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9월 19일, 논산시 두마면서 분리 독립
계룡시는 충청남도 남단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독특한 탄생 배경을 지닌 도시다. 계룡산과 계룡대에서 이름을 따온 계룡시는 2003년 9월 19일, 논산시 두마면에서 분리돼 독립적인 시로 승격됐다. '도농통합시 제도'가 시행된 1995년 이후 유일하게 새로 생겨난 시로, 행정 제도의 예외적 사례로 꼽힌다.
이 지역은 기후와 토양이 농업에 불리해 발전이 더뎠고, 호남선 계룡역(구 두계역)을 중심으로 작은 촌락이 형성돼 있을 뿐이었다. 대전과 논산이라는 큰 도시에 둘러싸여 있어 독자적인 성장은 어려웠다.
◇ 계룡시의 성장 전환점…3군 본부의 이전
계룡의 운명을 바꾼 전환점은 1989년 찾아왔다. 육·해·공군 3군 본부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군인과 가족들이 거주할 아파트와 생활 편의시설이 대거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200만 호 건설사업과 맞물려 중앙정부 주도의 '계룡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됐다.
1990년에는 충남 직할 계룡출장소가 설치돼 행정적 위상이 한층 높아졌지만, 인구 증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95년 도농통합시 제도가 시행되면서 분리 승격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1996년 논산군이 시로 승격되자 계룡출장소는 법적·행정적으로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주민들은 충남 직할 출장소의 관할을 받으면서도 실제로는 논산시장과 시의원을 선출해야 하는 '반쪽짜리 지방자치'를 이어가야 했다.
이 같은 구조는 주민 불만으로 이어졌고,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특례시 설치를 약속하면서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도의 출장소가 설치된 지역 중 인구 3만 명 이상이면서 도농복합시의 일부인 곳"이라는 새로운 승격 요건이 신설됐다. 이는 사실상 계룡시를 염두에 둔 것 이었다. 결국 2003년, 서류상 인구는 5만 명에 미치지 못했지만 군인과 가족들의 실 거주 인구를 근거로 계룡시는 독자적인 시로 출범하게 됐다.
◇ 떼려야 뗄 수 없는 대전광역시와의 관계
계룡시는 현재도 인구 5만 명 미만이면서 시로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다. 행정구역상 충남에 속하지만, 대전 생활권과의 밀접성이 강해 대표적인 위성도시로 자리 잡았다. 주민 상당수는 계룡을 별개의 도시라기보다 대전의 일부로 여기며 생활한다. 실제로 대전과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시민 대부분이 대전에서 이주해 오거나 군 복무 발령으로 전입한 군인 가족이기 때문이다. 계룡시의 어느 곳이라도 대전 시내와 거리는 자동차로 20분이 넘지 않는다.
지역번호 또한 충남의 041이 아니라 대전의 042를 사용한다. 충청권에서 042 지역번호를 쓰는 곳은 계룡시가 유일하다.
계룡시 출범으로 한때 충남의 시·군 숫자는 늘었지만, 2012년 연기군이 세종특별자치시로 독립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계룡시는 '군사적 특수성'을 인정받아 예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군사도시로 자리 잡았다.
◇ 계룡시, '계룡軍문화축제'로 세계에 알리다
특히, 계룡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며 대표적인 행사는 단연 '계룡軍문화축제'다. 2003년 시 승격과 함께 시작된 이 축제는 처음에는 군 장비 전시와 군악대 공연 등 군 홍보 성격이 강했지만 2006년부터 국방부와 충남도, 계룡시가 공동 주최하면서 국가적 규모로 확대됐다.
블랙이글스 에어쇼, 3군 합동 시범, 해외 군악대 공연 등이 도입되며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고,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늘어났다. 2010년대 이후에는 '세계 군문화축제'를 표방하며 국제 교류와 관광 자원화에 나서, 해마다 수십만 명이 찾는 충남 대표 축제로 성장했다.
코로나19로 행사가 축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된 시기도 있었지만, 이후 정상 개최되며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오늘날 '계룡軍문화축제'는 민·군 화합의 장이자 한국 군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상징적 행사로 자리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