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기념, 충청의 독립운동가와 그 발자취
⑮대한광복회 충청지부 사건
도고면장 처단사건 발단… 일제 대대적 수사
전국 부자들에 통고문 보낸 뒤 군자금 마련해
지역인사들 주도 1910년대 대표적 의열투쟁
1917년 말~1918년 초 일제 경찰은 비밀문서를 입수하고 전국에 엄중한 수사를 벌이도록 지시한다. 일제가 확보한 것은 광복회가 전국의 부자들에게 비밀리에 보낸 통고문이었다.
광복회는 이 문서에 "조국을 광복하고, 원수를 물리치고, 동포를 구하는 게 우리의 천직"이라며 본회(광복회)에서 할당한 돈을 반드시 준비하고, 이 명령에 대해 기밀을 준수하라고 명시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전국에 발송한 이 문서가 친일 부호에 의해 경상북도 경무부에 넘겨졌다. 전국적으로 광복회를 밝혀내기 위한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일경이 작성한 '국권회복을 표방하는 볼온단체원 발견 처분의 건'에는 검거 과정이 소상하게 나와 있다. 1918년 1월 24일 박용하 아산 도고면장 살해사건을 수사하던 충남 경찰이 실마리를 포착, 사건 발생 3일만에 천안 성환에서 장두환을 체포했다. 경찰은 천안의 부자들이 받은 통고문에 모두 서울의 우편국 소인이 찍혀있고, 수신자의 이름과 주소가 정확하며, 재산에 꼭 비례하여 모금액을 할당한 것에 주목했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관여했을 것이라며 내사하던 중 서울과 인천을 수차례 왕복한 장두환을 붙잡은 것이다.
일경은 수사를 확대하여 37명을 체포했으며, 30여명을 추적했다. 광복회 충청지부 본부인 충남 예산 김한종의 집을 덮쳐 김 의사 등을 체포하고 권총과 실탄, 통고문, 인장, 현금 등을 압수했다. 충청지부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으로 박상진과 김한종 우재룡 권영만 등이 주도하며 만든 대한광복회가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경북 대구에서 박상진 등이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다. 만주에서 군대를 양성하여 일제와 전면전을 벌이기 위해 군자금을 모아 전달했다. 조직은 총사령 박상진, 지휘장에 우재룡과 권영만을 두었고, 만주에 부사령(이석대→김좌진)을 파견하는 등 해외에도 조직을 설치했다. 본부는 총사령 박상진의 생가인 경남 울산에 뒀다. 회원들에게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강령을 준수하도록 했다.
총사령 박상진은 1884년 경북 울산 출신으로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했으나 평양법원에 부임하지 않고 무장 독립투쟁에 투신한 열혈 애국지사였다. 광복회는 전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았고, 폭력적인 수단도 주저하지 않았다. 1915년 12월 경주에서 일제의 세금 운반 우편마차를 습격하여 8700원을 빼앗았고, 평북 운산금광의 금 수송 마차를 습격했다. 악질 친일부호인 전남 벌교의 서도현, 경북 칠곡의 장승원, 충남 아산의 박용하 등을 처단했다.
대한광복회는 전국에 지부를 뒀는데 그중에서도 충청지부가 가장 활발했다. 총사령 박상진은 충청지부장인 김한종과 매우 가깝게 지내며 대소사를 상의하고 실행했다. 김한종은 충청도에 조직을 구축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 힘을 쏟았다. 충청지부는 1917년 6월경에 조직됐으며 김한중이 책임을 맡았다. 김한종이 예산과 홍성, 그와 친분이 두터운 장두환이 천안 아산을 맡아 회원을 확보했다.
◇대한광복회 충청지부에서 활동한 애국지사들 (※일부 사진은 챗-GPT로 보정)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이성우 교수 연구에 따르면 광복회 충청지부 회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56명에 달하고, 이중 38명이 체포돼 24명이 재판에 회부됐다. 직업은 농민이 18명, 서당 훈장 5명, 미곡상 4명 등이었으며 30대가 가장 많았다. 지역별로는 예산 16, 천안 11, 청양 9, 아산 9, 홍성 5, 연기 3, 충북 괴산 2명 등이었다. 천안을 제외하면 홍성 예산 아산 청양 등 홍주문화권 출신이 많았는데, 홍주의병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다수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
회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예산의 김상준은 한약방을 운영하며 자금을 대고, 광복회의 고시문을 작성하여 발송했으며, 이재덕은 인천의 연락거점에서 활동했다. 홍성의 정태복은 홍성군 장곡면장으로 내포지역의 자산가를 조사하여 제보했으며, 면사무소 등사기로 전국의 부자들에게 보내는 고시문을 제작했다. 청양의 김경태는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국사범으로서 5년의 유형생활을 한 인물이었다. 홍현주는 청양의 중석광산에서 장사를 하며 각종 정보를 모아 충청지부에 전달했다. 아산의 강석주는 인천의 거점에서 활동했는데, 아산 도고면장을 처단한 김경태를 피신시키고 자금도 제공했다. 아산의 성달영 성문영 형제도 광복회에 가입, 활동하였다.
장두환은 천안의 중심인물로 자신의 재산을 광복회에 헌납했으며, 천안 아산 연기의 자산가를 조사하여 군자금을 모으고 도고면장 처단을 주도했다. 유창순은 광복회의 선전을 담당했으며, 조종철과 유중협은 천안지역의 정보를 수집하고 군자금을 모았다.
