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겨울날 하염없이 내리는 눈의 무게가 얼마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늘 높은 곳에서 시작되어 손끝에 닿기도 전에 사르르 녹아버리는 눈송이의 무게라니, 말 그대로 미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 작디작은 눈이 한겨울 내내 묵묵히 버텨온 나무의 가지 위에 한 번, 두 번, 셀 수 없이 내려앉을 때, 그 나무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뚝' 하고 부러지고 만다. 작은 것의 끈질긴 누적이 결국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셈이다.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은 바로 이 '눈송
2016년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발간한 '안산 대부도 2호선 수중발굴조사 보고서'에는 갯벌에 묻혀있던 고려시대 배에서 발견된 곶감에 대한 설명이 있다. 발견 당시 사진을 보면 과육과 씨가 일정하게 놓여 있는 모습이 요즘의 곶감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상태였다. 800년이 넘는 시간을 갯벌 속에서 보낸 곶감에서 풍기는 달큰한 냄새를 발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맡을 수 있었을까? 안산 대부도 2호선에서 발견된 곶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과거 사람들도 곶감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매우 귀한 자료이다. 하지만 대부분 발굴조사 현장에서 이
예술은 삶의 한가운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에서 예술과 일상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대전의 화랑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현재 대전화랑협회의 창립이 추진 중이지만, 실질적으로 활발히 운영되는 갤러리는 손에 꼽힐 정도다. 오랜 세월 명맥을 이어오던 갤러리들이 관장의 고령화, 경기 침체, 문화 기반의 취약함 등으로 문을 닫거나 휴면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갤러리 운영은 단순히 전시 공간을 유지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 발굴, 기획, 홍보, 마케팅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예술 경영이 필요하다. 경제적 여건과 예술적 안목,
12일, 대전바로크축제가 시작된다. 이번 축제에는 필자도 연주팀의 지휘를 맡아 참여하게 된다. 매일 연습을 하면서 느끼는 고민 중 하나는 바로크 음악의 스타일 해석에 관한 문제다. 당대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재현해야 할까, 아니면 현대적인 해석을 더해 새로운 색깔을 입혀야 할까.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음악의 전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탐구는 매우 흥미롭고도 중요한 주제다.바로크 음악(1600-1750)은 그 자체로 독특한 특징과 양식을 지닌 시대다. 이 시기에는 화려한 장식음과 복잡한 대위법, 그리고 강렬한 정서 표현이
세상은 눈부시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 클릭 몇 번이면 방대한 자료와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고, 청각 예술인 음악조차 시각화된 작곡 앱을 통해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시대다.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기존의 교수법은 더 이상 학생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가기 어렵다. 과거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사고와 연구를 담은 리포트를 통해 과제를 평가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방식으로는 변별력을 갖기 힘들다. 생생한 라이브 음악보다 유튜브 음원에 익숙한 세대에게 '호기심'을 자극할 학습 요소를 찾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호기심'은 새롭고 신기한 것을
"고대 사람들은 어떻게 쇠를 만들었을까?"충북 충주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특별한 노력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2007년 설립된 이후, 중원문화권 조사 연구와 과학적 분석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바로 고대 제철기술 복원 실험이 있다.충주는 오랜 세월 철을 만들어 온 도시다. 백제 시대부터 근세까지 철 생산이 활발했던 이 지역에는 지금까지 96곳에 달하는 제철 유적이 확인됐다. 그중 충주 칠금동 제철유적은 제련로, 철광석 가공시설, 폐기장 등이 밀집된 대규모 유적으로, 충청북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작은 체구의 대전 원로 화가 유근영. 그러나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누구나 감탄한다."이 작은 몸에서 이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화면을 압도하는 강렬한 붓질과 색의 충돌, 그리고 캔버스 밖으로 뻗쳐 나오는 생명력은 보는 이를 단숨에 사로잡는다. 부드럽고 온유한 자연의 표정 뒤에는, 거센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생의 의지가 숨 쉬고 있다.그의 화폭은 언제나 살아 있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바람의 결 하나까지도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를 묻는 사유의 결과물이다. 한 선의 시작은 하루의 스케치가 아
