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전시립미술관이 관람객들로 북적하다. 지난달 25일 개막한 '불멸의 화가 반 고흐' 특별전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어서다. 지방 최초 반 고흐 기획전으로 주목받는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소장품 76점을 지역민에게 소개하기 위해 대전시립미술관과 관계 기관들이 수년간 준비해온 끝에 성사된 대규모 전시다.
앞서 대전시립미술관은 예술과 시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이어왔다. 지난해 윤의향 대전시립미술관장의 주도로 미술품 직거래 플리마켓을 처음 선보이며, 지역 미술계 저변 확대와 대중 접근성 강화에 힘썼다. 대전을 예술이 일상에 스며드는 도시로 만들기 위한 윤의향 관장을 만나, 반 고흐 특별전 개최 뒷이야기와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 최근 대전시립미술관 안팎에선 다양한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지난해 대전시립미술관장으로 취임한 이후, 미술관은 점진적인 체질 개선과 방향성 재정비에 나서며 변화를 모색해왔다. '미술관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고민은, 곧 '시민 곁으로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라는 실질적인 과제로 이어졌다. 단순히 전시를 제공하는 기관을 넘어, 시민의 일상 속에 스며드는 공간이자 문화적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이에 미술관은 기존의 전시 중심 운영에서 벗어나 보다 입체적이고 참여 중심의 운영 방식을 시도해왔다. 그 중심엔 시민들이 미술관을 '자신들의 공간'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직원들의 많은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관람객 수의 단순한 증대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시민의 삶과 연결되는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뒀다."
- 취임 당시 미술관 운영 방향으로 관람객 유치와 저변 확대 확대를 강조했다.
"DMA 버스킹 공연, 미술품 직거래 프리마켓, 청년 예술가와의 협업 프로젝트 등 다양한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들을 확대했다. 특히 미술품 직거래 프리마켓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지역 예술 생태계를 기반부터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신진 및 청년 예술가들에게는 경제적 자립의 발판과 대중과 만나는 창구가 됐고, 시민들에게는 미술품을 직접 저렴하게 구매하며 예술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험의 장으로 넓혀졌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기회를 확대하는 과정은, 미술관이 '찾아가는 곳'에서 '머무르는 곳'으로 거듭나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미술관이 지역사회와 일상에 깊이 뿌리내릴 때 비로소 '시민들의 미술관'으로 완성된다고 보고,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성을 바탕으로 다층적인 운영 전략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 반 고흐 특별전은 변화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 특별전은 대전시립미술관이 추구해온 변화 중 하나다. 단순히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넘어 '시민의 문화 경험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소장 작품 76점을 한 자리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대전은 물론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기획으로, 미술관이 지역 안에서 감정적 울림을 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상징적인 시도다.
- 지방에선 이같은 대형 프로젝트 추진이 매우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유치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말씀대로 전시 유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과의 협약 체결을 비롯해, 작품 운송과 보험, 전시 환경 등 모든 과정에서 국제 기준을 충족해야 했으며, 이를 위한 준비만 수개월이 소요됐다. 예산 확보와 행정 절차 역시 지역 미술관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장벽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왜 이 전시가 대전에 와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이었다. 단순한 작품 대여가 아닌, 대전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역량과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열망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가능성을 열었다. 여러 부서와 기관의 협력이 뒷받침된 결과로, 이번 전시는 대전시립미술관의 방향성과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공동의 성취로 평가된다."
- 관람객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전시는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를 시기별로 구성해, 관람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내면과 시선을 함께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고흐의 대표작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통과 치유, 질문과 응답이라는 감정의 파동이 색과 선을 통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파리 시기의 빛과 색에 대한 실험, 아를 시기의 강렬한 햇살과 감정의 폭발, 생레미 정신병원에서의 마지막 작업들에 이르기까지, 관람객은 고흐가 예술을 통해 구원과 사유에 다가가는 여정을 함께하며 더 깊은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전시 공간의 물리적 특성도 몰입감을 높이는 데 한몫이다. 대전시립미술관의 공간 규모는 물론, 높은 층고와 길게 연결된 벽면을 활용해 작품을 연속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관람 동선의 자연스러움을 유도한다. 넉넉한 전시 공간 덕분에 작품 간 간격이 충분히 확보돼 시야 간섭이 줄고, 이는 관람객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는 대전 시민뿐 아니라 타 지역 관람객에게도 큰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일부러 고속버스를 타고 전시를 보러 오는 이들이 늘고 있으며, SNS상에서도 화제다. 대전시립미술관을 통해 전국이 예술과 만나는 순간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 남은 임기 동안 가장 우선시하고 싶은 사안은
"대전은 과학, 기술, 교육,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이 복합적인 도시의 특성을 담아내는 예술 플랫폼이 돼야 한다. 실험과 전통, 시민과 작가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미술관, 그것이 지향점이다. 그래서 '대전 미술품 직거래 프리마켓'을 앞으로도 이어가고자 한다. 프리마켓은 단순한 그 의미를 뛰어 넘는다. 시민이 예술을 직접 소유하고, 작가와 만나며, 예술을 일상의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든 하나의 '예술 장터'이자, 신진·청년작가들에게 실질적 경제 기반을 마련하는 창구다. 지난해에만 1500점이 넘는 작품이 거래됐고, 전국적으로 드물게 수수료 없이 작가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지역 예술의 자생력을 키우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미술관은 특정한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누구나 와서 머무르고,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고흐가 그랬듯, 예술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 닿아야 가치가 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언제나 시민 곁에 있는 미술관이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