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의 일이다. 생애 네 번째 차를 계약했었다. 고민 끝에 어떤 차량을 사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내가 사려던 차량 종류만 눈에 보였다. 신기했다. 거리에서, 아파트 주차장에서 같은 종류 차는 계속 눈에 들어왔다.오래전 학교에 주번 교사 제도가 있던 시절이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교내 휴지가 이상하게 주번 교사만 되면 보였다. 물론 주번 교사가 끝나면 많던 휴지는 신기하게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디스크 증세로 병원에 오래 다닌 적이 있다. 허리가 아플 때는 허리 환자만 보였고 치아를 치료할 때는 치과 환자만 보였다. 위장이 좋지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나무'에는 그가 보여주던 특유의 격정 대신 맑고 정제된, 그러나 따뜻한 고요가 화폭을 채운다. 고흐는 병이 깊어져 생의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갓 태어난 조카를 축복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찬란한 생명의 시작을 그려냈다. 연푸른 하늘빛 아래 섬세하게 뻗은 가지, 그 위에 피어난 꽃들은 겨울 끝에 가장 먼저 당도한 따스한 숨결 같다. 이는 살아남은 자만이 피워낼 수 있는 찬가이다. 스스로는 끝내 누리지 못한 평화를 갈망하며,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디딘 생명에게 자신의 마지막
최근 들어 한옥을 짓고 살고자 하는 건축주가 늘고 있다는 소식은 전통건축을 전공한 필자에게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한옥 건립을 상담하다 보면, 건축비 부담과 완공 후 유지관리, 잦은 수리비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중심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한옥이 이제는 특별한 선택이 되어버린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그렇다면 한옥이 다시 보편적인 주거 대안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는 전통건축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고민해온 과제이자, 지금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길게 조정을 받으면서 일반 매매시장보다 경매시장에서 그 변화가 먼저 나타나고 있다. 매매가 지연되거나 금융 부담을 견디지 못한 소유자들이 경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늘면서, 대전 지역 역시 아파트·상가·토지 등 다양한 유형의 경매 물건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시기에는 실수요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자산을 마련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경매는 일반 매매와 전혀 다른 구조로 움직이기 때문에 절차와 평가자료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경매는 일반 매매처럼 매도인과 협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해진 절
정부가 각종 국가기관의 입지 선정에 공모제를 도입한 것은 2000년대 초이다. 수도권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공모를 진행한 것이다. 정책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고, 최적의 입지를 선정하는 게 목적이었다. 지역균형 발전을 이루고 지역산업과 긴밀하게 연계하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는 대개 정부가 알아서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을 배치했다.갈수록 공모가 많아지고 있다. 님비현상이 심한 폐자원 소각·매립·재활용 시설이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장묘시설 등은 인센티브를 줘가며 입지를 공모한다. 각종 연구개발이나 중기부의 예비창업패
오늘날 안전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요소이다. 대전시의 안전 수준을 객관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주요 자료는 매년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하고 있는 지역안전지수이다. 이 지수는 안전관리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을 높이고 취약 분야에 대한 자율적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서 ① 교통사고, ② 화재, ③ 범죄, ④ 생활안전, ⑤ 자살, ⑥ 감염병의 6개 분야를 1-5등급(1등급이 우수)으로 평가하고 있다.최근에 대전시는 일부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및 생활안전 분야는 좀 더
'축산 1번지'로 불리는 충남에서 처음으로 치사율 100%(급성형)에 달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했다고 한다. 충남도 동물위생시험소는 25일 당진시 송산면 농장의 폐사축과 같은 우리에서 키우던 돼지 등 14두에 대한 검사를 마친 뒤 모두 양성 판정을 내렸다. ASF는 한 마리만 걸려도 해당 농가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해야 할 정도로 무서운 제1종 가축 전염병으로 분류된다. 방역 당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추가 확산을 막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충남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충남은 지금까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와 관련, 경찰은 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토대로 수사 결과 설명회를 열어 "작업자들이 무정전·전원장치(UPS) 본체와 연결된 리튬이온 배터리 상당수의 전원을 차단하지 않은 채 배터리 이설 작업을 벌여 불이 났다"고 밝혔다. "UPS 전원 차단 후 연결된 각각의 배터리 랙(1번-8번) 상단 컨트롤 박스(BPU)의 전원을 모두 차단 후 작업해야 하지만 1번 랙 전원만 차단한 상태였다"고 확인했다. 이어 "BPU에 부착된 전선을 분리해 절연 작업을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국정자원 화
많은 지자체가 '생활인구'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인구감소지역법을 보면 생활인구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다. 주민등록한 사람은 물론 통근, 통학, 관광, 휴양, 업무, 정기적 교류 등의 목적으로 월 1회 이상 특정 지역을 방문해 체류하는 사람이나 외국인도 해당한다. 지역의 모든 외국인이 생활인구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 따라 외국인등록을 한 사람, 국내거소신고를 한 사람으로 한정됐다. 기준을 충족 못하면 지역에서 함께 생활함에도 생활인구에서는 배제된다. 배제와 차별이 어디 생활인구뿐일까?
