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8일 SBS NEWS 보도 캡쳐 갈무리

2023년 9월 5일, 대전 유성구 용산초등학교에 근무하던 40대 교사 A 씨가 끝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이틀 뒤인 7일 생을 마감했다.

A 씨는 24년 차 교사로 2019년부터 관평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2020년에는 수업 중 반 친구를 폭행한 학생을 지도하다 되레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해 10개월간 수사를 받았고,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겪은 상처는 깊었다. 이후 용산초로 전근했지만, 트라우마와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2023년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보도되자 그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묻고 싶다"는 메일을 남기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2023년 9월 12일 방송된 JTBC 사건반장 캡쳐 갈무리

◇반복된 민원, 왜곡된 주장

사건의 뿌리는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는 1학년 담임을 맡아 수업을 방해하고 친구들을 때리는 등 문제 행동을 반복하던 4명의 학생을 지도했지만 일부 학부모는 지도 방식을 문제 삼았다. 아이를 교장실로 보낸 일이 '정서적 학대'로 둔갑했고 학부모는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정서학대 의심' 의견을 경찰에 제출했고 교사는 무려 10개월간 수사 대상에 올랐다.

문제의 학부모들은 아이가 반 친구의 뺨을 때린 사건조차 "우리 아이 손이 친구 뺨에 맞았다"는 식으로 책임을 뒤집었다. 교사가 교육적 차원에서 학생을 교장실로 보낸 조치에는 "인민재판"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교사에게 오히려 사과를 요구했다.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렸지만 이미 A 씨의 마음의 상처는 깊게 새겨졌다.
 

2023년 9월 12일 방송된 JTBC 사건반장 캡쳐 갈무리

◇끝나지 않은 민원, 이어진 괴롭힘

괴롭힘은 학교 밖에서도 이어졌다. A 씨는 동네에서 학부모를 마주칠까 두려워 가까운 마트조차 이용하지 못했다. 실제로 카페에서 학부모를 보자 주문한 커피도 받지 못한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난 적도 있었다.

병가 중에도 "병가 낸 교사가 왜 싸돌아다니느냐"는 항의가 학교로 들어왔고, 코로나 시기 교문 앞 등교 지도에서는 "아이 통학에 불편하다"며 "교사를 교문에서 치워 달라"는 요구가 제기됐다.

담임에서 배제된 뒤에도 같은 층 교무실에 있다는 이유로 "교무실을 옮기라"는 민원은 이어졌다.

학부모들이 무리를 지어 교무실에 찾아와 교사를 불러내 사과를 강요하기도 했지만 관리자들은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 교사의 호소 외면한 학교와 교육청

A 씨는 수차례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대로 학부모가 요구한 학교폭력위원회는 열렸고, 그 결과는 황당했다.

친구를 때린 학생은 '피해자', 이를 지도한 교사는 '가해자'로 둔갑했다.

교육청 역시 문제 해결보다는 사안을 덮는 데 급급했다. 교사 보호보다는 학부모 민원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 속에서 A 씨는 끝내 버텨내지 못했다.
 

수년간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대전 초등 교사 A 씨의 운구 차량이 2023년 9월 9일 오전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하자, 이를 지켜보던 지인들은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오열하고 있다. 대전일보 DB

◇무혐의로 끝난 수사, 미제로 남은 책임

경찰은 학부모와 학교 관리자들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법적 처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남겨진 동료 교사들은 "학부모에게는 총을 쥐어주고, 교사에게는 꽃만 줬다"며 분노를 쏟아냈다.

A 씨의 유족은 "교사가 아니라 죄인으로 살았다"며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막을 법 개정을 촉구했다.

교사단체들도 "교사의 권리가 무너지는 순간, 교육은 무너진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 이후 국회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교권 4법'을 개정했고 교육당국은 수업 방해 학생 분리, 민원 대응팀 신설 등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현장 교사들은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막을 제재가 없다면 방패는 구멍 뚫린 채"라고 토로했다.
 

2023년 9월 7일 사망한 관평초 교사 A 씨를 추모하고 있는 모습. 대전일보 DB

◇마지막까지 '선생님'으로 남다

A 씨는 생전 아동을 돕기 위해 후원을 이어왔고, 유족은 고인의 뜻에 따라 그의 피부조직을 화상환자에게 기증했다.

2023년 9월 8일, 대전의 한 학부모 사이트에 '마지막까지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려운 결정해주신 유가족분들께 감사드립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이 사실이 알려졌다.

'마지막까지 선생님이었다'는 말은 교사 A 씨 추모의 수식어가 됐다.

관평초 교사 사망 사건은 한국 교육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기록됐다. 무고성 민원을 제재할 법적 장치 부재, 학부모 눈치 보기에 급급한 관리자, 책임을 회피하는 교육청, 무책임한 외부 기관의 판단이 교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사건은 벌써 2년이 지났고 제도 개선도 일부 이뤄졌지만 교단의 목소리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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