[예술돋보기] 고대 그리스의 노래로 듣는 '살아가기' 먼 옛날,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비통함에 잠긴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억누르지 못한 채, 아내의 묘비에 아름다운 노래 한 곡을 새겨 넣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수천 년이 지나, 그 노래는 발굴이라는 우연을 통해 어둠에서 나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바로 고대 그리스의 노래 '세이킬로스의 노래'다. 이 짧지만 깊은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음악적 아름다움과 사랑하는 이를 그리는 서글픔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마치
클래식 음악은 그 저력과 감동 덕분에 국가행사와 스포츠 행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행사들에서 클래식은 단순한 배경 음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특별한 순간을 더욱 웅장하게 만들고, 감정의 깊이를 더하는 서사를 만들어간다.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은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모여 결속의 기쁨을 나누는 환희의 장이다. 그 속에서 자주 사용되는 음악 중 하나는 영국의 20세기 작곡가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이다. 그 중에서도 2번곡인 '화성, 전쟁의 신'은, 마치 전장의 서사시처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분할된 박자와
"아저씨 거기 들어가시면 안돼요."경주 불국사의 석가탑 정기조사를 위해서 보호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가 남자 아이가 외친 말이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명칭이 붙은 작업복을 입고, 조사 안내판도 세워뒀지만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시민의식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르지 않음에 흐뭇하면서도 마냥 기쁠 수는 없었다. 정기조사를 가는 곳 마다 한 번씩은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국가유산청 소속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건축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기조사팀을 파견한다. 정기조사팀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건축문화유산 855건을 3-5년 간격으로 찾아가서 현장조
서울이 다시 한 번 전 세계 미술계의 시선을 모은다. 오는 9월 3일,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코엑스에서 나란히 막을 올린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공동 개최다. 키아프는 7일까지, 프리즈는 6일까지 이어지며, 이른바 '키아프리즈(Kiaf + Frieze)'라는 이름으로 서울은 아시아 최대 미술 축제의 무대가 된다.팬데믹 직후 폭발적인 호황을 누리던 미술시장은 최근 급격히 식었다. 고금리와 경기 불안, 글로벌 경기 침체가
8월, 광복절의 달이 다가오니 조국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피와 땀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떠오른다. 그날의 함성은 지금도 바람결에 실려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듯하다. 이름도 빛도 없이 들꽃처럼 스러져, 끝내 해방의 꽃이 피는 것을 보지도 못한 채 산산이 부서진 안타까운 죽음은 과연 몇이었을까, 그 수를 헤아릴 길조차 없다.광복 80주년을 맞아 그동안 너무도 익숙했던 태극기와 애국가,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이 민주주의의 찬란한 빛과 함께 다시금 마음에 뜨겁게 와 닿는다.2002년 월드컵 경기장을 뒤덮었던 붉은 악마의 거대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예술가들이 보여준 저항의 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특히 클래식 음악가들은 정치적 억압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그들의 음악을 통해 인류애와 저항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오늘은 역사 속에서 클래식 음악가들이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인물들에 대해 고찰해 본다.일제강점기의 한국, 그 암울한 시대 속에서 이상범은 음악을 통한 민족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에 그치지 않고, 한국 민속 음악의 뿌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하며 민족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기여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가 화두다. 기후는 일정 지역에서 보통 30년 이상 장기적으로 관측된 기온, 바람, 습도, 강수량 등의 평균적, 종합적인 날씨 상태를 말한다. 기후변화는 자연적 또는 인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장기적인 변화다. 자연적 요인은 화산 활동, 태양 활동, 지구 공전궤도 등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에 해당된다. 인위적 요인은 주로 인간의 생산과 소비 활동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증가, 산림의 파괴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행위는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 해수면 상승, 강수 패턴의 변화 등을 야기한다. 또 기후변화로
