고 나면 우선하는 일이 간판 붙이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건물의 외장이 선전용 간판으로 철갑을 두른듯해 간판과 건물의 관계가 마치 악어와 악어새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준공하자마자 빨리 사진을 찍어 둬야 겨우 알량한 건물의 모습을 간직 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유리창 문마다 써 붙이는 썬팅으로 사진을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그렇다고 간판이 무조건 불필요한 것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축문화의 한 단면이 우리 동네 공중화장실이다. 인근공원이나 시장, 천변에 있는 공중화장실이 이제는 제법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해 아름다운 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를 때, 외국인 방문객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용하기 편리한 공중화장실을 세우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 개통된 당진-영덕 고속도로를 가보면, 도로와 터널을 만드는 토목기술의 발전과 함께 느낄 수 있는 점은 휴게소에 들렸을 때 화장실의 구조나 환기 등 환경여건이 무척 쾌적해 달라진 모습을
'10월 유신'이 있던 1972년, 가요계에서 라이벌 대결로 '남진'과 '나훈아'의 경쟁은 지금까지도 화두가 되고 있다. 그 때 '남진'이 제대하면서, '록앤롤의 왕'으로 불리던 엘비스 플레스리의 복장으로 컴백무대에서 불렀던 '님과 함께'의 첫 구절인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는 일반 대중들의 욕구에 딱 맞는 가사였다.인간의 가장 큰 욕구인 내 집을 갖으려면 우선 대지가 있어야 하는데 '푸른 초원'의 대부분 그린벨트이고, 대지의 필수요건인 3m 이상 도로에 접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생활용수를 처리하기가 힘들고
1900년대 초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는 철도교통 중심지로 시작한 대전이 지금처럼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의 개통, 대덕연구단지와 제2행정수도의 계획이 수립된 이후다.특히 1978년 갑년체전을 개최하면서 시작돼 1989년에 직할시로 승격되고, 1993년 대전엑스포를 치르면서 광역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철도분야에서는 1920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역구내 지하도를 건설했고, 1979년에 대전역 광장 지하도가 개통됐다. 2009년 소제동에 지상 28층의 쌍둥이 건물인 '철도기관 공동사
대전 중구 대흥동 우리들공원은 옛 중구청사와 어린이 놀이터가 있던 우남도서관 앞터다. 2008년 이곳에 공연시설과 임대상가를 만들고, 지하에는 공용주차장을 만들어, 원도심 활성화와 도심 주차난을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업을 시행하면서 불미스런 일로 조금은 궁색한 기억만 떠오른다.이런 우리들공원이 작년 봄에 대수선을 하면서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경사로 지붕을 유리로 바꾸고, 공원 둘레정원에 높이와 폭이 각 1m 정도 되는 반송(盤松)을 10그루 정도를 노변에다 심었다. 우리들공원에 심어진 반송은 그루당 어림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