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부산 이전 공약 전광석화 추진
공청회 및 공론화 없어 민주정부 맞나
행정수도 노무현 정신 계승 잊지 말길
몇 해 전 일이다. 한 기초자치단체에 있는 중앙부처 산하기관이 이런저런 이유로 청사를 이전하려 하자 해당 주민들이 발끈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경제에 많지 않은 청사 근무자들마저 빠져나가면 타격을 받을 거란 우려가 주민들을 자극했다. 이 산하기관은 오랜 기간 주민들을 설득한 끝에 겨우 청사를 신축해 옮길 수 있었다. 타 자치단체로 가는 것도 아닌 같은 자치단체 안에서 장소만 바꾸는 것이었을 뿐인데, 청사 이전 과정에 애를 먹었다는 얘기를 후에 관계자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해당 주민들은 다른 동네로 우리 것을 뺏기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청사 이전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든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십분 이해가 갔다. 이렇게 작은 기관 하나 옮기는 데도 주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이 첨예할 수밖에 없는데, 하물며 정부부처를 옮기는 것이야 말하면 무엇할까.
해수부 부산 이전이 전광석화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해수부 부산 이전 공약을 발표하고, 지난달 취임을 한 뒤 올 연말까지 해수부 이전 마무리를 지시하면서 기정사실로 됐다. 곧바로 해수부 터는 부산 동구로 정해졌다. 부산지역사회는 콧노래를 불렀다. 부산지역 의원 17명은 '해수부 부산 이전 특별법안'의 공동발의로 숟가락을 얹었다. 그 흔한 주민 의견 수렴 등 공청회나 공론화 한 번 없었다.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지역민들의 바람도 온데간데없다. 해수부 직원 86%의 반대 목소리도 묻혔다. 여기에 다분한 행복도시건설특별법 위반 소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사이,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해수부는 세종정부청사에서 짐을 싸게 됐다. 절대권력자의 말 한 마디에 제반 절차는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민주정부가 맞나 싶다. 이 대통령을 등에 업은 전재수 해수부장관 후보자는 한술 더 떠 아예 해수부 산하기관까지 싹 다 부산으로 몰고 가겠단다. 물 들어올 때 노젓는다지만 빼앗기는 충청인들의 가슴에 대못까지 박고 있다.
문제는 누구나 납득할 대의명분이다. 이 대통령의 공약인 북극 항로 개척을 위해 해수부가 바다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논리지만 꼭, 해수부가 부산에 있어야 북극 항로를 개척할 수 있는지…, 억지 논리라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야 부인하겠지만 야권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것처럼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정치공학적 논리 작용밖에 더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난 2021년 부산시장 재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가덕도신공항을 염두에 둔 가덕도 방문처럼 말이다.
해수부=바다=부산이라는 해괴한 논리 등식이 성립하자 엉뚱한 나비효과로 이어지는 게 기가 찬다. 이제는 대놓고 세종정부청사에 있는 정부부처를 빼가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산업통상자원부'의 대구경북 이전을 주장했다. 대구·경북이 우리나라 산업에서 조국 근대화의 발상지 아니냐란 거다.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하듯이 지역특색에 맞는 부처 이전 논의를 해볼 만하다는 게 조 의원의 주장이다. 같은 맥락으로 강원도는 환경부, 대구시는 보건복지부, 광주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전북도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이전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아직 신설되지도 않은 중앙부처 유치를 천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를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로의 유치다. 나주시에 위치한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에는 한전, 전력거래소, 한전KDN 등 에너지공기업이 입지해 있기에 협업에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이라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터무니없는 요구도 아닐 것 같다.
이렇듯 국가 대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 지역이기주의와 정치의 결합으로 정부부처를 전국으로 발기발기 찢으려 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어떻게 만든 행정수도인데, 민주당 정권에서 균열의 틈을 벌리려는 하는가. 만신창이 행정수도가 심히 걱정이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면 국회의사당과 대통령실 이전에만 집중하고, 행정수도 완성 역행에는 손을 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