얼마 전, 대전 화랑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뜻 깊은 자리가 있었다. 이갑재 이응노미술관 관장의 '초청 간담회'는 오랜 시간 제각각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해 온 대전의 갤러리스트들에게 큰 위로와 동지애를 안겨준 만남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미술 생태계를 지켜온 이들에게 이번 간담회는 화랑계의 변화와 공동의 과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이날 간담회에서는 이응노미술관의 주요 현황과 운영 사업, 고암 이응노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전시 및 학술 연구 기능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작품의 수집과 보존, 연구의 체계는 물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봄이 스치듯 지나가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여러 환경의 변화 속에 올해도 또 다시 맞이하는 여름은 또 다른 맛이 있다.길가의 나무숲에 매달린 우렁찬 매미의 울음소리가 긴 인고의 끝에 찾아온 생명력을 드러내고, 여린 가지마다 애달프게 매달려있던 나뭇잎도 어느새 건강한 초록빛으로 우리를 맞는다. 논밭 위로 날아오르는 잠자리의 날개짓이 사라져 가는 자연의 숨결인양 한편으로 애잔하기도 하다.가끔 뉴스에서 기름에 잔뜩 목욕을 한 왜가리의 힘겨운 사투와 거대 고래의 플라스틱이 가득찬 위장.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예술가들은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음악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당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심적 교감, 대문호 괴테와 이름 자체가 클래식 음악인 악성 베토벤의 만남 그리고 최고의 연주자 리스트와 최고의 작곡가 브람스의 만남 속에서 거장들은 각기 다른 예술적 시선과 방식으로 클래식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바흐와 헨델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두 대가로, 같은 시대에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적 경향은 크게 달랐다.이들은 생전 직접 만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서로의 음
여름 발굴캠프는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 2021년부터 시작한 고고학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 현행 대학 교육과정에서 발굴조사 참여 기회가 부족한 점을 고려한 전국 대학의 고고학 관련학과 3·4학년 재학생 대상 현장실습 교육과정으로 이뤄진다.올해 교육은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9일까지 약 3주간 진행된다.첫째 주에는 공통 교육과정으로 고고유적 조사 및 연구 방법에 대한 다양한 이론 교육이 제공되며, 둘째 주와 셋째 주에는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전국 주요 유적 발굴현장에서 실습 교육이 이뤄진다.지역별 주요 유적 발굴조사 현장에 참가자들이
나는 무엇을 그려야 할까.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속이 텅 빈 채 한숨만이 알레르기성 재채기처럼 터져 나올 때, 윤종석 작가가 선택한 것은 무작정 걷고 또 걷는 일이었다.296일간의 유럽 횡단 여행.화가라서가 아니라, 직업인이라면 누구라도 불안했을 긴 시간의 공백.미래에 대한 두려움, 아무 것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그는 눈 딱 감고 휘적휘적 걸으며 결국 이겨냈고, 쟁취했다.그렇게 탄생한 책이 있다.'여행의 온도-윤종석' 부부화가의 유라시아 횡단 아트에세이다.윤종석 작가는 한남대학교 미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1
거울은 사람의 얼굴이나 외모를 비추어 단정히 하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이러한 거울을 뜻하는 한자 '경(鏡)'은 '거울', '비추다'는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울로 삼다'라는 뜻도 가진다. 특히 옛 성인들의 말씀과 격언(格言)을 새긴 조선시대 청동 거울들을 통해 당시, 거울이 가졌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볼 수 있다.'정의관(整衣冠), 존첨시(尊瞻視)'가 적힌 거울은 공자가 쓴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는 항상 의관을 바르게 하고 남을 보는 태도를 존엄하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러한 내용은 거울 뿐 아니라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