충남지부는 곳곳에 곡물가게를 열어 연락처로 삼았다. 예산은 김재창, 연기는 박장희, 인천은 강석주 황학성이 가게를 운영했다. 인천은 충남의 아산 당진 서산 등에서 배편으로 왕래가 용이해 충남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광복회는 지역의 부자들을 조사하여 배당금을 명시한 통고문을 보낸 뒤 회원들이 찾아가 돈을 받아냈다. 대부호는 중국에서, 소자산가에게는 국내에서 포고문이나 고시문, 경고문을 발송했다. 충남지부는 장두환이 천안 아산 안성 연기, 엄정섭이 공주 청양 부여 논산, 김한종이 서산 홍성 예산 보령을 담당했다. 장곡면장인 정태복이 면사무소 등사기로 이들 문서를 제작했으며, 문서에 김재풍이 만든 도장을 찍어 보냈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장두환 임봉주 김재창이 이를 서울로 갖고 올라가 우편함에 넣어 발송했다. 광복회가 발송한 문서는 161통이고, 모금하려고 한 금액은 177만7000원에 달했다. 당시 순경 월급이 15-20원, 교사는 30-50원, 쌀 1가마에 5원 정도였다.
1917년 정태복 김재풍 김상준 3명은 홍성 광천의 정인교를 찾아가 100원을 받아냈으며, 조종철 김경태 김재창 엄정섭은 권총을 갖고 아산군 배방면의 자산가 조용구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14원을 확보했다. 1918년 1월 김경태와 임봉주는 친일 악질인사인 아산 도고면장 박용하 집에 들어가 사형선고문을 낭독한 뒤 쏘아 죽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제 경찰은 박용하 사건을 수사하여 장두환을 검거하고, 충남도지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재판을 받은 도지부 소속 인물이 24명으로 1심에서 김한종 김경태 유창순 장두환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김한종은 대구형무소에서, 김경태는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 복심법원에서 유창순이 징역 10년, 장두환은 7년으로 감형됐으나 장두환은 옥중에서 순국했다. 장 의사는 당시 28세의 건강한 장년으로, 일제가 몰래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지부 사건이 불거지자 일제는 영남과 호남 등 전국의 광복회 조직을 뒤져 회원들을 잡아들였다. 회원들은 지하로 숨어들고 일부는 중국으로 망명, 투쟁을 벌였다. 상하이 임시정부와 암살단, 대동단, 광복단결사대 등에서 광복운동의 맥을 이어나갔다.
대한광복회는 대한독립의군부와 함께 1910년대 가장 치열하게 의열투쟁을 벌인 양대 비밀결사 단체였다. 대한독립의군부가 고종의 밀지를 받고 시작된, 황실복원을 내건 조직인데 비해 광복회는 일반 백성들이 참여했고 공화제 국가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단체로 평가할 만하다.
일제의 서슬이 가장 시퍼렇던 시대, 대한광복회의 치열한 의열투쟁에 충청인들이 맨 앞에 선 것은 자랑스럽고 빛나는 발자취가 아닐 수 없다.
관련기사
- [줌인] 뜨거웠던 그들의 만세운동… 희생도 컸다
- [줌인] 독립정신 일깨운 지도자… 거국적 3·1 만세운동 이끌다
- [줌인] 공주형무소에서 순국한 오동진 장군… 김좌진·김동삼과 '3대 맹장'으로
- [줌인] "대동단결" 호소… 독립운동 헌신한 임시정부 '큰 어른'
- [줌인] 독립투사 집안의 10대 소녀, 아우내만세운동 주도
- [줌인] 국내외 투쟁 헌신… '나라사랑 DNA' 유공자만 11명
- [줌인] 충무공 이순신 12대손… 평생 독립운동 몸바쳐
- [줌인] 41년 짧은 생애… 조국 광복 위해 모든 수단 찾아 실천
- [줌인] 청산리전투 승리 견인… 신민부 결성 등 한평생 독립운동
- [줌인] 군사훈련·보급 전담 유능한 참모… 청산리전투 승리 견인
- [줌인] 타고난 군사 이론가 … 청산리전투 잊혀진 영웅
- [줌인] 상하이 망명·독립운동… 43년 일생 조국광복 몸 바쳐
- [줌인] 중국 신해혁명 핵심들과 교류… 상하이 임시정부 터 닦아
- [줌인] 민족사 앞세워 한평생 치열한 독립투쟁
- [줌인] 무력투쟁론 앞세워 독립 추구… 뤼순감옥서 순국
- [줌인] 신문물·문화 수용… 민족의식 자각하고 독립운동 나서
- [줌인] 아나키스트 이론가… 독립운동·혁명·농업 독특한 이력
- [줌인] 유인석, 을미의병 주도… 항일 무장투쟁 불씨 지펴
- [줌인] 승려·시인·사회운동가… 평생 굽히지 않고 독립운동
- [줌인] 만주에 아나키즘 실현...독립운동기지 건설 추진
- [줌인] 교육·계몽·종교운동 헌신… 평생 항일의 길
- [줌인] 日 기습 공격에 치열한 전투… 부하들과 전사
- [줌인] 광복회·광복단결사대 조직… 조선총독·친일파 처단 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