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미스'의 여왕 미나토 가나에, 15주년 귀환작
인간 표본(미나토 가나에 지음/김선영 옮김/북다/352쪽/1만 8800원)

"인간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표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2008년 '고백'으로 일본 문단을 뒤흔든 미나토 가나에가 다시 '이야미스(꺼림칙한 미스터리)'의 세계로 돌아왔다. 밝고 따뜻한 작품을 내오며 스펙트럼을 넓혀온 그가, 독자들의 "이야미스를 다시 보고 싶다"는 요청에 응답하듯 초심으로 복귀한 신작이 바로 인간 표본이다.

주인공은 저명한 나비학자 사카키 시로. 인간이 볼 수 없는 자외선까지 감지하는 '나비의 눈'에 매혹된 그는 어느 날 중병에 걸린 천재 화가 루미가 후계자를 찾기 위해 초대한 다섯 소년을 마주한다. 시로는 그들을 본 순간, 인간이 아니라 '나비'처럼 느낀다. 생명체의 빛을 반사하는 듯한 피부, 계절과 광선이 만든 미세한 색층위까지 품은 듯한 모습은 그의 감각을 무너뜨리고 세계를 비틀기 시작한다.

미나토는 시로가 '소년들을 나비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고 기괴하게 포착한다. 어느 순간 뺨은 푸른 날갯결로 보이고, 손끝은 겹눈처럼 빛을 반사하며, 말투조차 몸짓과 진동으로 변주된다. 이는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광기로 전도되는 지점을 정밀하게 탐구한 장치다.

결국 시로는 아름다움을 '영원히 붙잡아야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힌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나비학자다운 잔혹함이다. 소년들을 납치해 나비 표본 제작 기법으로 '인간 표본'을 만드는 것. 조용한 고백체로 서술되는 이 잔혹함은 독자에게 더 깊은 소름을 남긴다. 작품에는 실제 표본 제작 방식, UV 라이트 실험, 나비 비늘의 자외선 반응 등 작가의 치밀한 조사 과정이 녹아 있어 현실감과 비현실감의 경계가 스산하게 흐려진다.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시로가 마지막 표본으로 선택하는 대상이다. 다섯 소년 중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은 결국 그의 아들 이타루에게 향한다. 미스터리에서도 근래 보기 드문 '자녀 살해'라는 금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 안의 뒤틀린 사랑과 인간적 감정을 포착한 미나토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지고 정교해졌다

게다가 단순한 스릴러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 곳곳에 깔린 큰 질문은 '우리는 과연 같은 세계를 보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나비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전혀 다른 색들이 드러나듯, 인간 역시 자신의 경험과 내면의 어둠에 따라 전혀 다른 현실을 인식한다. 미나토는 데뷔작 '고백'에서부터 꾸준히 던져온 이 질문을, 이번에는 탐미와 광기의 극단을 통해 풀어낸다. 그리고 독자는 시로의 고백을 읽는 동안, 현실과 환각, 아름다움과 잔혹함, 사랑과 집착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목격하게 된다.

책장을 덮고 나면 한동안 서늘한 기운이 몸에 남는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는 이상할 만큼의 매혹이 깃 들어 있다. 인간의 어둠을 응시하는 일은 늘 괴롭지만, 미나토 가나에는 그 괴로움을 문학적 성취로 승화시키는 드문 작가다. '인간 표본'은 그의 15년 탐구가 응축된 '최고 걸작 미스터리'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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