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정체성… 충남무형문화재 등극
국내산 100% 찹쌀·누룩·백미 활용
갤러리·축제…판로 확대·홍보 지원

서천 한산소곡주 양조장

서천 한산소곡주 우희열 명인이 아들 나장연 대표에게 제조기술을 전수 하고 있다 서천군 제공
서천 한산소곡주 우희열 명인이 아들 나장연 대표에게 제조기술을 전수 하고 있다 서천군 제공

서천 한산소곡주는 백제 시대부터 빚어온 술로,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통주로 전해진다. 일본 고사기에도 백제 술이 전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칭처럼 그 깊은 맛으로 옛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다 취해 일어나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술을 빚던 며느리가 술이 잘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젓가락으로 찍어 먹었는데, 그 맛이 좋아서 계속 먹다가 취해서 일어나지 못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는 유래도 있다.

대한민국식품명인 19호로 지정된 우희열 명인이 서천 한산 소곡주를 빚고 있다. 서천군 제공
대한민국식품명인 19호로 지정된 우희열 명인이 서천 한산 소곡주를 빚고 있다. 서천군 제공

소곡주는 조선 초기 조리서 산가요록(1460년대)에 처음 등장하며, 이후 역주방문 등 여러 고조리서에 기록돼 오랜 전통성을 입증한다. 일반 전통주보다 적은 양의 누룩으로 빚는 것이 특징이며, 이 때문에 '소곡주(少麴酒)'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 지역 내 70여 개의 양조장이 전통을 잇고 있으며, 서천군은 갤러리와 축제 등을 통해 홍보와 판로를 지원하고 있다. 누룩을 일반 전통주보다 3배 가까이 많이 넣어 달콤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내며, 서천군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백제 문화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술로 자리 잡았다. 찹쌀, 누룩, 백미, 야국, 생강, 메주콩, 홍고추 등 소곡주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모든 재료는 순수 국내산 100% 재료만이 사용된다.

서천 한산 소곡주 무형문화제 복합 전수관. 서천군 제공

◇서천 한산소곡주의 탄생=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술은 다양했다. 가정별로 김치 만드는 방법이 다른 것처럼 집집마다 차이나는 양조법이 전해지는 등 가문에서 빚는 술인 가양주(家釀酒)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1900년대 일제강점기는 전통주 쇠퇴의 시작이었다. 1916년 발효된 주세령은 가양주 양조를 면허제로 변경해 사실상 개인 차원 양조가 금지됐다. 1930년대 일본이 중국, 미국 등 국가와 전쟁으로 곡식이 부족해졌고, 광복 이후에는 한국전쟁으로 전통주 기반 전체가 파괴됐다. 1990년대 들어 전통주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약재 첨가 여부가 아닌 누룩의 비율로 청주·약주를 구분하는 일제의 주세법이 이어지고 있는 등 전통주에 대한 관심은 많이 부족했다.

다행스럽게도 전통주를 이어가려는 노력은 계속돼 가양주가 서천군 한산면 지역의 특산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1500년 전통의 서천 한산소곡주는 충남 무형문화재 3호, 대한민국식품명인 제19호 우희열 명인과 그의 아들이자 전수자인 나장연 대표가 초창기 한산 소곡주 제조과정과 역사성 등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서천 한산소곡주 우희열 명인이 누룩을 돌방아에서 찧고 있다. 서천군 제공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온 한산소곡주= 지금처럼 쌀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술을 빚는 데 어려움이 더욱 많았다. 과거에는 쌀이 귀했기 때문에 곡물로 술을 만들 수가 없었고, 나라에서도 면허를 내주지 않았다. 가을 추수 후에 한·두말의 쌀만 가지고 조금씩 이어가는 것이 한계였고 밀주식으로 술을 빚어 동네 잔칫상에 올리는 정도였지만, 세무서에 발각되면 조세범으로 처벌받을 위험도 있어서 소곡주의 명맥만 사실상 유지했다. 주류 판매도 한산면으로 제한됐기 때문에 당시 소곡주는 아는 사람만 찾아와서 구매하는 술이라고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판매지역이 제한되다 보니 술이 음지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에서 지역 농산물을 가공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특산주류 정책을 시행했고, 그때부터 소곡주의 양지화가 시작됐다.

당시 정부의 농민 대상 지원금으로 서천 한산면에는 15평 정도의 소규모 양조시설을 갖춘 농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역의 농가들은 양조 기술교육을 전국에서 가장 엄격하게 들었다. 건양대와 양조 전문가를 통해 일주일에 5-6시간씩 교육을 수년동안 받아야 했다. 지역농가를 위한 양조법과 소곡주 개선을 위해 연구가 계속 이뤄졌고, 7-8년이 지나자 한산면 지역의 양조면허도 50개까지 늘어났다. 최근 들어 소곡주 공장들이 늘면서 한산 소곡주 관련 축제도 개최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각 양조장별 소곡주 품질 관리를 위한 소곡주 품평회도 추진됐다.

