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고에서 리틀 이탈리의 형성과정을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이곳을 무대로 권력과 질서를 구축했던 마피아가 남긴 유산에 주목한다. 한때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라는 영화 '대부'의 명대사로 상징되던, 뉴욕의 변방은 이제 이민자의 생존 전략을 넘어 한 시대를 지배한 어두운 신화로 자리매김했다. 그 무대가 바로 '리틀 이탈리(Little Italy)'다.
오늘날의 리틀 이탈리는 겉보기엔 낭만적인 관광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좁은 골목 안에는 복수의 윤리(Vendetta)와 침묵의 계율(Omerta)을 가진 조직범죄의 서사가 깊이 배어 있다. 또한 한때 세계 최악의 슬럼으로 '고담시티'라는 뉴욕의 어두운 별명을 제공한 파이브 포인츠의 중심부에서, 단순한 범죄의 무대를 넘어 권력과 자본의 심장부까지 지배했던,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어둠의 진원지였다.
19세기, 이민 물결이 밀려든 뉴욕은 서로 다른 민족의 생존을 위한 충돌의 현장이었다. 언어·종교·문화가 달랐던 여러 민족 공동체들, 특히 아일랜드계, 유태계, 이탈리아계는 뉴욕 하류층으로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자신들만의 비공식인 질서를 구축했다. 그 중심인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단순한 범죄조직이 아닌 공권력이 미치지 못한 경계에서 공동체를 지탱한 또 하나의 숨겨진 권력이었다. 특히 19세기 말 미국으로 건너온 이탈리아계 이민자들과 함께 뿌리내린 '우리의 것'이라는 뜻의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는 본래 시칠리아에서 농촌 지역의 자경단이자 보호조직으로 출발했으나 뉴욕에 이르러 범죄조직으로 진화했다.
이 마피아의 서사를 가장 강렬하게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은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대부(The Godfather)' 시리즈다. 리틀 이탈리를 배경으로 시칠리아 출신 이민자 소년이 거대 범죄 조직의 수장으로 성장하는 콜레오네 패밀리의 3대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비토 콜레오네는 마피아의 보복으로 가족을 잃고 1901년 홀로 뉴욕으로 도주했으며, 엘리스 아일랜드 입국심사 과정에서 고향 이름이 성으로 잘못 기록되면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영화의 묘미는 실제 장소를 활용해 리틀 이탈리의 과거를 생생히 재현한 점이다. 젊은 비토가 지역 갱단 두목을 제거하는 장면은 멀버리 스트리트의 산 젠나로 축제와 겹쳐지며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장년의 비토가 상대 조직의 저격을 받는 장면은 1930년대 모트 스트리트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비토의 아들, 마이클이 조직의 배신자들을 제거하는 장면과 조카의 세례식이 교차되며 지역의 상징인 성 패트릭 구 대성당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영화 속 장면들은 오늘날까지 리틀 이탈리에 새겨진 공간적 기억과 겹쳐지며 콜레오네 가문 역시 실존 인물 '카를로 감비노'의 조직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특히 가톨릭계 이민자들을 향한 차별이라는 금주법 시기, 이탈리아 마피아는 불법 주류 제조와 유통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고 유대계와 아일랜드계가 주도하던 지하세계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그들의 흔적은 여전히 리틀 이탈리의 골목과 건물 속에 은밀히 각인돼있다. 겉보기엔 세탁소나 식료품점처럼 보였지만 내부에는 밀주 저장고, 비밀 회의실, 숨겨진 출입구 등이 자리했다. 대표적인 예로 마피아를 현대적 조직으로 재편한 찰스 루치아노와 유대계 파트너 벅시 시걸이 회동했던 '더 백 룸'이 있다. 노포크 스트리트의 두 지하 공간을 연결한 이 비밀 장소는 현재 유명 칵테일 바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멀베리 스트리트에 위치한 '레버나이트 소셜 클럽' 역시 한때 마피아의 본거지였으며, 내부에는 당시의 바닥재 일부가 여전히 남아 그 과거의 흔적을 전한다.
뉴욕 마피아는 더 이상 총을 쏘지 않는다. 리틀 이탈리 역시 피자와 축제, 관광의 이미지로 치장된 채 과거의 그림자를 감추고 있다. "금융은 총이야. 정치는 그 방아쇠를 당길 때를 아는 것이고"라는 영화 속 대사는 범죄를 넘어 그들의 질서를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변모시켜 도시에 각인했음을 상징한다. 리틀 이탈리는 한때 그들이 제도 밖 질서를 설계하던 무대였고, 여전히 그 잔상과 공동체의 기억을 품은 채 뉴욕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증언하고 있다. 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