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12월 23일 기준 국내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24만 4,55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20%)를 맞이했다. 이러한 변화는 병원에서 누구보다 먼저 체감하는데, 입원환자 중 65세 이상뿐만 아니라 80세가 넘은 어르신들도 자주 만난다.
바쁜 세상 속에서 가족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병실에 남겨진 어르신들은 간병인과 의료진의 손길 속에서 하루를 이어간다. 그분들은 대부분 평생을 땀 흘려 살아온 세대이다. 논밭을 일구고, 자식을 키우며 쉼 없이 달려온 세월이 병마 앞에서 멈추어 선 것이다. 긴 치료가 이어지면서 병원은 곧 '또 하나의 집'이 되었고, 침상에 누워서도 시골집의 세간살이와 마당의 작물 걱정의 소리를 자주 한다.
어느 날은 새벽 라운딩을 간 간호사보다 더 일찍 깨어있다. "아직 아침이 되려면 멀었는데, 어디 불편하신 곳 있으세요? 밤잠을 못 이룬 듯한 표정을 살피며 건넨 간호사의 한마디로 새벽 담소는 살그머니 시작된다. "마음은 아직 젊은디… 이 병든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쉼 없이 달려온 삶이었기에, 비로소 찾아온 고요한 시간이 서글프게 다가온 밤이였을까? 그 이야기에는 단순한 회상뿐만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라는 간절한 눈빛도 함께 전해온다. 병실을 찾은 간호사에게는 경청과 함께 따뜻한 눈빛으로 담아내고, 수많은 환자들을 보듬었을 손으로 위로를 전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의료인이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의료인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생명을 살리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 모든 일 속에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의미가 더 있지 않을까? 바로 '환자들의 시간, 그리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 지켜주는 것'이지 않나 생각해 본다. 병원에 머물며 치료받는 환자에게 의료진의 눈맞춤 하나, 조용한 손길 하나는 단순한 친절을 넘어 '존중'이 된다. 이것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내 시간을 함께 아껴주는 일이며, 그 작은 배려 하나가 환자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올해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길었고, 많은 어르신이 병원에서 명절을 맞이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고향 집이 아닌 낯선 병실에서 연휴를 보낸 분들께 조용히 마음을 전해본다. "비록 낯선 공간에서 맞이한 명절이였지만, 의료진의 진심을 담은 위로와 공감이 온기로 전해졌길 바란다.
한 해의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의 햇살과 바람은 한 해의 수고를 담아내고, 결실이 주는 여유와 깊이를 전한다. 고령의 환자는 병원의 병상에 누워 치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지만 이 계절을 닮아 오랜 세월을 견뎌낸 지혜와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가을의 품 안에서 건강과 회복의 길로 나아가길, 그리고 우리의 눈빛과 손길이 그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유경희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간호부 파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