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배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이향배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인공지능(AI)의 비약적 발전은 사회적 관심과 자원을 기술 중심으로 집중시키며 인문학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정부와 산업계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AI, 빅데이터, 로봇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인문학 분야는 상대적으로 지원이 축소되었다. 대학 현장에서 인문학 기피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인문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학문 후속세대가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은 인문학이 현실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오해와 기술 중심주의가 확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AI 시대의 도래는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필요성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AI의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졌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 체계일 뿐 인간과 동일한 감정·윤리·가치를 지닌 존재는 아니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찾는 데 뛰어나지만, 인간 감정의 미묘함, 복잡한 사회 구조, 상반된 이해 속에 도덕적 판단처럼 정성적 요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AI는 제공된 데이터를 그대로 학습하기 때문에 그 속에 내재한 문화적 편향, 역사적 왜곡, 사회적 불균형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특정 집단을 차별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알고리즘 사례가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다. 결국 AI 기술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문학적 기준과 성찰이 필요하다.

AI 시대의 핵심 과제는 더욱 발전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인간에게 이롭게 적용하고, 어떤 가치 아래에서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며 어떤 방향으로 사용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은 기술의 의미와 사회적 함의를 해석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데이터 설계 단계에서 인문학적 관점이 개입되면 AI의 판단과 분석이 보다 인간 중심적이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전문학을 데이터베이스화한다고 했을 때 단순한 텍스트 입력만으로는 작품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작품이 쓰인 시대의 배경, 저자의 사상, 문학적 장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미 변형까지 모두 고려해야 AI가 텍스트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적 정보의 반영은 인문학적 이해가 있을 때 가능하다.

지역 정책이나 도시 재생과 같은 사회 문제에서도 인문학적 데이터 설계는 큰 역할을 한다. 경제 지표나 인구 통계만으로 지역의 문제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지역 주민의 생활 방식, 공동체 문화, 역사적 기억, 사회적 연결망과 같은 요소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문학적 요소를 구조화해 데이터로 만들고 AI와 결합하면, 지역의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변화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기술이 인간 공동체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긍정적 방향을 마련한다.

기후변화, 디지털 격차, 인공지능 윤리, 노동 변화와 같은 현대적 문제들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단일 기술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기술은 표면적 패턴과 수치를 분석할 수 있지만, 그 이면의 사회적 갈등, 문화적 차이, 역사적 원인을 해석하는 능력은 인문학에서 비롯된다. AI의 효율성과 인문학의 통찰이 결합될 때 문제 해결의 폭이 확장되고, 기술이 인간을 위한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

결국 AI 시대는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확장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인문학은 기술과 분리된 학문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뿐 아니라, 기술의 윤리적 기준을 설정하고, 문화적 감수성과 공감을 기반으로 한 인간 중심의 기술을 설계하는 인문학적 인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AI 시대에 인문학은 전통 학문의 탐구를 넘어서 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지켜내는 핵심 원리이자 사회적 나침반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향배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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