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겁다. SMR은 주요 기기를 하나의 압력용기 내에 통합함으로써, 대형 배관 파손으로 인한 냉각재 유출 사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구조적 강점을 지닌다. 또한, 안전성의 핵심인 피동안전계통(Passive Safety System)을 적용해 외부 전력이나 인적 개입 없이도, 중력과 자연순환 등 물리 원리를 활용하여 비상시에도 안정적으로 냉각되도록 설계되었다. SMR은 공장에서 모듈화된 방식으로 제작해 설치함으로써 건설 비용과 기간을 절감할 수 있으며, 기존 대형 원전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분야로의 활용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한 산업단지, 데이터센터, 도서·오지 지역 등에 최적화된 해법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SMR을 차세대 국가전략기술로 보고 이미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미국은 뉴스케일(NuScale), 카이로스 파워(Kairos Power), 테라파워(TerraPower) 등 민간 주도의 다양한 노형 개발을 추진하며 수출 전략을 세우고 있고, 영국은 롤스로이스 SMR에 정부와 민간이 공동 투자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IT 및 AI 기업들도 SMR에 주목하고 있다. 구글은 Kairos Power와 협력해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할 차세대 SMR을 도입하기 위한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고, 아마존은 탄소중립 물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에너지 대안으로 SMR 도입을 검토 중이다. 엔비디아는 테라파워 등과 협력해, AI 시대 고성능 연산 환경에서의 지속가능한 전력 수급 방안으로 SMR 기반 데이터센터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SMR은 에너지 기술을 넘어 첨단 산업의 필수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SMART' SMR을 보유한 국가이며, 현재 한층 고도화된 '혁신형 SMR(i-SMR)'을 개발 중이다. i-SMR은 기존 노형 대비 안전성, 경제성, 유연성이 크게 향상되어, 향후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우리 기술의 위상을 보여줄 대표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일일 부하추종 성능이 뛰어나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역할에도 적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발의된 'SMR 특별법'에 대해 일부 환경단체가 반대 성명을 냈고, 이에 대해 한국원자력학회는 해당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공식 반박에 나선 바 있다. 이러한 논쟁은 기술의 본질보다, 기술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정권 교체와 함께 정책의 연속성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제기되고, 환경단체의 막연한 반대가 여과 없이 언론에 실리는 상황은 기술의 국제 경쟁력을 저해할 뿐 아니라, 관련 산업 생태계와 인재 양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SMR은 단순히 기존 대형 원전을 '작게 만든 것'이 아니라, 탄소중립 시대를 위한 다목적 에너지 플랫폼이다. AI, 데이터센터, 수소 생산, 산업 열공급, 해수담수화 등 다방면에서 응용 가능한 융합형 기술이며, 이에 걸맞은 규제·제도 혁신과 산업 생태계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의 옳고 그름은 기술과 사실에 기반해 논의되어야 한다. 원자력 기술은 전문가 집단과 규제기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개발되며, 그 안전성은 수십 년의 운전 경험과 국제 기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막연한 두려움이나 정치적 시각으로 기술의 가능성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반대 역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야 하며, 국민의 안전을 우선한다면 무엇보다도 정확한 정보와 사실에 입각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SMR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에너지 안보, 기후위기 대응, 미래 산업 전략의 관점에서 SMR의 가치는 대체 불가능하다. 정치적 논쟁이 아닌 국가적 전략으로 접근해야 하며, 전 세계가 SMR 개발 경쟁에 뛰어든 지금이야말로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성지현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