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혜 시인
하인혜 시인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나무'에는 그가 보여주던 특유의 격정 대신 맑고 정제된, 그러나 따뜻한 고요가 화폭을 채운다. 고흐는 병이 깊어져 생의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갓 태어난 조카를 축복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찬란한 생명의 시작을 그려냈다. 연푸른 하늘빛 아래 섬세하게 뻗은 가지, 그 위에 피어난 꽃들은 겨울 끝에 가장 먼저 당도한 따스한 숨결 같다. 이는 살아남은 자만이 피워낼 수 있는 찬가이다. 스스로는 끝내 누리지 못한 평화를 갈망하며,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디딘 생명에게 자신의 마지막 기도를 남겼는지도 모른다.

고흐가 캔버스 위에 색채로 생의 가능성을 노래했다면, 알베르 카뮈는 문장 속에 아몬드나무를 심어 존재의 인내를 역설한다. 에세이'아몬드나무'에서 카뮈는 알제의 겨울 풍경을 응시한다. 폐허처럼 황량한 계절의 한복판, 눈보라 속에 만개한 아몬드나무를 발견한다. 눈송이보다 여린 꽃잎이 거친 비바람을 견디며 마침내 단단한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에서 그는 인간 존재의 심연을 읽어낸다. 카뮈는 절망과 비극을 예리하게 가른다. 절망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라앉는 침묵이라면, 비극은 불행 속에서도 삶을 놓지 않으려는 결심이며 의식적인 저항이다. 강함이란 누군가를 이기는 힘이 아니라, 내 안의 겨울을 끝까지 직시하는 인내에서 나온다.

얼어붙은 대지의 내부에서 꽃눈이 자라고 있음을 고흐와 카뮈는 각자의 방식으로 믿었다. 삶의 여정에는 마음이 굳고 메말라가는 계절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쩌면 우리의 많은 날들은 이러한 풍경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가두어 절망 속으로 가라앉을 것인가, 꽃눈을 품은 채 비극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질 것인가. 겨울을 건너는 힘은 결국 그 물음 앞에 선 자신의 태도에서 결정된다. 내 안의 아몬드나무가 깨어날 때까지 긴 기다림을 견디며 지켜주는 일. 서릿발 같은 공기 속에서도 끝내 꽃을 밀어 올리는 나무처럼 내 안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온전한 방식이다. 하인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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