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활용 새 접근 주목
'블랙박스'처럼 숨겨진 예측
설명 가능한 연구활동 활발

이미선 기상청장
이미선 기상청장

기후변화로 국지적이고 급격한 기상 변화가 늘어나면서, 정확한 예보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이처럼 중요한 기상예보의 출발점은 기상관측이다. 현재의 대기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미래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천 개의 기상관측소가 24시간 날씨를 측정하고, 수백 개의 고층기상관측 기구가 대기 상층부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기술이 발달하며 등장한 기상위성은 기상관측의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정지궤도와 극궤도를 도는 수십 개의 기상위성이 구름 분포와 이동, 대기 온도, 수증기량, 해수면 온도 등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며 지상 관측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0년부터 독자적인 기상위성을 운영해 왔으며, 지금은 2세대 위성인 천리안-2A가 3만 6000km 상공의 정지궤도에서 한반도를 2분마다 촬영하여 상세한 기상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기상현상을 아무리 정확하게 관측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내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없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수치예보모델'로 지구 전체를 촘촘한 격자로 나누고, 각 격자점에서 온도, 기압, 바람, 습도가 어떻게 바뀔지를 물리 방정식을 풀어 계산한다. 이때 격자가 조밀할수록 실제 대기 현상을 더 정밀하게 재현하기 때문에 슈퍼컴퓨터의 성능 향상과 관측 기술 발달에 힘입어 점차 조밀해지고 있다. 기상청의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 역시 8km 해상도로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예측을 하는 전지구예보모델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격자가 촘촘해질수록, 계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더욱 섬세한 관측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이러한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 기상청은 전국 곳곳에 자동기상관측장비(AWS)를 촘촘히 설치하고, 환경부, 국토교통부, 지자체 등 다양한 기관에서 운영하는 관측까지 통합하여 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하였다. 기상위성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유럽우주국은 위성에 라이다(LIDAR)를 장착하여 대기의 바람을 직접 측정하는 기술을 선보였고, 미국과 중국의 민간 기업들은 수십 개의 초소형 위성으로 구성된 위성군을 운영하며 기상관측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그럼에도 완벽한 예보는 여전히 요원한 목표이다. 대기는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카오스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정교한 수치모델이라도 구름 속 물방울의 생성과 소멸, 지표면과 대기의 복잡한 상호작용 같은 물리 과정을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최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새로운 접근이 주목받고 있다. 구글의 그래프캐스트(GraphCast), 화웨이의 판구웨더(Pangu-Weather),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로라(AURORA) 같은 AI 기상예측 모델들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예보에 접근한다. 이 모델들은 복잡한 물리 방정식을 푸는 대신, 수십 년 동안 축적한 방대한 기상 데이터에서 날씨의 복잡한 패턴을 스스로 찾아내 학습하고 현재 상황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를 추론한다. 우리 기상청도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추어 여러 AI 예보모델을 시험 운영하며 업무 현장에 적용할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AI 예보에도 과제는 있다. 예측 과정이 '블랙박스'처럼 숨겨져 있어, 예보모델이 어떤 이유로 그러한 날씨를 예측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AI가 주목한 기상 요소나 패턴을 시각화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우리가 매일 아침 무심코 확인하는 일기예보에는 인류가 축적한 과학기술의 정수가 녹아있다. 기상위성을 비롯한 첨단 기상 관측 기술로 오늘을 읽고, 수치예보모델로 물리 방정식을 풀어 내일을 그리고,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한 인공지능의 직관을 통해 정교한 예측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거대한 과학의 협연이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미선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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