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안정법' 호칭, 어이없는 일
강성지지층 눈도장 찍은 정청래
과연 누구를 위한 법안인지 의문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둘러싼 소동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난 2일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가 다음날 24시간 만에 철회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나와 관련한 입법을 정쟁의 소재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 지도부와 정청래 대표가 급발진을 했다가 이 대통령의 경고를 받고 급정거를 한 것이다. 정 대표가 또 '자기 정치'를 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집권 여당이 재판중지법 처리를 결정하면서 대통령실과 아무런 상의도 없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법안 호칭을 '국정안정법', '국정보호법', '헌법 84조 수호법'으로 변경하려 한 점은 더더욱 기가 막힌다. 이 대통령 재판을 중지하는 법안이 어떻게 국정보호나 헌법 수호가 될 수 있는지 의아하다. 프레임 전환을 위한 전략이겠지만 발상 자체가 너무 유치하다.
재판중지법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는 이 대통령이다. 법안의 탄생 배경만 보더라도 그렇다. 해당 법안은 지난 5월 1일 대법원이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한 바로 다음 날 발의됐다. 법안 제306조 6항은 '대통령선거에 당선된 경우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기종료 시까지 공판절차를 정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누가 봐도 12개 혐의로 5개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위인설법(爲人設法)이다.
이런 재판중지법에 대통령실이 제동을 걸은 것도 벌써 두 번째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직후에도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대통령실의 요청으로 보류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면서도 정 대표는 이번에 또다시 대통령실과 조율도 없이 법안을 처리하려 했다. 이쯤 되면 이게 대통령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을 더 곤란하게 만들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결과적으로 재판중지법 논란은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다시 부각하게 만들었다. 긁어 부스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 대통령 형사재판을 임기 중 재개하는 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국가 원수가 형사재판을 받기 위해 수시로 법원에 출석한다면 이것도 볼썽사나운 일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한다고 해서 이 대통령이 얻을 실익도 없다. 법원은 이미 헌법 제84조 '불소추 특권' 등을 이유로 이 대통령이 받고 있던 5개의 형사재판을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따지고 보면 현직 대통령의 재판이 중단돼 있는데도 여당이 재판중지법을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법안을 당장 처리한다고 국정안정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대통령의 '무죄'가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론만 더 나빠지고, 죄가 있으니 재판을 피하려고 한다는 의심만 살 수 있다. 어차피 이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무기한 연기된 5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게 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숙명이자 업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정 대표가 '재판중지법 카드'를 넣었다 뺐다 반복하는 진짜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는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내년 8월 당 대표 재임에 성공하면 대선후보 0순위에 오르게 된다. 강성지지층을 등에 업고 차기 민주당 후보 경선에 통과한 뒤 포스트 이재명을 노리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대통령은 당내 장악력이 약화되고 있고,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받았다는 말이 나온다. 한동안 잠잠하던 '명청'(이재명-정청래) 갈등설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재판중지법인지 헷갈리는 지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