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명예연구원
이성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명예연구원

"연구자 여러분한테 실패할 자유와 권리를 주기로 했어요. 연구개발이란, 특히 공공부문의 연구개발 투자는 정말로 어려운 과제들의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어야 되죠. 실패하면 어떻습니까? 그 실패가 쌓여서 성공의 자산이 되는 거죠." 지난 11월 7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 국민보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연구개발과제 성공률은 9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발주한 프로젝트의 지난 10년간 평균 성공률은 약 17.8%,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목표 달성률이 5-10%라는 점과 견주어 볼 때 턱없이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실패할 가능성이 낮은 연구에만 매달린다면 실패를 무릅쓰고라도 중장기적으로 인적 물적 역량을 투입해야 하는 기초, 원천, 거대과학기술 연구와 혁신 연구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 연구개발 투자에서 실패를 올바르게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후속 연구에 도전함으로써 궁극적인 연구개발 목표를 이루어 달라. 이런 바람을 담은 대통령의 지적은 말 그대로 설득력이 있고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성실 실패' 문제를 얘기한 것은 이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까지만 하더라도 실패로 판정한 연구 연도에 투입한 정부 출연금을 환수 조치하고 연구 책임자는 3년 동안 국가 연구개발 연구비를 받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제재를 두려워하여 연구자들이 사전 연구결과가 축적되지 않은 도전적 연구를 기피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급기야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연구개발 재도전 기회 제공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여 '성실 실패'에 대한 제제를 면제하여 창의적 연구를 장려하고 재도전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실패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한 것은 '성실 실패' 문제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한 경쟁에 처한 한국 사회에서 실패는 곧 낙오와 도태를 의미한다. 2024년 10월, 카이스트(KAIST) 실패연구소가 조사한 '도전과 실패에 관한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실제로 그런 인식의 단면이 나타난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전반적으로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지원한다'는 응답은 35.6%인데, '무모하다고 여기고 무시한다'는 응답은 64.4%였다. 실패를 '성장과 학습의 기회로 삼는다'는 응답은 35.1%, 실패를 '부끄럽게 여기고 비난한다'는 응답은 64.9%였다. 하물며 성장과 교육 과정에서 대체로 성공적으로 살아온 연구자들에게 실패는 얼마나 큰 좌절을 느끼게 할 것인가.

'성실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개발 공동체를 만들려면 우리 사회가 연구자들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하고, 연구자들도 기존 제도에 대하여 성찰하고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가령, 성공을 예측하기 어려운 거대 과학 연구의 경우 정해진 연구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대로 끝낼 것이 아니라 실패 사유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해법을 찾은 다음에 연구 기간을 거듭 연장하는 방안도 있다.

시급한 것은 현행 정부 연구개발 평가 제도를 제대로 개혁하는 일이다. 연구개발의 기획부터 평가까지 온갖 권한은 독점하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관료들을 적어도 평가에서라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관료들 눈치를 보지 않고 전문성을 발휘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실패의 자유와 권리'는 조금씩 확장할 수 있다.

관료들을 총지휘하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은 '실패할 자유와 권리'를 말로만 선언하지 말고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하도록 계속 독려해야 한다. 이성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명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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