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만점자가 쓴 샤프 팝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13일)을 앞두고 중고거래 사이트에 이런 글이 자주 올라온다고 한다. 실제 수능 고득점자의 샤프인지 판별할 수 있나. 그것부터 의심스럽지만 실제 구매 의사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 샤프 기운을 받아 시험을 잘 치르고 싶기 때문이다. 일종의 '염원 소비'다.
그렇다면 과연 고득점자의 샤프가 효과를 낼 수는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과학적 연구결과는 엇갈린다. 스포츠선수 대상의 실험에서는 미신적 의식이 기술적 수행 능력 향상에 효과가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미신적 믿음(luck belief)이 인지적 및 운동적 과제의 성과를 약간 향상시켰다는 다른 연구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반복적인 행동이나 상징적 도구를 의미하는 '의식(ritual)'이 불안을 줄이고 집중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는 실험 결과를 내놨다. 2016년 9월 발행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논문 '믿음을 멈추지 마라: 의식은 불안을 줄임으로 성과를 높여준다'가 제시하는 바다.
이 연구결과는 고득점자의 샤프가 고득점 정령을 품고 있다거나 그 자체로 신비로운 힘을 내뿜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샤프를 소유했다는 믿음이 그런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믿음이나 기대감으로 인해 실제 효능이 없는 자극이나 물질이 심리적·신체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플라시보 효과'의 또 다른 버전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너무 커질 때는 문제도 생긴다. 그 철석같이 믿었던 샤프를 잃어버렸을 경우 "망했다"는 느낌과 더불어 불안감에 빠져들 수 있다.
이런 얘기 자체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우리 수능이 어떤 것인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17일자 영국 가디언지 보도를 보면 우린 잘 의식히지 못하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 수능이 하나의 '놀라운 현상'이다. "한국은 60만 명이 넘는 수험생이 '미래를 결정할 시험'을 치르는 날, 항공편을 멈추고 주식시장 개장을 늦췄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그 이후 인생을 결정하는 우리에게 수능은 단순한 대학 입학시험이 아니다. 한 인간이 '운명'을 걸어야 하는 통과의례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10대를 보내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