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건축 현장을 가보면 '탄소중립', '제로에너지'라는 단어를 쉽게 볼 수 있다.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목표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막상 그 방법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외국산 자재와 수입 기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의 발전은 반가운 일이지만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지역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은 땅의 이야기이자 사람의 이야기다. 서산의 바람, 공주의 햇살, 부여의 흙빛은 그 지역의 건축에 자연스레 스며들어야 한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써서, 그 땅의 기후에 맞게 집을 지었다.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하고, 겨울에는 햇살이 깊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나무, 흙, 돌, 기와는 모두 지역에서 구한 것들이었고, 그 재료를 다루는 기술도 지역 장인들의 손끝에서 전해졌다. 그 덕분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건물들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오늘날의 공공건축은 전국 어디를 가도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지역의 기후나 재료보다는 중앙에서 정한 표준 시방서와 규격에 맞춰 설계되고 시공된다. 그러다 보니 서산의 바닷바람, 공주의 일조, 부여의 황토색 같은 지역의 개성이 사라진다. 건물은 남지만 그 지역만의 이야기와 감성은 사라지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지역 재료를 쓰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목구조 건축물을 설계하려 해도 건축의 핵심 구조재인 집성목이나 구조용 목재를 충남 지역은 물론 국내에서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국산 목재의 품질 인증 체계가 아직 충분히 정비되지 않았고, 가공 인프라도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설계 단계에서는 '지역 재료를 쓰자'고 결심하지만, 실제 시공 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수입산 구조재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지속가능한 건축이 단순히 설계자의 의지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 재료를 쓰려면 그 재료를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이 함께 커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건축이란 단순히 에너지 절약을 뜻하지 않는다. 지역의 자원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지역의 기술을 계승하면서, 지역의 사람과 함께 짓는 건축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생산한 목재를 사용하면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줄고, 지역 단열재나 벽돌을 쓰면 지역 기업이 살아난다. 지역의 기술자와 시공업체가 함께 참여하면 기술이 축적되고 일자리도 지역 안에서 순환된다. 이 모든 것이 '지역이 중심이 되는 건축'의 시작이다.
최근 공공건축 설계공모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비율, 제로에너지 인증 등 수치화된 기준이 강조된다. 물론 필요한 제도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서산의 해풍을 고려한 통풍형 입면, 공주의 계절 일사량에 맞춘 차양 깊이, 부여의 토양색을 닮은 외장재 같은 것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이런 건물들은 지역의 빛과 바람을 품고, 사람의 감각과 기억을 담은 건축으로 남는다.
이제는 '로컬 스펙(Local Spec)'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단순히 기술적 기준을 채우는 것을 넘어, 지역의 기후·재료·기술을 반영하는 새로운 설계 기준 말이다. 예컨대 충남의 소나무를 구조재로 쓰고 지역산 황토벽돌을 활용하며 지역 목수가 참여하는 건축을 늘려가면 어떨까. 이런 건축은 외관만 친환경이 아니라 사람과 지역이 함께 자라는 건축이 된다.
건축가는 이런 변화를 연결하는 사람이다. 멋진 건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과 사람을 잇는 건물을 짓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건축은 결국 지역의 얼굴이자 그 시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역의 재료와 기술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지속가능한 건축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대전과 충남 곳곳에서 지역의 재료로 지어진 건축이 하나둘 늘어나길 바란다. 그 안에는 기술보다 더 큰 힘, 사람과 지역이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한 미래의 힘이 담겨 있을 것이다. 신동기 건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