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각종 국가기관의 입지 선정에 공모제를 도입한 것은 2000년대 초이다. 수도권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공모를 진행한 것이다. 정책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고, 최적의 입지를 선정하는 게 목적이었다. 지역균형 발전을 이루고 지역산업과 긴밀하게 연계하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는 대개 정부가 알아서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을 배치했다.
갈수록 공모가 많아지고 있다. 님비현상이 심한 폐자원 소각·매립·재활용 시설이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장묘시설 등은 인센티브를 줘가며 입지를 공모한다. 각종 연구개발이나 중기부의 예비창업패키지, 국토부 도시재생 뉴딜사업, 산자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등도 공모로 진행한다. 공정성과 투명성 효율성을 높이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모가 너무 잦다는 것이다.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인구 유입, 세수확보에 도움을 주는 시설이나 사업은 서로 끌어가려고 다툰다. 이런 흐름에 편승, 웬만한 사업을 공모로 진행하는 게 많아졌다. 한국마사회와 다목적방사광가속기, 한국문학관, 로봇랜드, 철도박물관 등은 치열한 유치경쟁이 벌어졌다.
공모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공모에 참여하기 위해 막대한 행정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고, 경쟁이 과열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지자체가 과도하게 땅과 재정을 부담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멀쩡하게 진행되던 사업을 공모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뒤늦게 경쟁자가 생기거나, 누군가 권도를 부려 공모로 바뀌는 것이다. 기관 유치에 실패해 정치인이 곤란을 겪은 사례도 많다.
국립치의학연구원 입지와 관련 충청권이 격앙돼 있다. 2022년 대선 때 충남 천안 설립(안)이 등장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천안 설립을 공약했다. 지역사회가 만반의 준비를 해왔는데 뒤늦게 공모설이 등장한 것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모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천안을 배제하려는 뜻으로 읽혀진다.
정부정책은 일관성과 신뢰성이 생명이다. 대선 때 충분하게 검토하여 공약한 것을 이제 와서 무슨 까닭으로 바꾼다는 말인가. 불필요한 오해와 싸움만 부를 게 뻔하다. 중앙부처에 걸맞은 사업추진 의지와 기획조정 능력, 책임감을 발휘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