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을 완화하는 법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법안 개정을 위한 국회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예타와 관련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22대 국회에서만 모두 27건이나 발의됐을 정도로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개개인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단기간에 이처럼 많이 발의한 사례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지역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 대한 지역민들의 요구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발의 경쟁만 뜨거울 뿐 정작 국회에서의 논의는 도무지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8월 현행 예타 대상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총사업비 500억 원·국가 재정지원 300억 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000억 원·국가 재정지원 500억 원 이상으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20년부터 올해까지 예타 조사가 완료된 SOC사업 50건 중 500억 이상·1000억 원 미만 사업은 고작 4건에 그쳤다. 정부의 방침대로 예타 기준을 완화해도 실제 예타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사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고려해 국회 차원에서 정부 방침을 보완하려는 다양한 법안이 등장하고 있다. 인구감소지역의 경우 총사업비 1500억 원 이상·국가 재정지원 800억 원 이상으로 별도 기준을 두자는 제안, 지역균형발전의 평가 비중을 과감히 확대하자는 주장 모두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 현행 예타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 지역균형발전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도 경제성과 정책성이 낮으면 통과가 어렵다. 이참에 지역균형발전 비중을 30-40%에서 50% 이상으로 높이자는 요구가 지방에서 나오는 이유다.
지방의료원 신·증축이나 교정시설 이전 등 경제성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공공필수시설에 대해서는 예타 면제 근거를 명확히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은 계속해서 특별법 제정이라는 우회로를 택할 것이고, 이는 국가정책 체계의 일관성을 해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 상황에 맞는 다양한 법안이 발의돼 있는 만큼 국회는 하루빨리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