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년법(紀年法)은 특정 연도를 기원 삼아 햇수를 세는 것을 말한다. 정치, 종교, 천문학 분야에 다양한 기년법이 존재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기년법은 예수 탄생을 기준한 기원전(BC), 기원후(AD)다. 기독교 기반의 서구 문명이 주도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어느 임금이 즉위한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정한다. 삼국지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인 적벽대전은 건안(建安) 13년에 일어났다. 건안은 후한의 제14대 황제인 헌제가 사용한 연호다.
단군의 후손인 우리는 단기(檀紀)를 쓴다. 원년은 BC 2333년이다.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1948년 국가 공식 연호로 단기를 채택했으나 박정희 혁명 정부가 1962년 1월 1일부터 서기로 바꿨다. 국제적 통용성과 행정의 효율성을 감안했다. 불기(佛紀)는 석가모니가 입멸(열반)한 해(544년)를 원년으로 삼는다.
북한은 김일성 사망 3주기인 1997년 7월 8일에 주체년호를 도입했다. 원년은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1912년이다.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공문서에서 주체년호가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대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독자적인 권위를 세우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기년 제정은 정치적,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 삼국지의 유비, 손권은 한나라 정통성을 강조하며 처음에는 건안을 연호로 사용하다 나중에는 독자적인 연호를 정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최근 오스트리아에서 경매 받아 환수한 조선시대 공주판관 이문영(1790∼1858년)의 지석에서 '조선입국(朝鮮立國) 468년'이란 기년 표기가 발견됐다. 조선의 다른 어떤 공문서에도 조선입국이란 기년 표기는 없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따져봐야 할 게 많다. 조선입국은 사적 영역에서 사용돼온 걸까? 은밀히 사용했다면 그 주체는 누구일까? 사대주의를 배격한 자주적 의식의 발로일까? 조선건국이 1392년인 것을 감안하면 무얼 기념하려 한 것일까? 이문영의 사망일을 기념하려면 조선입국 466년이어야 할 텐데 왜 468년일까? 연구를 통해 지석에 담긴 흥미진진한 사실(史實)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