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이전 관철시켜 한껏 고무되자
이젠 공공기관 무더기 이전도 당연시
'부정 출발'하면 새 갈등 불씨 될 수도

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해양수산부 연내 부산 이전이 현실로 굳어졌다. 임시청사를 구비하는 등 일사천리다. 더는 해수부 이전 부당성을 다투어봤자 헛심을 쓰는 꼴이 됐다. 이를 지역 단위 무기력으로 치환할 것까지는 없다. 해수부 이전을 둘러싼 찬반 주체 간 협상 절차가 생략된 게 문제의 본질에 가깝다. 정책 결정권을 쥐고 있기는 하지만 해수부를 품고 있는 지역이 갖는 상응한 권리관계를 안중에 두지 않은 것은 불합리다. 하고 싶은 바대로 하겠다고 나오면 사실 도리가 없기는 하다.

새 정부의 일방적인 편 들어주기를 동력원 삼아 해수부 빼내기 공략에 성공한 부산이다. 북극항로 개척, 해양수도 건설 등 명분을 갔다 붙인 가운데 총력전을 전개하며 압박 강도를 높인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해수부 본부 이전에 그칠 것 같지 않은 현실 상황이다. 해수부는 해양수산 정책의 총괄 본산이다. 군 전력 운용 체계에 비유하면 '모함' 상징에 다름 아니다. 모함은 호위함, 구축함에다 공중 전력을 합쳐 편제되는 게 상례다. 같은 논리로, 해수부가 '모항'을 세종에서 부산으로 옮기면 산하 소속기관을 비롯해 관련 공공기관들도 해수부 뒤를 '추수'해야 하는 구도에 갇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예감은 빗나가지 않고 있다. 해수부를 사실상 '접수'한 단계인 부산은 내친김에 소속기관 등을 통합 이전해야 한다며 여론전을 펴고 있다. 어느 지역은 설상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부산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물 만난 듯 혹은 살판난 듯 난리인 것이다. 이미 행동으로 나섰다. 해수부 산하 17개 공공기관 중 해양환경공단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한국항로표지기술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한국어촌어항공단 한국해양조사협회 등 6곳을 이전 대상 타깃으로 특정했을 정도다. 이들 기관은 서울과 세종시에 있다. 이중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한국항로표지기술원은 세종에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부산 이전 등쌀을 어떻게 이겨낼지 종잡을 수 없다.

보통 국책사업의 경우 공론화 절차 등을 거쳐 경제성 타당성을 도출하고 입지 문제도 그를 바탕으로 확정된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 이전 시에도 준용한다. 자연히 결과가 나오면 승복은 당연하다. 해수부 이전 경우에는 절차적 프로세스를 '패싱'했다. 이전 명분이 차고 넘친다면 더 절차적 정당성에 치중해야 했을 일이다. 그럼에도, 여권은 부산권 경제 여건이 안 좋으며 또 세종에서 한개 부처 분절된다고 대수이겠냐는 식의 수사적 언어로 일관했다. 해수부 이전 강행을 두고 부산권을 위한 예외적이고 특혜성 정책 상품이라고 해도 이의를 달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하는 이유다.

해수부 이전은 비수도권 지역 간 갈등 이슈로 확산 전이될 소지도 다분해 보인다. 해수부를 등에 업고 유관 공공기관을 최대한 '수집'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는 부산권 움직임이 방증한다. 해수부 이전 법안 발의도 맥락이 다르지 않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해양·수산 관련 일을 하는 공공기관은 부산으로 가지 않고서는 배겨나기 힘들어질 게 자명하다. 반면에 같은 혁신도시가 있는 타 시도에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이 따르게 된다. 모두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 발표만 고대하고 있는 판에 부산이 특정 분야 공공기관 카테고리를 미리 독과점해 버리는 효과를 보게 된다. 5년째 무늬뿐인 대전·충남 혁신도시 사정과 비교해 보면 천양지차다. '부정 출발' 겸 '반칙'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와중에 전남과 나주에서는 신설 가능성이 농후해진 '기후(환경)에너지부'가 와야 한다며 선수를 치고 나왔다. 전남 지역 공약이라는 점도 강조하며 단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지역 논리 역시 해수부 사례와 별반 차이가 없다. 부산처럼 공공기관도 포섭하려 할 것이다. 해수부 이전 학습효과라고나 할까. 아마 뒷감당이 만만치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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