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훈 선임기자
지명훈 선임기자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광주 인화학교에서 2000년부터 수년간 교사와 행정직원들이 학생 성폭행 등을 일삼았다. 2005년 수사가 시작됐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란 지적이 많았다.

이 사건을 새롭게 조명한 것은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였다. 더구나 이 소설이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되면서 전 국민들이 공분했고 검찰 재수사로 이어졌다. 장애인·미성년자 성폭력 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소위 '도가니법(성폭력범죄 특례법 개정안)'이 제정됐다. 문학 작품이 이처럼 사회적 이슈를 제기해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적 논의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62년 발간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처럼 큰 방향을 일으킨 작품도 드물다. 살충제 DDT의 위험성을 통해 화학물질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이 책은 현대 환경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이 저술로 미국 환경보호청(EPA) 설립됐고 DDT 사용은 금지됐다.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미국 남부 노예 제도의 비인간성을 고발해 남북 전쟁 발발의 문화적 도화선이 됐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개발 논리 이면의 인권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켰다.

문학이 사회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닌가라는 논쟁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지대한 사회적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다.  조지 오웰의 '1984년'처럼 문학은 암울한 미래사회를 엄중하게 경고하는 묵직한 역할도 담당한다.  인간의 내면세계와 사고방식 자체를 지배하려는 '빅 브라더', 모순되는 두 가지 믿음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이중 사고' 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통찰은 인간의 의식을 일깨운다. 

세종시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수많은 문제작을 냈던 김진명 작가에게 '세종의 나라'(가제)라는  역사 소설 집필을 의뢰했다고 한다. 시는 18일 세종시립도서관에서 김 작가가 참여한 독서토론회를 개최해 작품 계획을 알리고 시민 의견도 들었다. 이 소설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애민 정신을 조명한다고 한다. 역사가 일천한 세종시의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더불어 '이게 정치야'라는 모델을 제시해 나락에 떨어진 우리 정치에 죽비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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