서천 한산소곡주 우희열 명인이 아들과 며느리에게 제조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서천군 제공
서천 한산 소곡주 갤러리 내부 모습 서천군 제공
숙성이 끝난 서천한산 소곡주를 뜨기전단계의 모습 서천군 제공

◇서천 한산소곡주의 특징= 서천 한산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술의 도수는 18도라 약간 높은 편인데, 맛은 오히려 달짝지근해 그런 별명이 붙었다. 찹쌀과 누룩이 주재료인데, 찹쌀의 경우 도정을 완전히 하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에 양조 과정에서 쌀에 있는 전분과 단백질, 지방이 모두 발효되는 특징이 있다. 누룩은 밀로 만들어 자연발효시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효소, 효모가 누룩에 공존하는데, 이 누룩이 전분을 만나 쌀을 당화를 시키는 것처럼 밥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런 과정으로 소곡주 특유의 맛이 만들어진다.

서천 한산소곡주 나장연 대표가 숙성이 끝난 소곡주를 뜨고 있는 모습. 서천군 제공

한산소곡주 양조장은 사용되는 물의 양도 최소화하고 있다. 보통 쌀 100kg으로 술을 만들때 일반 주류는 250% 비율로 물을 넣는 방식과 달리 80리터의 물을 가수하고, 누룩은 30kg 정도 넣어 진하고 달달한 맛을 최대화하고 있다. 봄에 술을 빚고 소주고리로 소주를 내려 여름에 소곡주 대용으로 음용했다는 옛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한산소곡주를 증류한 소주도 직접 생산하고 있다.

1500년 역사의 한산 소곡주. 서천군 제공

 

"전통주 차별성 확보 전략 필요"
나장연 서천 한산소곡주 대표
나장연 서천 한산소곡주 대표

외국 술 유통 확대·경영 어려움

관계기관 제도 개선·연구 시급

"소곡주의 1500년 역사를 이어간다는 자부심도 컸지만, 전수 과정이나 경영상 어려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나장연 서천 한산소곡주 대표는 충남도 무형문화재 3호, 대한민국식품명인 19호 우희열 명인의 아들이자 전수자다. 그는 초창기 한산 소곡주 제조과정과 역사성을 지키며 가업을 잇고 있다.

나 대표는 "집안 대대로 소곡주를 계승해왔지만, 양조장이 가문의 사업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1990년대"라며 "할머니인 김영신 명인이 1979년 충남도 무형문화재 3호로 지정된 뒤 양조면허가 1990년에야 발급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은 그때부터 가능했다"고 말했다.

나 대표의 집안도 소곡주 양조법을 이어오던 몇 안 되는 가문이었지만, 가을에 조금씩 빚어 잔칫상에 올리는 정도였고, 밀주로 간주돼 적발될 수 있다는 위험 속에 명맥만 유지할 수 있었다.

나 대표는 "양조장을 시작할 당시 30평 공간에 항아리 12개가 전부였고, 판매도 한산면으로 제한돼 아는 사람만 찾는 술이었다"며 "1990년 당시에는 쌀이 귀해 술을 빚기 어려웠고, 나라에서도 면허를 내주지 않아 어려움도 매우 컸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는 소곡주를 기반한 소주까지 개발하는 등 많은 발전을 이뤘다. 둘째 아들의 제안으로 오크통 숙성을 시작했고, 8년간 숙성한 뒤 전문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소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외국 술 유통 확대 등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전통주인 한산소곡주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차별성 확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천 한산 소곡주 나장연 대표가 소곡주 제조 공정을 하고 있다. 서천군 제공
서천 한산 소곡주 나장연 대표가 소곡주 제조 공정을 하고 있다. 서천군 제공

나 대표는 "전통주 인터넷 판매가 몇 년 전부터 시행되면서 유통 통로를 넓혀가고는 있지만, 경영상 어려움이 적지 않다"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면 전통주 매대보다 FTA를 통해 싸게 수입되는 외국 술의 매대 규모가 훨씬 큰 데, (외국 술의)인터넷 판매가 시행되면 더욱 경쟁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조장마다 군청과 전문가가 만든 레시피로 품질은 유지되지만, 차별성은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라며 "한산소곡주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지키면서 관계기관의 제도 개선과 연구도 꾸준히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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