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김명현.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제공

"위치를 알려 주기 위해 사진을 찍으며 '우리 와이프한테 잘해야지'가 마지막 목소리였어요"

2024년 11월 8일 밤, 충남 서산시의 한 주차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지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날 밤 9시 40분, 서산시청 제2청사 주차장. 평범한 금요일 저녁, 회식을 마친 40대 사업가 A 씨는 자신의 제네시스 G80 차량 안에서 대리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낯선 남자가 다가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돈 내놔라"…그리고 10번의 칼질

피의자 김명현(43) 씨는 손에 쥔 흉기를 A씨의 옆구리에 들이댔다. 저항하는 A 씨를 향해 그는 10차례 넘게 칼을 휘둘렀다.

A 씨는 결국 현장에서 숨졌고, 김 씨는 시신을 차에 태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사건 발생부터 시신 유기, 차량 방화, 도주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2분이었다.

그는 인적이 드문 도로변에서 피해자의 지갑을 뒤져 현금 12만 원을 챙기고, 휴대전화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버렸다. 시신은 인근 수로에 유기됐다.

그 후 불과 30분 뒤, 그는 차량에 불을 질러 증거를 없애고는 태연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불에 탄 A 씨의 렌터카. 충남 서산소방서 제공

◇"술에 취해 차에서 잠든 줄 알았다"

사건 당일 밤 10시 20분, 한 아파트 주민이 "차가 불타고 있다"고 서산소방서에 신고했다.

도착했을 때 차량은 이미 전소된 상태였다.

피해자 가족은 그때까지도 "남편이 술에 취해 차에서 잠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 오전까지 연락이 닿지 않자, 오후 2시 35분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CCTV 분석 결과, 경찰은 A 씨의 차량을 몰고 이동한 남성의 얼굴을 확인했고, 사건 발생 26시간 만인 11월 10일 오후 4시, 전처의 집에서 김 씨를 체포했다.

◇"로또를 샀습니다. 혹시 애들이 당첨되면…"

김 씨는 조사 결과 그 돈으로 가장 먼저 6만 3000원어치의 로또를 샀다. 그리고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이혼한 전처의 집으로 가 범행 당시 입었던 옷을 세탁했다.

그는 휴대전화로 '강도살인 형량'을 검색한 뒤,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근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죄를 지었지만, 내가 잡혀가도 애들이 로또에 당첨되면 편히 살지 않을까 싶어서 샀다"고 진술해 뭇매를 맞았다.

그는 도박 빚과 양육비 부담에 시달리던 평범한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별다른 전과도 없었다.

하지만 도박으로 인한 금전 압박은 결국 그를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게 했다.
 

김 씨가 공터에서 차량에 불지르고 내려오는 모습. JTBC '사건반장' 캡쳐

◇법의 심판…그리고 남은 분노

2025년 2월,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김명현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대담하며, 피해자의 생명을 앗아간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밝혔다.

피해자 유족들은 "사형을 내려야 한다"며 오열했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항소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됐다.

2025년 6월 17일, 징역 30년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13년 일한 동료의 돈도 빼앗아"

뒤늦게 밝혀진 또 다른 범행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김 씨는 살인 사건 당일, 직장 동료의 휴대전화로 은행 앱에 접속해 1120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송금했다.

13년을 함께 일한 동료의 돈이었다. 재판부는 "도박자금을 위해 신뢰를 배신했다"며 징역 6개월을 추가 선고했다.

김 씨의 범행은 단순히 생활고에서 비롯된 우발적 범죄가 아니었다.

경제적 절망과 도박 중독, 책임 회피, 그리고 비뚤어진 가족관이 복합적으로 얽힌 자기파괴적 범죄였다.

그는 12만 원으로 로또를 사며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했다고 말했지만, 그 선택은 결국 두 가정을 동시에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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