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스퀘어의 추악한 쇄락을 살펴본 지난 기고에 이어 본 기고는 타임스퀘어 재생의 가장 큰 축인 극장의 보존과 개발의 공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타임스퀘어의 재생, 특히 지역의 밀집된 낙후된 극장에 대한 고민은 당시 뉴욕시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논쟁의 역사를 대변한다. 20년대 극장의 폭발적 증가로 화려한 간판으로 뒤덮인 브로드웨이는 그레이트 화이트 웨이로 불리며 명실상부한 뉴욕시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극장지구로 대변되는 타임스퀘어는 1970년대를 정점으로 가장 처절한 몰락을 경험했다. 당시 타임스퀘어를 배경으로 한 미드 제목인 '더 듀스'로 불렸던 42번가의 7과 8번가 사이의 두 블록은 저열한 핍쇼와 포르노 극장으로 채워진 저속한 문화의 온상이었다. 이후 그 몰락의 원인을 제공한 대공황의 회복과 전후 경제 호황에도 과거의 위엄을 회복하지 못했고, 수십 년간의 방치와 철거 위협에서 1980년대까지 개발의 파고를 받지 않은 맨해튼의 마지막 지역 중 하나로 남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0년대부터 고층오피스 개발로 미드타운 동쪽이 포화됨에 따라 그 개발압력이 인접한 타임스퀘어로 밀려들었다.

이에 타임스퀘어의 도시적 의미와 그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경제논리에 따라 낙후된 극장을 철거하고 새로운 고층 개발을 허용하느냐? 아니면 극장을 보존해 도시의 문화적 인프라로서 그 잠재적 가치를 활용하는가에 대한 거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가장 큰 갈등은 1980년대 타임스퀘어의 중심인 타임즈 타워와 그 주변 건축물을 대상으로 추진된 오피스 콤플렉스 개발로 촉발됐다. 보존주의자들과 극장 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으며 10년에 걸친 싸움 끝에 개발을 좌초시켰다. 이러한 치열한 논쟁을 거쳐 뉴욕시는 극장지구의 엔터테인먼트란 지역적 특색을 살려 타임스퀘어를 도시의 대표공간으로 재생시키고자 결정했고 이를 지원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가 고안되었다.

가장 직접적인 지원책인 극장을 포함한 개발에 대한 용적률 보너스를 활용한 초기개발은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했다. 개발사업자는 자신의 건축물과 타임스퀘어의 적대적인 가로를 단절하기 위해 배타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1 Astor Plaza는 블록 내부에 가로를 형성하고 이를 극장의 정면으로 활용하므로 도시와의 관계를 철저히 단절했다. 또한 모더니즘 스타일의 거대한 입면은 가로를 압도하고 극장의 입면이 가로에 노출되지 않음과 동시에 그 다채로운 디테일을 잃어버림으로 기존 타임스퀘어의 모습을 파괴했다. 이는 다시 보존주의자들의 격렬한 저항을 촉발시켰으며 그 결과 1988년 28개 극장을 랜드마크로 지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신규 개발에 극장을 포함시키는 방식을 오래된 극장을 직접 보존하는 방식으로 대체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보존만을 위해 개발을 제한함은 사유주의에 반함과 동시에 도시성장을 저해하므로 보다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 보존과 개발이 공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개발권 이전제라는 혁신으로 가능했으며 극장 상부 개발권을 극장지구 내 타 부지로 판매 가능하도록 하는 새로운 제도적 장치이다. 이를 통해 극장은 운영을 위한 재정을 충당하고 개발사업자는 추가 용적률을 확보해 개발수익을 확대하게 했다. 또한 1992년 시는 '42nd Street Now!'라는 계획을 통해 개발에 대한 일련의 지침을 제시했다. 이는 타임스퀘어의 과거 모습의 래이어를 하부에 유지하고 그 상부에 새로운 래이어를 더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경관을 갖추게 했다.

본 기고에서 살펴본 극장지구의 보존과 신규 개발의 공존에서 우리는 그 균형 잡힌 도시적 변화의 방정식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다음 기고에서 또 다른 변화의 축과 그 제도적 장치를 중심으로 타임스퀘어 재생의 드라마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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