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현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성지현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최근 정부의 신설 통합 부서인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표한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2018년 대비 50-60% 감축이라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보면, 감축의 '규모'보다 그 '방법'에 구조적 결함이 드러난다. 감축을 실현할 구체적인 에너지믹스 설계가 빠져있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전원 조합이 제시되지 않았다.

탄소 감축은 하나의 기술만으로 이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재생에너지, 원자력, 수소, 저장기술 등 다양한 방법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구조가 된다. 그러나 이번 NDC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화 중심의 접근에 치우쳐 있다. 재생에너지는 확대되어야 하지만, 바람과 햇빛이 일정하지 않은 이상 간헐성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 변동성 전원에는 전력망 보조나 대체 전원이 필수적이며, 그 역할을 지금까지 담당해온 것이 바로 원자력이다. "재생에너지를 더 늘리면 된다"는 것은 단순한 해법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기술경제적 현실과 거리가 있다.

원자력은 이미 국내 전력의 약 3분의 1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24시간 연속 운전이 가능하며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운전 경험과 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고, 안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인 차세대 원자로 개발도 진행 중이다. 특히,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SMART 원자로 개발 경험을 토대로 설계 중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은 전력망 확충 없이도 분산형으로 설치가 가능하며, 이미 검증된 원자력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국가 감축계획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 과연 재생 확대를 위한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송전망 확충과 출력 불균형을 보정하기 위한 대규모 저장설비 구축이 i-SMR 실증보다 더 빠르고 경제적인가? 이러한 현실적인 산업 비교 없이 원자력을 감축정책에서 제외한 것은, 올바른 기술적 판단이 아니라, 정책 설계의 불균형으로 읽힌다.

또한, 탄소중립을 온전히 실현하려면 깨끗한 전력뿐 아니라 깨끗한 열원까지 포함해야 한다. 산업 공정열, 지역난방, 해수담수화, 금속 주조, 수소 생산 등 지금까지 화석연료가 열원으로 쓰여온 영역을 단순히 전기만으로 대체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고온 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고온가스로와 같은 차세대 SMR이다. 해상운송은 전 세계 탄소배출의 약 3%를 차지하며, 여러 나라에서 SMR을 선박 추진이나 해양 플랫폼의 동력원으로 활용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원자력은 이처럼 전기·열·수송을 모두 포괄하는 통합형 청정에너지 솔루션이며, 이러한 영역은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충족하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다목적 SMR의 실증과 시장화를 목표로 한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데이터센터, 선박, 철강, 오프그리드 지역 등 다양한 활용처에서 2030년 전후로 SMR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한 발 물러서는 정책 기조는 한국의 SMR 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탄소중립의 성공은 목표를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구조, 즉 균형 잡힌 에너지믹스에 달려 있다. 에너지믹스는 기술 간 경쟁이 아닌 조합이 핵심이며, 에너지 안보의 중요한 전략이다. 재생에너지는 빠르게 성장해야 하지만, 변동성을 보완할 기저전원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한쪽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제로섬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안보에 취약하다. 진정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감축 수단의 포트폴리오를 넓혀야 한다. 원자력을 인위적으로 배제하는 대신, 과학적 근거와 현실성에 기반한 균형 잡힌 종합 에너지 전략을 마련할 때 비로소 한국의 탄소중립이 현실이 될 것이다. 성지현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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