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고정관념은 무섭다. 근거가 없지만 때론 현실과 맞닿는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결지로 불렸던 충청도였다. 느림의 미학은 시대를 거치며 우유부단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충청인은 말투와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멍청도'의 비속어를 품는다.
반면 무역항이 발달하고 상업도시였던 부산은 거칠고 직설적이지만, 실용적 성향이 강하다고 전해진다. 해양도시 특유의 활기가 원천이다. 노인과 바다의 도시로 불리지만, 여기서 노인은 '강인함'을 상징한다.
고정관념에 빗대면 충청과 부산은 '양반 vs 상인' 혹은 '느림 vs 실용' 대결구도다.
승자는 누구일까. 실용적 상인의 배가 더 부를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 세종을 뜨겁게 달군 '해양수산부 사태'는 지역별 고정관념을 상기시켰다.
대통령 공약에 담긴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은 기정사실. 다만 이를 대처하는 충청 정치권의 자세는 '우유부단'을 넘어 '멍청도'의 비속어를 현실로 그려냈다.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 발표 후 해수부 사태는 마무리 수순을 밟는 분위기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소속 세종 국회의원이며, 시의원들은 오랜기간 침묵으로 일관했다. 무언의 '정부 두둔(?)' 혹은 '공청권 눈치보기(?)' 행보다. 이 모습에 세종 지역사회는 정치판의 염증을 느꼈다.
침묵이 다행일 때도 있다. 충청 한 지붕 아래 민주당 소속 대전 정치인들은 해수부 이전을 찬성하는 의견까지 던졌다.
해수부 사태를 마주했던 국민의힘은 자유로울까.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4월 18일 SNS를 통해 '해수부 이전'을 최초 공언했다. 이후 국힘 소속 충청권 4개 단체장들은 63일이 지나서야 '해수부 반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침묵하는 민주당의 빈 틈을 비집고 들어선 것. 뒤늦은 주도권 잡기다.
충청이 달아 오르는 듯 했으나, 최민호 세종시장의 '나홀로 사투'만 전개됐다. 1인 시위며, 대통령에 보내는 서한, '행복도시법' 법률 위반 소지 등의 카드를 꺼냈지만, 정부의 허를 찌르지 못했다. 지역사회 입장에선 정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카드를 바랬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에 그쳤다. 이는 세종시 정무라인과 시 집행부의 무능을 들췄다.
세종 정치권이 우유부단한 사이 부산은 거침없이 돌격 앞으로다.
여야를 막론한 부산 정치인들은 해수부 본부와 산하기관 이전을 담은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시의회도 결의안 채택에 신속했다. 부산시청도 이전 공무원을 맞이할 정책협의회를 통해 힘을 보탰다. 그야말로 하나된 부산이었다.
그 시각 충청은 앞서 언급한 듯 사분오열이었다. 이를 노리듯 해수부 사태 후 '농식품부는 전북으로, 문체부는 제주도로…' 식의 웃지 못할 설이 돌았다.
심지어 기후에너지부는 정부세종청사가 아닌 전라도를 향하고 있다.
전라도의 고정관념은 지역주의가 강하다는 이미지에 앞서 진보적 의식이 강하다. 이들이 뭉칠 땐 결과 값은 분명하다.
글로벌 자기계발 멘토로 유명한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은 대부분 현실이 된다"고 말했듯, 고정관념도 자기충족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정부의 균형발전 공약인 '5극 3특'을 근거로 정부세종청사 쪼개기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충청의 또 다른 고정관념은 신중함이다. 실리적 행보를 챙긴다는 의미다.
그나마 다행인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의 개헌 의제에 '행정수도 명문화'가 포함된 점이다. 정말이지 더 이상의 멍청함은 드러내지 말자. 박식한 양반의 고장 충청도다.
기득권만 바라보는 충청 정치인들은 민심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