우리의 정원은 오랜 세월 삶의 터전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 왔다. 궁궐의 후원에서부터 서민의 앞마당과 뒤뜰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원(K-정원)은 늘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공간이었다. 담장 안의 감나무, 꽃담 아래의 야생화는 일상 속 정원이자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터전이었다.오늘날 한국정원은 전통의 미학과 현대적 감성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도심 속 생활정원은 일상에서 자연을 누리는 공간이자 문화로 자리 잡았고, 정원은 관광자원과 치유, 지속 가능한 삶의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산림청은 순천만
전국적으로 문화예술 예산이 조정되거나 축소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 재정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필수 사업 위주로 예산이 재편되다 보니, 지역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뒷받침해 온 기초적인 지원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예술지원은 도로, 건물, 사회간접자본처럼 눈에 보이는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예산 변화에 큰 영향을 받기 쉽다. 그러나 예술은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의 일상 문화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인 만큼, 지원의 흐름이 흔들리는 순간 도시의 문화적 기반 역시 약해질 수 있다.대전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동
과학기술 패권 경쟁 시대 국가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인이 존중받고 명예와 긍지를 가지는 사회문화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한국동란 이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역할이 컸다. 미국은 1965년 베트남 참전을 결정한 박정희 대통령을 워싱턴에 초청하였다. 미국이 한국에 공과대학을 지어주려고 하였을 때, 박 대통령은 국가연구소 설립 지원을 요청하였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그렇게 탄생됐다. 현재 출연연은 KIST를 포함하여 32개가 있다.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은 미국과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각종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예술 분야에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예술 창작의 방식과 그 결과물에 혁신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시인, 화가, 음악가, 무용가, 사진작가 등 다양한 예술인들은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본 칼럼에서는 이러한 예술인들이 AI 시대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생존 전략을 살펴보겠다.첫째, AI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AI는 데이터 분석과 패턴 인식을 통해 작품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화가는 AI 프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정부출연연구기관 혁신 논의가 연말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초 10월 말 발표 예정이었던 최종안은 이제 12월 공개를 목표로 한다. 핵심은 연구자 임금이 과제 수주에 좌우되는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이다. 이미 내년도 정부 예산에도 관련 내용이 일부 반영된 만큼, 큰 흐름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 과기계 안팎의 공감대다.그럼에도 과기정통부가 최종안 발표를 서두르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PBS는 지난 30년간 연구현장을 지탱해온 근간이어서 이를 걷어낼 경우 연구 환경이 어떻게 재편될지 누
누군가 겨울날 하염없이 내리는 눈의 무게가 얼마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늘 높은 곳에서 시작되어 손끝에 닿기도 전에 사르르 녹아버리는 눈송이의 무게라니, 말 그대로 미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 작디작은 눈이 한겨울 내내 묵묵히 버텨온 나무의 가지 위에 한 번, 두 번, 셀 수 없이 내려앉을 때, 그 나무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뚝' 하고 부러지고 만다. 작은 것의 끈질긴 누적이 결국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셈이다.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은 바로 이 '눈송
더불어민주당이 24일 당무위원회를 열고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 당헌·당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당 일각의 반대를 고려해 최종 관문인 중앙위원회 일정을 오는 28일에서 다음 달 5일로 연기하는 등 속도 조절을 하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당무위에서는 1인 1표제 도입안과 추진 절차를 두고 격론 끝에 고성까지 오갔다고 한다. 당헌·당규 개정안이 당원 주권 강화를 내걸었지만 충분한 숙의 없이 진행됐음을 방증한다.정청래 대표와 지도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1인 1표제는 우려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의원과 권리당
지난달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립치의학연구원 입지를 공모 방식으로 선정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천안을 단독 지정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정 장관이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대구 타운홀 미팅 자리에서다. 당시 행사 비중에 비추어 볼 때 정 장관 발언으로 치의학연 입지는 공모 방식으로 굳어진 것과 진배없다. 치의학연 천안 설립은 이 대통령 대선 지역 공약에 포함돼 있다. 이를 뒤집고 공모 전환을 공식화했다. 지역에서 경계하며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닥친 것이다.치의학연 설립을 주도해 온 주체는 충남도와 천안시, 그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비밀리에 종전평화안을 만들어 협상에 나선 것이다. 지난 주 미국의 육군장관이 우크라이나를 방문, 협상안을 전달했다고 한다.협상안은 놀랍다. ▲'우'의 동부 돈바스지역 전체 러시아에 양도 ▲'우'의 정규군 절반 축소 및 러시아 본토 타격용 무기 포기 ▲'우' 영토 내 외국군 주둔 금지 및 나토(NATO) 가입 중단 ▲러시아어의 공식언어 인정과 러시아 정교회 공식 지위 부여 등이다. 러시아가 요구해온 주장을 고스란히 담은, 우크라이나의 항복문서에 가깝다. 트럼프는
세종보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팽팽하다. 환경단체와 시민사회는 수문 개방을 통해 금강의 자연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주민협의체와 일부 정치권은 재가동을 통해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확보하고, 이미 투입된 막대한 공공재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환경'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상호 불신과 정치적 입장 차이 속에서 갈등이 장기화하는 양상이다.세종보 문제는 단순히 수문을 열고, 닫는 이분법적 접근으로 해결될 수 없다.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것인가, 그리고 현세대와 미래
인공지능(AI)은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스마트폰의 음성 인식부터 의료 진단, 공장 자동화에 이르기까지 AI의 진화는 일상과 산업을 구분하지 않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개인의 삶과 사회 문명의 작동 방식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도 AI를 더 빠르게, 더 싸게,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AI의 본질적 혁신성과 창조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따라서 우리는 AI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